읽지 않아도 되는 책의 독서안내 - 지식의 최전선을 5일 만에 탐색한다
다치바나 아키라 지음, 이진아 옮김 / 인디페이퍼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월드컵 전 경기 관람은 쉽지 않은 미션이다. 단단히 마음먹었으나 새벽 3시 경기는 놓칠 때가 있고, 관심이 없는 팀의 경기일 때도 있다. 예선부터 결승까지 40게임이다. 관심은 있으나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하이라이트를 돌려본다. 3~5분 정도로 요약한 동영상은 감동도 재미도 없다. 그저 발로 공을 차고 헤딩을 해서 골대에 넣는 순간을 포착할 뿐. 전후맥락 골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빛나는 패스, 작은 실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 경기의 흐름을 읽는 재미는 하이라이트로 즐길 수 없다.

 

책은 어떤가. 부분과 발췌만으로 한 권의 책에 대해 말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스무 살 청춘이 여든까지 한 주도 쉬지 않고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는 열혈 독서가로 산다고 해도 평생 52×60=3,120권 밖에 읽을 수 없다. 삼천 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책이다. 대한민국에서만 잡지를 포함해서 일 년에 4~6만 종의 신간이 쏟아진다. 60년간 새 책만 삼백만권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부지런히 읽어도 겨우 0.1%를 읽을 수 있다. 지금까지 나온 책을 어쩔텐가?

 

그래서 피에르 바야르는 읽지 않는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대해 비밀을 털어놨고 다치바나 아키라는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의 독서 안내를 시도한다. 이 두 책은 묘하게 대비된다. 피에르 바야르가 실제 상황을 중심으로 책의 효용과 안 읽은 책에 대해 아는 척하는 꼼수를 전하고 있다면 다치바나 아키라는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없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반어법 버전이다. 물론 피에르 바야르도 진지한 독서의 중요성과 어차피 다 읽지 못하는 책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큰 틀에서는 목적이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치바나 아키라는 현생 인류에게 복잡계, 진화론, 게임이론, 뇌과학, 공리주의를 중심으로 지식의 계보학을 시도한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없다면(물론 이 전제 자체가 아이러니다. 책에 관심이 없고 읽을 생각도 없는 사람이나 욕심이 없는 사람에겐 이 책도 무의미하다.)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은 어떤 책인가 알아두는 편이 좋다. 다치바나 아키라의 의도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 분야를 선정하는 데 있다.

 

 

인류가 걸어온 길 위에서 지금-여기here and now’가 아니라면 책은 전혀 다른 역할을 한다. 내 삶에 투영되지 않는, 나를 위한 책이 아니라면 어디에 쓸 것인가. 타인과의 관계를 고민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고 다가올 미래가 고민이라면 적어도 지식의 패러다임을 전환했던 순간을 기억해야 한다.

 

책을 빅뱅 이전빅뱅 이후로 나누고, 빅뱅 이전의 책은 독서 목록에서 (일단)제외한다 이것을 지식의 패러다임 전환이라 부른다면, 오래된 패러다임으로 쓴 책을 열심히 읽어도 가격 대비 효과는 떨어진다. 따라서 최신 지식의 겨냥도를 손에 넣고 나서, 고전을 포함하여 자신이 흥미가 있는 분야를 읽어나가면 된다. - 7

 

지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지 못한,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는 책을 읽는 시간은 무의미하다는 저자의 생각은 지나치게 실용적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머리를 식히려고 손에 잡은 책은 올해 최고의 책 중 하나였다. 엉성해 보이는 표지와 일본인 특유의 실용적 태도를 담은 함량 미달의 재미를 원했던 오만함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책장을 넘기는 동안 왜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지 않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세상의 지식과 정보를 소화하고 편집하는 능력보다 현대인에게 중요한 능력이 있을까. 이 책 말미에 붙어 있는 북 가이드는 필독서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분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안내서들이다. 어려운 이론과 전공 지식이 필요한 분야도 있겠으나 최근에는 대부분 충분한 2차 저작물과 해설서가 넘치고 대중을 위한 지식의 체계와 설명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한두 이상 따라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하이퍼링크 책읽기를 시도할 수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음 영역, 인접 분야의 책에 손이 간다. 다치바나 아키라의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으리라.

 

 

예를 들어 공리주의를 둘러싼 논쟁과 정의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 민주화, 재벌 정책, 사법제도 개혁, 공정거래위원장의 신념, 52시간 노동 시간의 의미 등도 마찬가지다. 직접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생각, 행동, 태도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그들의 자유의지는 과연 자율적 판단과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가. 가장 합리적인 성장과 분배 정책은 무엇인가. 인터넷 뉴스를 보며 울분을 토하고 근거 없는 비난과 비아냥으로 비평가 흉내를 내는 사람, 주관적 감정과 감성적 언어가 전하는 달콤함으로 현실도피를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가장 적절한 치료제로 추천할 만하다. 폭넓은 지식의 향연과 분야를 넘나드는 안목을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겐 물론 지루한 잔소리와 현실과 무관한 학문의 영역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한번 쯤 지적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다치바나 아키라는 후기에서 자신의 경험을 토로한다. “권력은 네 안에 있다. 너 자신이 너를 얽매는 권력이다.”(327)는 말을 이해한 순간, 그는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었으리라. 미셸 푸코의 말 한마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돈오頓悟의 순간을 그는 누가 뒤에서 찌르는 바람에 뒤를 돌아보았다고 술회한다. 물론 그곳엔 아무도 없었고 그 충격은 머릿속에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40년 전 경험을 통해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요약되어 있다. “나는 선이고, =권력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판단 기준과 근거를 다시 살펴야 한다. 점점 의심스럽고 두려울 뿐 머리가 텅 비어가는 느낌이다.

