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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림이 말했다 - 생활인을 위한 공감 백배 인생 미술
우정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1960년대 벌어졌던 문학의 ‘순수-참여’ 논쟁은 이어령과 김수영 개인의 의견 대립이 아니라 오랫동안 예술가들에게 던져진 숙제였다. 당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현실’ 반영 문제는 누구에게나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문학은 물론 그림과 음악도 마찬가지다. 예술은 현실 너머의 숭고한 대상을 표현할 수도 있으나 지금-여기에 발 딛고 서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얻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비루한 일상,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없다. 예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면서 때로는 도구로 활용된다. 어느 쪽이든 프로파간다다.
예술을 보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우선 미술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기원전 3000년 전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5천여 년에 걸친 인류 문명사에 얼마나 많은 예술 작품이 있겠는가. 각 시대별 특징과 유파를 고전주의부터 팝아트까지 일별할 수 있는 지식은 작품 감상을 풍부하게 만든다. 여기에 당대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이해, 작가의 생애를 더하면 충분하다.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볼 것을 권유한다. 미술관이라는 특정 장소에 가야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책과 인터넷으로 눈요기를 즐긴다. 일상에서 친숙하게 그림과 조각을 접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오늘, 그림이 말했다』 같은 책이 아니면 설명을 듣기도 쉽지 않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휘트니 채드윅의 『여성, 미술, 사회』가 아니면 진중권, 이주헌, 박홍순 등이 쓴 해설가가 주종을 이룬다. 각각의 그림에 대한 개별적인 감상,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책은 거의 없다. 그림에 대한 간단한 지식, 미술사의 위치, 개인의 일상을 함께 소개하는 정도다. 이런 류의 책들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이유는 언제든 찾아가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정 기간 동안 기획 전시되는 그림을 보고 나면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몇 달 쯤 유럽의 미술관에 처박혀 그림만 보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적인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오늘, 그림이 말했다’를 펼쳤다.
그런데 ‘오늘’은 없었다. ‘생활인을 위한 공감 백배 인생 미술’이라는 부제까지 생활밀착형 그림 설명을 기대했으나 ‘현실’이 없었다. ‘소재를 고르면서는 때마다의 사회적 이슈와 연결되도록’이라는 머리말에 기대가 부풀었으나 그림과 현실의 접점이라는 가장 큰 특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현재적 관점으로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설명이 가끔 눈에 띄긴 했으나 다른 그림 해설서와 뚜렷이 차별화되는 지점이 없어 안타까웠다. 적당한 지식과 감상을 보여주는 문안한 책으로 보면 충분하다.
신문에 연재 특성상 일반적으로 적절한 깊이로 조절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특정한 키워드로 단단하게 묶거나 시대와 유파를 넘어 저자 나름의 관점을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림을 보는 전문가의 안목을 빌려 사람들은 흥미를 갖게 되고 미술관을 찾는다. 풍부한 서사가 곁들여지든, 일반적인 감상에서 벗어나더라도 독특한 관점이 드러나는 책이 기다려진다. 순전히 개인적이 취향일 수 있으나 박홍순의 『생각의 미술관』이 오히려 그림을 재밌게 감상하며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상상의 힘과 여지를 남겨 주거나 어떤 식으로든 자기 관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서양 미술에는 수없이 많은 여자가 등장하지만 그들은 딱 세 부류로 나뉜다. 예쁜 여자, 나쁜 여자 그리고 어머니다. …… 예쁜 여자의 전형은 비너스이고 나쁜 여자의 대표는 이브이며 어머니의 신은 성모마리아다. - 1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