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와 과학적 사고의 역사 - 돌도끼에서 양자혁명까지
레너드 믈로디노프 지음, 조현욱 옮김 / 까치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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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욕망과 능력을 함께 가진 유일한 존재이다. 그것이 우리를 다른 동물보다 돋보이게 만드는 가장 큰 재능이다. 그 덕분에 생쥐와 기니피그가 우리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들을 연구한다. 20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순응하는 인간과 저항하는 인간, 나서는 자와 숨는 자. 지키는 사람과 깨트리는 사람, 생각하는 인간과 행동하는 인간 , 머리가 큰 사람과 가슴이 큰 사람, 솔직한 자와 가식적인 자, 변하는 인간과 고집스런 인간, 앞장서는 사람과 뒤처지는 사람, 살려는 자와 죽으려는 자…….

 

인류의 역사는 호모 사피엔스의 지난한 변화의 과정이었다. 제아무리 젠체하는 인간이라도 숭고한 신의 형상을 닮은 게 아니라 한낱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자명한 진리 앞에선 미진微塵한 존재에 불과하다.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의 호모 사피엔스와 과학적 사고의 역사는 과학사의 눈으로 바라본 인류지성의 발달사로 읽힌다.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물질문명을 발전시켜 왔는가에 대한 질문 자체가 놀랍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으나 이렇게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호기심에 답하는 책이 좋다. 이 질문들은 대부분 답이 없거나 아직 밝혀지지 않았거나 너무 복합적이어서 정답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부단히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며 호기심을 탐구해왔다. 구원은 신의 몫이나 자연 질서에 답이 신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달한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인간과 세상 즉, 자연과 물질 그리고 생명에 관한 철학적 질문으로 시작해서 최첨단 과학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과학사이며 인류사이고 문명사이며 철학사에 해당하는 거대한 빅히스토리.

 

저자의 노고와 집중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의 원제인 ‘THE UPRIGHT THINKERS’는 기나긴 한글판 제목과 무관하게 이 책의 성격을 간명하게 드러낸다. 좋은 책은 간명한 제목과 적절한 부제가 뒤따른다. 상당한 분량의 과학책을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은 이유는 당연히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하이젠베르크까지 인간의 역사에서 과학적 사고가 어떻게 발전해왔는가? 사회적 상황, 문화적 전통, 개인적 성향은 물론 종교의 교리와의 갈등은 무엇이었을까?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혁명적 발상의 전환과 혁신적 사고는 어떤 조건에서 왜 일어났을까? 이 책은 과학자의 생애는 물론 시대별 과학계의 이슈를 통해 그 가능 조건을 제시한다. 개인의 능력과 과제에 대한 몰입 정도는 물론 개인적 탄생 배경, 집안의 재력, 시대상황과 사회적 요구가 결합되어 놀랄만한 과학적 발견통찰이 증명된다.

 

이 책은 인간의 특성과 호기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이야기가 문화, 문명, 이성을 거쳐 과학적 사고의 토대를 다지고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놀랄 만큼 탄탄한 구성과 사실에 대한 고증 뿐 아니라 과학에 대한 이슈를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는 능력은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의 능력이다. 세계사의 새로운 서술방식으로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있다면 이 작가는 과학계의 유발 하라리다.

 

이 책이 무엇보다 흥미를 끈 이유는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과학계의 이론뿐 아니라 인류의 삶을 뒤흔든 과학자들, 과학적 발견과 발명 뒤에는 고정된 틀을 깨려는 개인의 노력과 기질, 꾸준하고 끊임없는 도전정신, 시대적 요구와 사회적 인정이 함께한다. 각 시대마다 명멸했던 천재적인 과학자들은 사실 천재가 아니라 엉뚱한 호기심과 괴팍한 발상, 남들과 다른 상상력을 갖춘 사회 부적응자들이 많았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관습적 사고로 해결되지 않았던 그 많은 과학적 난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흔히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학교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어른이 얘기할 땐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들은 바보라서 그런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겠느냐, 어디를 가든 중간만 해라(특히 군대에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지 마라 좋은 게 좋은 거다와 같은 삶의 지혜를 전수받는다. 그러나 과학 혁명은 이런 말들에 정면으로 반박한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다. 저자는 이 과정을 상세하고도 알기 쉽게 풀어낸다. 이론 물리학자의 말빨과 글 솜씨가 탁월했기 때문에 이렇게 훌륭한 책이 만들어졌으리라.

