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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산문의 길, 스타일 - 품격 있는 글쓰기 지침서의 고전
F. L. 루카스 지음, 이은경 옮김 / 메멘토 / 2018년 4월
평점 :
문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정확할 수 있으나 그만큼 지루하거나 단조로워질 것이다. 성패를 떠나서, 나는 그보다 더 일반적이고 긍정적인, 그러나 그만큼 답을 찾기가 힘든 질문에 답하려 노력했다. 그 질문은 바로 구어든, 문어든, 언어에 설득력 내지는 힘을 부여하는 속성은 무엇인가이다. - 22쪽
문체는 작가의 지문이다. 같은 내용도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쓴다. 출발지와 도착점이 같아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법을 선택한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시간, 거리, 비용을 계산한다. 내비게이션, 포털의 길찾기 서비스가 이를 대신해 준다. 하지만 이 방법은 건조하고 지루하다. 조금 시간이 걸려도 나는 버스를 탄다. 지하철의 답답함과 부딪침을 견딜 수 없고 무엇보다도 시선이 자유스럽지 못하다. 버스 창가에 앉아 편안히 책을 펼칠 수 있다면 시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환승보다 가까운 거리는 걷는 쪽을 선호한다. 시골 영감처럼 두리번거리고 새로 지은 건물을 올려다 볼 때도 있다. 사람에게 관심이 적은 대신 사물에 호기심을 갖는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목적지를 향하는 수많은 방식 중 글을 쓰는 사람이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중요하다. 선호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개성과 문체가 된다. 짧게는 단어의 선택과 문장의 구조부터 길게는 단락의 구성과 글의 흐름까지 모두 글을 쓰는 사람의 성향과 특징을 드러낸다.
프랭크 로렌스 루카스의 『좋은 산문의 길, 스타일』(1955년)은 글 잘 쓰는 기술이라는 원제에 값한다. 스타일style은 ‘문체’라고 번역한다. 문학 이론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스타일은 문체보다 그 의미가 넓고 크다. 장석주는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서 “글쓰기란, 문장의 예술이자 기술이며 제작이다. 누구나 훈련을 쌓고 연습을 하면 좋은 문장 쓰는 법을 익힐 수 있다. 단, 그것은 배우는 데는 일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다 할지라도 지레 포기하지 마라. 글쓰기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공부요, 평생 그것을 배울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일이다.( 107쪽)”라고 말한다. 자기 스타일을 만드는 데 일생이 걸릴 수도 있다는 의미다. 루카스의 말하는 스타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글을 잘 쓰는 기술 전체를 통칭하는 ‘스타일’이라는 말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고민과 노력의 지난한 과정이다.
다음 달에 출간될 글쓰기 책 교정지를 늦도록 들여다보았다. 매번 겪는 고민의 순간이다. 교정, 교열 전문가의 빨간펜, 편집자의 의견이 ‘정확한 표현과 문장’, ‘깔끔한 논리 구조’에 부합한다. 하지만 문법책처럼 건조하고 지루한 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같은 의미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재미없는 농담, 과장된 표현, 부적절한 비유, 주관적 판단이 때로는 빠르고 정확한 지하철이 아니라 버스와 도보를 섞어 걷는 여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변명을 하고 싶었다. 에세이는 말하는 내용만큼 전달하는 방식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편집자와 때로 의견이 충돌하고 때로는 공감하며 1차 교정지를 넘겼다.
어둔 버스 차창 밖으로 흐린 불빛이 흔들렸다. 누구나 읽고 쓴다. 방법을 몰라서 또 한 권의 글쓰기 책을 보태려 하는 것일까. 글쓰기는 과연 배움을 통해 얼마나 향상 될 수 있을까. 빠진 주어를 채우고, 어순을 바로 잡고, 문장을 고치면 나아질까. 루카스의 책이 한줄, 한줄 아프게 새겨진 건 아마도 읽고 쓰는 일 이외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한없이 부족한 한 인간의 내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우선 문체의 기초를 ‘인격’이라고 지적한다. 존경받을 만한 성품과 부드러운 말씨, 긍정적이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가 아니어도 읽고 쓸 수 있을까.
이 책은 대체로 문학적 글쓰기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대의 문장가와 영어라는 언어의 특성을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에 실수로 선택할 가능성도 많아 보인다. 늘 그러하듯이 저자의 약력, 출판사의 홍보 문구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내게는 바늘처럼 예리한 문장들이 많았다. 잠간씩 생각에 잠겨 필사를 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어떤 사람들은 시의 모호성을 찬양한다. 그러나 산문에서 모호성은 끝없는 저주가 될 수 있다.(28쪽)” 글쓰기 책을 읽는 사람 중 몇 명이나 시인을 꿈꾸겠는가. 대체로 생의 도구로 활용되는 글은 산문이다. 이는 다시 픽션과 논픽션으로 나눌 때 논픽션일 것이다. 문학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모호성ambiguity은 시를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러나 산문에서 애매한 표현은 오해를 낳고 의심을 잉태한다. 정확하고 분명한 목소리와 논리적 전개가 기본이다. 법전과 문법처럼 건조하고 지루할 만큼 철저하게 훈련하지 않는다면 물 흐르듯 자연스런 문장을 쓰는 일은 불가능하다.
글의 주제가 무엇이든, 읽기 수월한 문체는 가장 얻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일 테다. 아나톨 프랑스는 “자연스러움이란 가장 마지막에 보태진다.”라고 말한다. 또 미켈란젤로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가장 공을 들인 것은 마치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듯 성급히 던져진 것처럼 보여야 한다. 아니 진실과는 달리, 아무런 수고도 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여야 한다. 수월해 보이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무한한 고통이 따른다. - 379쪽
루카스는 명료성뿐만 아니라 ‘간결성과 다양성, 세련성과 소박함, 낙천절 기질과 유쾌함, 건강과 활력, 직유와 은유’에 대해 조언한다. 책을 읽는 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 갖춰야 할 기질적 특성과 조건 그리고 부단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비록 논픽션에 초점을 맞춘 책이 아니라서 아쉬웠지만 이것이 글쓰기 비법이라고 울부짖는 글쓰기 방법론이나 글쓰기 비법을 소개하는 책과 달리 다양한 예문을 통해 읽는 사람 스스로 선택하고 그 기술을 터득하도록 자연스레 안내하는 방식이어서 좋았다.
글은 형식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고, 내용에 맞는 형식의 옷을 입힐 수도 있다. 책읽기든 글쓰기든 한번쯤 찾아올 빅뱅의 기회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부단한 노력과 자기반성을 통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맹목적 열광도 처절한 좌절도 필요 없다. 목적도, 환상도, 희망도 없이 걸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