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애주가의 고백 - 술 취하지 않는 행복에 대하여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이덕임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지독한 사랑의 시작, 나 역시 술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날보다 술과 사랑을 시작했던 날들이 훨씬 근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깊은 관계를 나눈 대상과의 이별은 오래 걸리게 마련이다. 오랜 시간 유지해 온 관계를 깨지 못해 붙잡고 있는 연인처럼. - 11

 

모든 중독은 치명적일수록 아름답다. 그 끝을 모르고 질주하는 맹목. 부딪쳐 깨질 때까지 달리는 속도감.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 채 점점 헤어 나올 수 없는, 아니 헤어 나오기 싫은 아득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소주 한 병 이상의 술을 1년쯤 마시고 나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반주가 없으면 목이 메어 밥 한 술도 넘기기 힘들다. 다니엘 슈라이버는 어느 애주가의 고백에서 알콜중독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모든 중독이 그러하듯 알콜 중독은 가장 이성적인 인간의 가장 비이성적인 식습관 중 하나다. 세트메뉴로 엮인 담배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어느 쪽이 더 건강에 해롭고 무엇이 더 현명한 선택인지 조언하는 도덕 교사가 아니다.

 

지독한 사랑, 온라인 게임, 러너스 하이, 선거와 권력... 우리 삶에서 중독 아닌 것이 있을까. 중독의 기준은 무엇일까. 몰입과 중독은 어떻게 다른가. 하루에 커피를 몇 잔 마시면 중독인가. 모든 사람이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고 종교의 교리를 따르고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금욕적 삶을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다니엘 슈라이버는 모든 중독자의 증상대로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며 필름이 끊겨 기억이 사라지고 다음 날 아침 두통과 무거운 몸을 지탱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진다면 중독이다. 이 책은 술에 쩔어 인생이 위태로웠던 한 남자의 갱생기가 아니다. 1935년 시카고에서 시작된 A.A(alcoholics anonymous) 홍보 책자도 아니다. 술이 우리 삶을 어떻게 뒤흔들 수 있는지 살펴보면 충분한 책이다. 자기 고백적 에세이는 항상 변곡점에 초점이 맞춰진다. 어떤 계기로, 왜 그런 결심을 했으며 그 과정은 어땠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책장을 넘기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자기 경험에 기반한 주관적(?) 관점과 맥락을 드러낼 뿐이다. 술을 끊기 이전과 이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 신앙 간증처럼 간절하진 않지만 술 자체에 대한 깊은 고민은 없다. 모든 술은 위험한가. 술의 순기능은 없을까. 일반적으로 음주 문화의 역기능에 주목하면 세상은 거대한 수도원이 될지 모른다. 내가 마신다고 해서 마시지 않는 사람들을 불편해하거나 마시지 않는 사람이 마시는 사람을 비난하는 일은 올바른 태도일까.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다.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다. 기호 식품도 각자 취향이 있다. 술은 타인과의 관계, 개인적인 기호 양면에서 따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느 애주가의 고백은 술 마시는 모든 사람에게 죄책감을 주고 하루라도 빨리 금주를 실천하라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내게 이 책은 중독에 관한 보고서로 읽혔다. 술 대신 쇼핑, 게임, 미드, 운동, 재테크, 부동산투기, 권력지향, 명예욕, 그루밍족, 각종 덕질 등 한 가지에 매몰된 사람, 신념이 강한 사람,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도 중독의 한 증상이 아닐까. 당신은 무엇에 중독되어 있는가? 어디에 중독되고 싶은가?

 

알코올과 술은 언제나 슬프거나 지루하거나 화난 사람들에게 출구가 되어 줬다. 가혹한 삶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더 잘 견딜 수 있게 하며, 불안한 미래와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줬다. 망각 속으로의 탈출은 인간 본능의 특징이다. -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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