 

과학뿐만 아니라 철학사에 대한 이해와 흐름 역사의 변천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이 책 곳곳에 녹아있다. 어떤 과학자의 생애를 요약할 때도, 과학적 성과와 이론을 설명할 때도 균형감을 잃지 않고 전후좌우 맥락을 잘 살핀다.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생각이 깊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전공, 직업과 무관하게 깊이 고민하고 넓게 사유하며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책에서는 향이 난다. 시류에 영합하고, 트렌드를 쫓으며, 팔기 위해 쓴 책은 비린내가 난다. 그러나 이 책은 말할 수 없이 은은한 향으로 과학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를 보이지 않게 설득하는 힘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 지식의 진보는, 세상을 아주 약간 다른 방식으로 볼 능력이 있던 사람들이 했던 공상이 계속 이어진 덕분에 가능했다. - 404

 

집안은 부유하고 저명했지만 찰스(안철수 아니다-.-;;)는 학업성적이 나빴으며 학교를 혐오했다. 그는 판에 박힌 학습에 대한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특별한 재능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은 다윈은 학교 부적응, 학계의 비주류, 사회적 고립자였다. 당신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성공을 향한 불나방이 아니라면, 돈과 권력에 올인한 사람이 아니라면 나름대로, 각자의 방식의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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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욕망과 능력을 함께 가진 유일한 존재이다. 그것이 우리를 다른 동물보다 돋보이게 만드는 가장 큰 재능이다. 그 덕분에 생쥐와 기니피그가 우리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들을 연구한다. 20

 

질문을 제기하는 행위는 우리 종에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들에는 보편적인 지표가 있다. 모든 언어는 성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막론하고 질문을 할 때, 뒷부분의 억양이 비슷하게 높아진다. 일부 종교에서는 의문 제기를 불안의 최고 형태라고 본다. 과학과 산업분야에서 제대로 된 질문을 제기하는 능력은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재능일 것이다. - 36

 

1903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자신의 학생에게 해준 조언은 과학이나 시 모두에 진실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네 마음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서 인내심을 갖지라. 그리고 그 의문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라.” “그 의문을 품고 살아라.”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는 능력이다. - 98

 

과학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언어로 수학을 사용하도록 처음으로 인류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피타고라스(570년경~490년경 기원전)라고 전해진다. 그는 그리스 수학의 창시자이며 철학(philosophy)”이라는 용어의 발명자이며 전 세계 중학생들의 저주의 대상이기도 하다. a 의 의미를 배우느라 휴대전화 채팅을 오랫동안 중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100

 

탈레스는 자연이 질서 있는 규칙을 따른다고 말했지만 피타고라스는 한발 더 나아가서 자연이 수학적 규칙을 따른다고 단언했다. 우주의 근본적인 진실은 수학법칙이라고 그는 설법했다. 숫자는 실재의 본질이라고 피타고라스 학파는 믿었다. - 102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의 특징은 목적을 찾는다는 점이다. 이 점은 그 이후 인류의 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탓에 그는 기독교 철학자들에게 대대로 사랑을 받게 되지만 과학의 진보는 거의 2,000년 동안 방해를 받았다. 목적주의는 오늘날 우리의 연구를 이끄는 과학의 강력한 원칙들과 양립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다. 두 개의 당구공이 충돌하면 그 다음 일어나는 일을 결정하는 것은 뉴턴이 처음으로 제시한 법칙이지 그 뒤에 숨어 있는 원대한 목적이 아니다. 113

 

실용적 가치로부터 독립된 새로운 가치가 부여되자 과학적 탐구가 올바른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윽고 진리에 대한 교회의 소유권이 잠식당했다. 성경 및 교회 전통과 경쟁관계인 진리가 나타난 것이다. 자연이 드러내는 진리 말이다. - 127

 

사실 오늘날의 6학년생은 14세기의 가장 뛰어난 과학자보다 수학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28세기의 어린이와 21세기의 과학자의 관계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 134

 

우리는 과학의 발전이 일련의 발견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지적인 거인이 비범하고도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외롭게 노력한 결과들이 하나하나 이어진 것으로 말이다. 그러나 지성의 역사에서 위대한 발견을 해낸 사람들의 비전은 분명하다기 보다는 흐릿한 경우가 더 많았으며, 그들의 업적은 친구와 동료, 그리고 운에 더 큰 빚을 지고 있었다. - 152

 

