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창비시선 419
박라연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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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해석은 평론가의 몫이고 독자는 말놀이를 즐기면 그뿐이다. 한국어의 감각을 일깨우고 소설처럼 선명하진 않아도 나름의 이미지를 창조하며 감수성을 자극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길을 걷다 서점에 들러 박라연의 시집 표지를 보았다.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를 기억한다. 조금 늦은 나이에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의 언어는 응축된 의미보다 현란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깊이와 넓이를 확보하는 일보다 말을 부리는 일이 더 어렵다. 생각과 표현 사이의 거리를 극복하기 위한 각자의 몸부림이 있을 테지만 박라연에겐 그 고통이 즐거워보였다. 어린 시절에 읽은 시집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이 떠올라 시간의 이편과 저편을 오갔으나 회한이 느껴지진 않았다. 시인도 독자도 딱 그만큼 세월을 견뎠을 테고 시간은 계속 흐를 테니 말이다.

 

오랜만에 읽는 박라연의 시집 서시는 시간에 대한 우리가 누린 적 있는 눈부신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이 눈부신 줄도 모르고 흘려보낸 시간들. 혹자는 그 시간 속에 있을 테지만 지나고 나야 겨우 깨닫는 그런 시간들.

 

 

아름다운 너무나

 

우리가

누린 적 있는 눈부신 시간들은

 

잠시 걸친

옷이나 구두, 가방이었을 것이나

 

눈부신

만큼 또 어쩔 수 없이 아팠을 것이나

 

한번쯤은

남루를 가릴 병풍이기도 했을 것이나

 

주인을 따라 늙어

이제

젊은 누구의 몸과 옷과

구두와 가방

아픔이 되었을 것이나

 

그 세월 사이로

새와 나비, 벌레의 시간을

날게 하거나 노래하게 하면서

 

이제 그 시간들마저

허락도

없이 데려가는 중일 것이나

 

 

시간은 인간을 옹색하게 만든다. 연륜과 혜안은 저절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세월 사이로 빠져나간 눈부신 청춘과 뜨거운 열정에 값하는 고통을 다시 경험하고 싶진 않다.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일하고 끊임없이 또 다른 욕망에 절망하고 가진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삶의 형태가 조금씩 다를 뿐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처구니없을 만큼 단순하고 감각적이다. 인간의 삶은 다 그러하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무너지면 사람 혹은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두게 된다. 불면의 원인은 근심과 걱정이 아니다. 스트레스와 집착도 아니다. 죽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잠이 들면 깨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의 증상이 불면이다.

 

 

불면이 뭐라고 생각하나?

잘 죽지 못하는 거

단번에 죽지 못하는 거

 

잠이 뭔가?

죽는 연습

 

모두가 조용히 빈틈없이 죽고 없는 시공에

혼자 남아

죽다 깨다를 반복하면 어쩌지?

 

 

잠이 죽는 연습이라면 불면은 죽음에 대한 거부 반응이다. 연습조차 거부하는 생의 집착. 과연 그런가? 박라연의 이번 시집에는 타인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세상의 모습도 감춰진 듯싶다. 귓가에 속삭이듯 보이지 않는 천사가 이야기를 건네듯 목소리가 낮다. 감정의 기복이 없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건조하다. 감정을 배제한 축구 해설가의 따분한 목소리처럼. 그런데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누가 썼든 시는 특히 독자마다 다른 의미로 읽히는 것이 좋다. 개별 독자의 삶이 다르고 감정과 생각이 같지 않은데 시인의 말이 똑같이 전해질리 없다. 뜨거운 봄날 도심 한복판에서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는 문장을 보니 헤어진 이름은 떠오르지 않고 태양이 원망스러웠다.

 

 

 

고민,이란 친구에게 밥과 잠을 넘겨주면서

너의 허리는 얼마나 가늘어져야 했는지

두 눈은 또 얼마나 퀭해져야 했는지

 

분노와 슬픔으로 저녁을 짓고 뿌리내리던 주인들에게

감히 부탁해도 될까

 

누구의 고통이든

산 자들의 세끼들인데 화면을 확 돌려버리듯

외면하려 한 죄 용서해다오

살아서 펄떡이는 심장에서만 반짝이는 금모래빛

 

너의 빛으로 나의 내일을 뜨개질해다오

뼛속까지 휘파람 불게 해다오

 

 

봄날은 간다. 몇 번이나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지만 계절은 가고 또 다른 계절이 온다. 온도와 습도 태양의 뜨거움에 맞게 꽃도 나무도 그리고 사람도 자라고 익어간다. 봄은 기쁨과 아니라 분노와 슬픔이다. 뼛속까지 휘파람 불 일이 없으니 천연덕스럽게 해다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시인에게 봄날이 어떠하든 잔인한(?) 4월이 가고 화려한(?) 5월도 지나가리라. 두 눈이 퀭해지는 밤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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