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진중권에게 빚이 있다세상에 수많은 작가들에게도 그렇겠지만진중권은 나의 미술 선생님이다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2년 동안 뭔가 그리고 만들고 외웠으나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내 발로 미술관을 찾기 시작한 건 라루스 서양미술사』 일곱 권을 꼼꼼하게 읽은 다음부터가 아니었을까시작은 미학 오딧세이를 접하고 난 후의 일이겠지미술관에는 혼자 오는 여자들이 많지만 혼자 오는 남자는 거의 없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는 이미 3권이 완간되었다. ‘고전예술 편’, ‘모더니즘 편’,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이 그것이다이번에 나온 인주주의 편은 고전과 모더니즘 사이를 잇는 보론이다중간에 비어있는 시대를 채워야하지 않았겠나이밖에도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교수대 위의 까치현대미학강의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책은 누구에게나 어떤 작가든 다른 이미지를 심어놓고 떠난다같은 책도 독자마다 다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경우는 작고한 경우와 또 다르게 받아들여진다오롯이 책의 내용만 전달되는 게 아니라 그의 개인사언행도 수용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논객으로서 진중권은 이미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번에 나온 인상주의 편은 앞선 저작보다 명쾌하다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를 거쳐 신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에 대한 흐름을 명쾌하게 전달한다진중권의 가장 큰 장점이다분명함상대적으로 약점이 될 수 있으나 이 책은 이미 존재하는 시대구분을 최대한 활용하고 대표적인 화가와 그림을 제시하며 독자의 머릿속을 모눈종이처럼 정확하게 획정한다이래도 정리가 안 되느냐는 듯이여전히 아쉬운 건 한국어 문장에 대한 노력 부족비문은 아니나 거친 문장과 번역투옛스러운 문장 구조가 난무하여 자꾸 신경이 쓰였다여기다 문장 지적질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신경 쓰지 않는 건 같아 한마디 보탠다
  
중세의 장인들이 세계를 아는 대로’ 그리려 했다면르네상스의 화가들은 보이는 대로’, 사실주의 화가들은 있는 대로’ 그리려했다인상주의impressionism 화가들은 사물에 대한 주관적인 느낌 즉 인상impression을 그렸다자연스럽게 빛과 색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가시적 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가시적 세계에 대한 순간적인 분위기가 우선이다형태는 지워지고 빛과 색만 남는다사실주의와 라파엘전파의 차이를 들여다보는 동안 어느덧 마네의 올랭피아를 들여다보고 있다수많은 전시회를 돌며 한번쯤 들여다본 그림들과 익숙한 화가들의 계속 등장한다새로운 그림과 화가를 발견하는 즐거움은 없다다만 모더니즘 이전 시대의 미술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차분함으로 충분했다
  
나는 모네보다 고흐의 그림 앞에서 훨씬 오래 머물렀던 기억을 떠올렸다수동적인 인상주의 보다 적극적인 표현주의expression가 마음에 든다예술가의 작품 활동이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어차피 고독한 자기만의 길이 아닌가그래서 뭉크의 절규가 뭉클한 감동을 준다상징주의를 넘어 모더니즘으로 넘어가기 전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잔의 그림은 역시 시대를 앞선 느낌이다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이야기로 넘어오면 현실이 보인다
  
두 개의 보론과 마지막에 잘 정리된 모더니즘을 향하여는 그대로 미술관에 가기 전 벼락치기 공부로 읽어두면 좋다요즘은 미술관에 가면 대부분 오디오 가이드를 받는다도슨트 시간을 맞추기도 하지만 손쉽게 이어폰을 꽂고 안내를 받는다그러나 그림이나 조각대신 설명에 집중하다 보니 주관적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의 느낌과 감동도 노력이 필요하다간략한 미술사에 대한 지식과 각 유파와 화가에 대한 지식을 얻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그림을 이해하는데예술을 즐기는데 필요한 건 사실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와 관심이다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미술관이 있고 놀랄 만큼 자주 전시회가 열린다통장의 잔고는 부러워하면서도 예술적 감수성은 부럽지 않을까돈으로 살 수 없는 감동과 두근거림과 여운을 주는 그림 하나음악 한 곡의 위대함.
  
현실 너머를 꿈꾸지 않는 사람에게 난 늘 연민을 느낀다자기 세계가 좁은 사람은 감옥에서 산다는 사실을 모른다어느 철학자는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고 했지만 미학적 안목은 또 다른 세계의 한계를 보여준다넓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간지러운 감상주의가 아니라 통찰력 있는 안목을 갖고 살아갈 수 있기를
  


중세의 장인들이 세계를 ‘아는 대로’ 그리려 했다면,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보이는 대로’ 그리려 했다. 중세의 장인들이 그림을 ‘신학적 관념의 표현’으로 여긴 것과 달리,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그것을 ‘가시적 세계의 재현’으로 여긴 것이다. 이들이 가시적 세계를 재현하려 한 것은 물론 그 세계가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중세인들은 현세를 경멸하는 경향이 있었다. - 19쪽

거칠게 말하면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양식, 1830년의 시민혁명이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 양식으로 표현되었다면, 사실주의는 1848년 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탄생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 71쪽

‘사실주의’라는 말도 크게 세 가지 상이한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먼저 ‘대상의 사실적 묘사’라는 의미. 이 경우 사실주의는 사실상 자연주의의 동의어가 될 것이다. 둘째는 ‘당대 사회의묘사’라는 의미. 사실주의는 산업혁명의 결과로 출현한 ‘모던’의 사회상을 그린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법으로서 자연주의와 뚜렷이 구별된다. 셋째는 ‘현실의 비판적 묘사’라는 의미. 사실주의의 바탕에는 종종 부당한 현실에 대한 고발과 비판의 정신이 깔려 있다. 물론 어떤 것이 사실주의 회화라 불리기 위해 이 세 조건을 모두 갖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첨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현실의 변혁’이라는 의미다. 이미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자들은 예술을 사회변혁의 정치적 무기로 여겼다. - 72쪽

인상주의자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외광을 쫓아서 야외로 나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제재가 아니라 빛의 효과였기에, 그들은 현장에서 신속하게 스케치를 한 후 바로 채색에 들어가곤 했다. 이를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해준 것은 1840년대에 발명된 튜브 물감이었다. 튜브 물감이 없던 시절에는 원하는 색의 물감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채색을 화실 안에서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119쪽

고흐는 노랑을 좋아했다. 노랑이 감정적 진실의 상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235쪽

상징주의는 사실주의․인상주의․과학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탄생한 운도응로, 급속한 산업화․도시화․세속화로 뿌리를 잃은 사람들이 느끼는 극심한 정체성의 위기를 반영한다. 대도시의 환경에서 적응할 수 없었던 이들이 냉혹한 현실에서 환상의 세계로 정신적 피정을 떠난 것이다. - 272쪽

세잔의 작업은 고전미술이 현대미술로 이행하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였다. 그의 화면에서 발견되는 ‘색채의 놀라운 풍부함’과 기하학적으로 단순한 형태, 고전적 원근법과 다른 체험된 원근법은 20세기 현대미술의 초석이 된다. 마티스는 그에게서 색채의 효과를, 피카소는 그에게서 형태의 기하학적 단순화와 고전적 원근법의 파괴를 배웠다. 현대미술의 두 위대한 이정표 모두 세잔을 ‘아버지’라 부른 것은 그 때문이다.

형태는 기능에서 나온다. 기능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이 새로운 미감을 우리는 ‘모더니즘’이라 부른다. - 3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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