과학은 최고의 아름다움을 가진 주제이다. 과학의 진보에는 아이디어의 교차 수정이 필요하고 이는 오직 다른 창조적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의 고립 또한 필요하다. 이 고립은 사교 활동을 하지 않으려 하거나 심지어 고립된 생활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뚜렷한 장점을 제공할 수도 있다. - 166

 

우리는 희한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좀 가질 필요가 있다. 사실 뉴턴이 그런 사람이었다. 흑사병 기간 중에 그처럼 상서로운 출발을 해놓고도 그는 잘못된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데에 삶의 다음 단계의 많은 부분을 허비했다. 그의 업적을 연구한 후대의 많은 학자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 아이디어 말이다. - 178

 

뉴턴이 자신이 시작한 일의 끝장을 보았을때 당초 9쪽이었던 궤도를 도는 물체의 운동에 관하여3권짜리 프린키피아가 되었다. 이 책의 정식 이름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이다. - 195

 

창조하기 위한 투쟁에서 승리하려면 엄청난 끈기가 필요한 것이 보통이다. 심리학자들이 불굴의 투지(grit)”라고 부르는 이 속성은 인내와 완고함뿐만 아니라 열정이라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 책에서 보아온 모든 인물이 가진 자질과 연관이 있다.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오랜 시간 노력하는 성향이라고 정의되는 이 성향은 결혼생활에서부터 미군 특수부대에 이르는 모든 분야의 성공과 관련되어 있다. - 245

 

갈릴레오가 달의 경치를 보고 토성의 고리를 발견하고 크게 기뻐했다면, 레이우엔훅은 자신의 렌즈를 통해서 작고 기괴한 존재들의 새로운 세계를 관찰하는 데에서 똑같은 기쁨을 누렸다. - 268

 

집안은 부유하고 저명했지만 찰스는 학업성적이 나빴으며 학교를 혐오했다. 그는 판에 박힌 학습에 대한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특별한 재능이 없었다.”고 나중에 썼다. - 273

 

무작위성이 어떤 역할을 하다는 깨달음은 과학 발전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상징한다. 다윈이 발견한 메커니즘 때문에 진화는 신의 설계라는 사상,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어떤 사상과도 서로 어울리기 어렵게 되었다. 물론 진화라는 개념 자체가 성서의 창조 이야기와 상반된다. 그러나 이제 다윈의 특정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와 전통 기독교의 견해를 정당화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무심한 물리법칙이 아니라 목적에 의해서 사건이 전개된다는 견해 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일상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다윈이 끼친 영향은 갈릴레오와 뉴턴이 무생물계를 이해하는 데에 끼친 영향과 같다. 종교적 심문이나 고대 그리스 전통으로부터 과학을 뿌리째 결별시킨 것이다. - 282

 

1910년 철학자이자 심리학자 겸 교육학자인 존 듀이는 썼다. 비판적 사고에는 정신적 불안 및 동요 상태를 기꺼이 견뎌낼 의사가 흔히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판적 사고에 대해서만 아니라 창조적 노력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예술에서든 과학에서든 선구자들이 편안하게 지낸 예는 없다. - 305

 

과학에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질문을 제기하는 보통 사람이 다수이며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잘 살아간다. 그러나 가장 성공한 연구자는 이상한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인 경우가 흔하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질문, 혹은 다른 사람들이 흥미롭다고 보지 않는 질문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천재로 인정받는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이상하고 괴짜이며 심지어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 311

 

화학에서 종신교수 제도가 그토록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에 실패해도 안전할 수 있게 보장해주는 것은 창의성을 키우는 데에 필수적이다. - 342

 

놀랍게도 당시 나는 물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 스스로를 냉담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힘을 주었다는 사실을 느꼈고, 그것은 내가 슬픔을 딛고 일어서서 고독감을 덜 느끼도록 도움을 주었다. 나는 어떤 더 큰 것의 일부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 존재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 우리 각자에게 허용된 세월이 얼마이든지 말이다. 아버지는 심지어 고등학교를 다닐 기회도 없었던 분이지만, 물질세계의 속성에 대해서 커다란 감탄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 거실에서 아버지와 대화할 때 그에 대한 책을 언젠가 쓰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마침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바로 그 책을 낸다. - 402

 

어떤 의미에서 인간 지식의 진보는, 세상을 아주 약간 다른 방식으로 볼 능력이 있던 사람들이 했던 공상이 계속 이어진 덕분에 가능했다. -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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