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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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데,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배우자 역시 타인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타인이다. - 18

 

가족을 이루는 최초의 개인은 타인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장 끈끈한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낯모르는 타인과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최소 단위, 사회 보험 기능을 담당하는 가족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부부,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이 관계는 국가, 지역, 종교, 민족, 인종, 문화에 따라 그 관계 양상이 조금씩 다르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인간과 세상의 질서를 배우고 생존 방식을 터득한다. 세계관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부모의 생각, 관점, 식성, 문화적 소양을 직간접적으로 학습한다. 따라서 대화가 없는, 소통하지 않는 부부, 부모와 자녀, 형제관계는 남보다 못하다. 생물학적 혈연 관계를 끊을 수는 없으나 서류상의 관계일 뿐.

 

그러니 가족을 구성하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운 사이라서 가장 잘 안다는 생각은 착각이 아닐까. 부모가 자식을 안다는 말은 직립보행을 시작하면 하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자식은 부모를 이해할 수 있을까.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은 환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행복한 가족은 누군가의 희생과 인내, 굴욕과 분노 위에 세워진 신기루 같은 게 아닐까.

 

이렇게 건조하고 냉소적인 그러나 내 생각과 일치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 일은 지나치게 반갑다. 시모주 아키코는 가족이라는 병에서 가족의 의미를 독자에게 되묻고 있다. 1936년생이라는 작가의 나이를 고려하면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가족은 그녀에게 함부로 안다고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구성원 각각의 내면을 들여다 보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는 가족은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다.

 

친소여부를 떠나 가족을 화제로 올리는 사람들은 불편하다. 시모주 아키코의 말대로 가족 이야기는 자랑 아니면 험담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남의 가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가족 이기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는 사례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뉴스와 일상에서 매일 접한다. 이 책은 가족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와 생각을 점검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일본 육사출신 아버지와 순종적인 어머니 그리고 오빠와의 관계에서 작가의 이야기는 출발한다.

 

성인이 되어 반려伴侶를 만나 한 평생을 살지만 자식을 낳지 않고 자기 삶을 꾸려온 시모주 아키코는 인간은 늘 혼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의 기분을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나 사회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지나치게 기대는 관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모래알처럼 각자 사는 가족 또한 가족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함께 밥을 먹지 않고, 대화를 나누지 않으며, 눈을 마주치지 않는 가족은 생활 공동체에 불과하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을 넘어 이제는 다양한 주거, 가족 형태가 등장했다. 반려견이 자식을 대신하고 비혼자들의 쉐어하우스, 1인 가구의 주거 공동체도 심심찮게 소개된다. 스트레스와 상처를 주는 가족보다 서로 존중하고 생활의 편의를 추구하는 공동 주거가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대체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개인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전체가 아닌 부분을 들여다보고 각자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식이니까 언제까지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 끝나지 나를 지켜줄 거라는 오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폭력은 대부분 가족 안에서 이루어진다.

 

지나친 기대와 믿음도 위험하지만 침묵과 증오도 가족을 해체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이 책은 가족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담고 있다. 한 평생을 살면서 작가가 경험한 가족 이야기를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이 가족을 대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가족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정답은 없지만 나는 시모주 아키코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서로 기대고 힘이 되어주는 가족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그 웃음과 기쁨이 유지되기 위한 희생과 노력은 누가 얼마만큼의 비율로 나눠가져야 하는 걸까. 보이지 않는 무수한 폭력과 상처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가족은 왜 필요한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까지 떠나보낸 작가는 4부에서 그들에게 비로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그들의 인생을 보여주고 자신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가족을 객관화한다. 한 인간에게 가족은 삶의 행복이며 존재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굴레와 영혼의 감옥일 수도 있다. 사회적 지위, 부와 명예는 복권처럼 손에 거머쥔 가족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가족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설명하기 어렵다.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다루는 인간의 관계양상은 사랑 혹은 가족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이 사회적 관계로 어떻게 전환되는지에 따라 우리 삶은 천국 혹은 지옥이 된다. 당신은 어떤 가족과 함께 살아왔는가, 아니 어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가?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 어둡고 먼 길을 홀로 걸어왔던 것처럼 마지막에는 결국 혼자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면서 말이야. -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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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이라는 환상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의 인격을 되찾는 것, 그것이 진정 가족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름길이 아닐까 한다. - 13

 

자신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데,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배우자 역시 타인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타인이다. - 18

 

거짓은 화목하지 않은 가정보다 화목한 가정에 있다. 솔직한 심정으로 마주하면, 부모와 자식은 대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겉으로 화목해 보이는 가족보다는 사이가 나빠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선택할 것이다. 42

 

가족 사이에는 산들산들 미풍이 불게 하는 것이 좋다. 상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밀착하거나 사이가 너무 벌어져 소원해지면 가족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다. - 66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무수한 일을 화제로 삼는데, 그중에 삼 분의 일이 남 얘기다. 삼 분의 일은 남자와 여자에 관한 얘기, 그리고 나머지 삼 분의 일이 필요한 애기라고 한다. 즉 삼분의 이는 하나 마나 아무 상관 없는 애기라는 뜻이다. 가족 얘기는 어디에 속할까. 남 얘기다. 삼 분의 일이나 그런 화제에 할애하다니 놀랍다.

가족 얘기는 왜 하나 마나 한 시시한 얘기일까. 그래봐야 자랑이거나 불평이며, 발전성이 없어서다. 대화를 나누는 사람끼리 가족 얘기를 하면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든지,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어느 쪽이든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76

 

나이를 먹으면 화제가 빈곤해진다. 관심의 범위가 좁아지는 탓이 클 것이다. 병이나 건강에 관한 얘기,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보나 마나 가족 얘기다. - 77

 

가족 얘기를 늘어놓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 가족 외에는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다. 자기 가족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가족 이기주의다. - 78

 

가족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다. 반대로 가족이 없어서 불행하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 114

 

인간은 늘 혼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의 기분을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나 사회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 아닌가. - 129

 

무슨 일이 생기면 상대를 배려하고 돕는 것이 가족이다. 진정한 가족은 핏줄로 이어진 가족을 뛰어넘는 곳에 존재한다. - 174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 어둡고 먼 길을 홀로 걸어왔던 것처럼 마지막에는 결국 혼자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면서 말이야. -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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