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파티 - 영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캐서린 맨스필드 외 지음, 김영희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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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장편소설이 주도한 나라지만 세계 문학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문학과 예술도 결국 경제력과 무관하지 않지만, 먹고 살만한 사람들의 유희에 불과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가든 파티는 영국의 단편을 묶은 책이다. 8명의 작품 11편을 소개한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의 작품들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시기부터 산업혁명으로 상전벽해가 이뤄지던 시기의 단편은 영국인의 정서를 잘 담아낸다.

 

캐서린 매스필드의 가든 파티를 표제작으로 내세운 건 나머지 작가들이 장편으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찰스 디킨즈, 토머스 하디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 도리스 레씽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작가들의 단편을 모았다.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의 단편들이 비슷한 시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세계사의 중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느낌이라면 영국의 단편에서 다루는 주제와 이야기들은 근현대사의 중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찰즈 디킨즈의 신호수는 열차라는 근대의 상징을 넘어 소외된 개인의 좌절과 무력감을 다룬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의 형식과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토머스 하디의 오그라든 팔, 버지니어 울프의 큐 가든유품은 초창기 페미니즘 문학의 방향을 짚어보는 데 유용하다. 도리스 레씽의 지붕 위의 여자로 이어지며 시간의 간극을 읽어내기에도 좋다. 소설은 언제나 컨텍스트를 읽어내는 2차적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단순히 스토리와 유려한 문장보다 씨줄과 날줄로 얽힌 시대와 공간을 들여다 보는 재미가 적지 않다.

 

조지프 콘래드의 진보의 전초기지는 콩고의 상아 무역 담당 출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제국주의 말단 집행자들을 통해 역사와 현실을 비판한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꿰뚫어보는 작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어떻게 쓰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쓰느냐가 내겐 더 중요한 관심사다. 대상이 동일해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 단편을 통해 우리가 읽어내는 것은 지나간 시대의 단면이 아니라 현재를 이룩한 과거의 아픔이다. 미래도 결국 현재의 결과일 뿐이니.

 

제임스 조이스의 애러비구름 한 점은 현대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버지니어 울프와 더불어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나 자동기술법auto-writing을 활용하며 인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서술 방식 때문이다. 사소설, 심리소설이 주를 이루기 시작한 건 냉전 시대 이후 사회적 관심사가 개인의 문제로 귀착됐기 때문이 아니다. 언제나 소설의 중심은 인물이었다. 그 인물이 겪는 갈등에 따라 소설의 종류를 나누기도 하지만 결국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소설을 읽는 재미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궁금한 게 아니라 선택의 이유와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궁금하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시기는 그 이전의 어느 시기보다도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 속도가 눈부셨다. 눈에 보이는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는 개인의 혼란과 아노미 상황은 근대에서 현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윤리와 도덕적 가치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들, 인간 존재에 대한 혐오와 부조리,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의 발달은 오늘도 계속된다.

 

돌아서면 모든 게 새롭다. 아니 낯설다. 한 순간도 머물러 있는 건 없는 것 같다. 잠시 있다 없어진다. 깜빡깜빡. 불빛이 나타났다 이내 사라지듯. 그 이전의 불빛과 밝기가 변하듯. 영국 사회의 변화는 제국주의와 산업사회로 요약될 수 없는 깊고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다. 그 화려하고 찬란한 빛(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그늘(좌절과 실패)이 보이지 않는다. 반성적 태도로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지만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지 못하는 소설이라면 굳이 나무를 희생시킬 필요가 없다. 소설은 도구일 뿐, 훌륭한 작가들을 통해 읽어야 할 것은 인간의 허위의식과 폭력, 역사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다. 철학과 역사, 과학과 예술 - 분야는 중요하지 않다. 개인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주변과 집단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그래서 남은 시간을 나는 그리고 너는 어떻게 살 것인가. 소설은 길을 안내하는 대신 있던 길을 지운다. 길이 없다면 어디로 가야할까. 선택은 잔인하다. 물론 정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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