 

왜 이런 차별이 여전히 남아 있는가 하면, 그것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본인’, ‘중장년’, ‘남성’, ‘일류대학 출신’, ‘정규직(종신고용)’이라는 다섯 개의 속성을 지닌 완고한 아저씨와 할아버지를 말하는데 정치나 행정, 사법부터 학교와 회사, 언론에 이르기까지 일본사회는 그들의 기득권으로 얽매어 있다. - 330

 

젊은 여러분이라면 자신들이 차별하면서 차별을 없애라고 주장하는 위선자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지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볍게 받아들여, 효율적이고 공평하며 합리적인 더욱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이 책을 썼지만. - 331

 

월드컵 첫 예산 탈락인 모로코가 아쉽다. 이제 우루과이의 사우디 차례다. 한 시간이 금방이구나.

 

===========================================================================

 

책을 빅뱅 이전빅뱅 이후로 나누고, 빅뱅 이전의 책은 독서 목록에서 (일단)제외한다 이것을 지식의 패러다임 전환이라 부른다면, 오래된 패러다임으로 쓴 책을 열심히 읽어도 가격 대비 효과는 떨어진다. 따라서 최신 지식의 겨냥도를 손에 넣고 나서, 고전을 포함하여 자신이 흥미가 있는 분야를 읽어나가면 된다. - 7

 

지금까지 자기 유사성이나 복잡함을 연구한 과학자며 수학자는 존재했다. 그러나 망델브로만이 그것을 프랙털로 통합하여, 세계의 근본법칙임을 나타냈다. 이것이 거대한 지적 패러다임 전환이다. - 40

 

세계는 네트워크이고, 그것을 움직이는 것이 허브이다. - 47

 

세계는 프랙털이고, 사회도 프랙털이며, 우리 자신도 프랙털이다. - 47

 

망델브로야말로 지식의 노마드였다. 그것이 그의 인생이 매우 매력적인 이유이다.

D-G는 결국 리좀이 무엇인가 알지 못했다. 유랑하는 지성만이 리좀을 볼 수 있었다. - 57

 

자연은 인간의 지혜로는 따라갈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현대의 진화론은 유전의 과학과 융합하여, 생물의 생태를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이렇게 진화론에 있어 지식의 빅뱅’, 사회생물학(진화생물학)이 탄생했다. - 77

 

인간의 몸이 진화로 만들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과 감정도 진화로 생겨났다. - 101

 

조직에 유전자는 업는데다 진화는 진보나 성장이 아니다. - 107

 

현대의 진화론이 자연과 사회, 마음의 비밀을 엄청난 기세로 해명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복잡하고 다양한 이 세계는 언제나 우리에게 놀라운 미지의 세상을 선사해준다. - 113

 

게임이론에서 신호보내기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맹약이다. - 125

 

신고전파 경제학의 효율적 시장에서는 모든 시장 참가자가 온갖 정보를 동시에 아는 완전 정보를 전제조건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현실의 시장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가득하고, 이론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난다. - 155

 

행동경제학에서는 이 착각을 휴리스틱(Heuristics)’라고 설명한다. 익숙하지 않은 말이지만 휴리스틱스는 복잡한 문제를 시간을 들여(슬로 사고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직감적으로(패스트 사고로) 순식간에 풀려는 단락(短絡) 경향을 말한다. - 162

 

리벳은 이 중대한 의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0.35초 사이에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뇌가 활동을 시작하고 행위를 실행할 때까지의 경과 시간(0.35) 동안, 인간은 그 행위를 중지할 자유가 있으니까.

이것은 자유의지개념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무언가를 할 (적극적)자유가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무의식이 정한 것을 순간적으로 부정하는 (소극적)자유뿐인 것이다. - 235

 

지금 더욱 나은 미래더욱 나은 세상을 진지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은 실리콘밸리뿐이다. 그것 외에 갖가지 이상은 역사의 엄격한 허들을 넘지 못하고 사라졌다.

사이버 자유주의자가 그린 테크놀로지의 유토피아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위태로운 미래라고 해도.

적어도 그것이 착각인지 아닌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 323

 

권력은 네 안에 있다. 너 자신이 너를 얽매는 권력이다.” - 327

 

과학과 기술은 진보하지만, 인간은 진보하지 않았다. 전혀. - 327

 

왜 이런 차별이 여전히 남아 있는가 하면, 그것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본인’, ‘중장년’, ‘남성’, ‘일류대학 출신’, ‘정규직(종신고용)’이라는 다섯 개의 속성을 지닌 완고한 아저씨와 할아버지를 말하는데 정치나 행정, 사법부터 학교와 회사, 언론에 이르기까지 일본사회는 그들의 기득권으로 얽매어 있다. - 330

 

젊은 여러분이라면 자신들이 차별하면서 차별을 없애라고 주장하는 위선자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지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볍게 받아들여, 효율적이고 공평하며 합리적인 더욱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이 책을 썼지만. - 3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