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
닐 게이먼 지음, 박선령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야기에 매료되는 존재다. 스토리텔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마케팅에서 수학교육에 이르기까지 활용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서사의 힘은 강하다. 기억을 강화하고 마음을 움직인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모든 이야기는 끊임없이 반복과 변조를 이어간다. 인간의 공포와 상상력이 빚어낸 신화는 모든 이야기의 원형이다. 이야기는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태초에 빛이 있었을까. 그 빛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됐을까. 밤과 낮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태양과 달과 별은 누가 만들었을까. 종교가 발명되기 전에도 질문하는 인간은 어디에나 있었을 터.

 

닐 게이먼이 쓴 북유럽 신화는 원초적인 궁금증에 대해 무한상상력을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땅도, 하늘도, 별도, 달도 없고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형체도 모양도 없는 안개 세상과 언제나 활활 불타오르는 불의 세상뿐이었다.’는 문장을 읽고 잠시 생각했다. 이 신화는 현대과학의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가! 상상이 과학을 앞서가는 일이 빈번하다. 이성의 눈을 감고 현실을 떠나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을 듯하다.

 

북유럽 신화는 다른 지역의 신화처럼 권위와 신성성을 부여한다. 신들의 이야기니 당연하겠지만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세계다. 이그드라실과 아홉 개의 세상은 규모부터 남다르다. 그 중에서 아스가르드에 사는 에시르 신족과 바니르 신족이 주인공이다. 신들의 아버지 오딘, 천둥의 신 토르, 불의 화신 로키가 이야기의 중심 축이다. 절대 망치 묠니르를 든 토르는 여전히 영화의 주인공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 지역적 특색이 신화의 배경을 이룬다. 거인들의 땅 요툰헤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이야기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신화는 상징이며 알레고리다. 이야기 자체의 재미로도 충분하지만 신화는 현실을 재해석하며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이 가능하다. ‘시인의 꿀술이야기에 대한 해석이다.

 

그날 이후 우리는 언어로 마법을 부리는 사람들, 즉 시와 전설을 만들고 이야기를 자아낼 수 있는 사람은 시의 꿀술을 맛본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훌륭한 시를 들으면 그들이 오딘의 선물을 맛봤다고들 말한다.

보라, 이것이 시의 꿀술과 그것이 세상에 전해지게 된 방법에 관한 이이갸기다. 불명예스러운 행동과 속임수, 살인과 사기가 가득한 이야기.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말해줄 이야기가 하나 더 있는데, 비위가 약한 사람은 다음 이야기로 건너뛰기 바란다.

독수리의 모습을 한 최고신이 통에 거의 다다랐을 때, 주퉁은 그의 바로 뒤까지 따라와 있었다. 오딘은 꿀술 일부를 엉덩이로 내보내 고약한 냄새가 나는 꿀술 물방귀를 주퉁의 얼굴에 뿜어냈다. 그리고 인해 거인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되어 더 이상 오딘의 뒤를 쫓지 못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딘의 엉덩이에서 나온 꿀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엉터리 시인이 바보 같은 직유와 이상한 각운으로 가득한 형편없는 시를 읊는 걸 들을 때면, 그가 어떤 꿀술을 마셨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155

 

예술의 속성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모험담을 닐 게이먼이 이렇게 해석한 것일까. 시인 뿐 아니라 글을 쓰는 모든 사람에게 가하는 일침이다. 시의 꿀술을 맛본 사람들의 그늘진 욕망을 들춰내는 이야기다. 이밖에도 신들의 보물’, ‘토르의 거인 나라 여행’, ‘게르드와 프레이 이야기등 라그나로크에 이르는 천지창조에서 신들의 몰락에 이르는 과정에서 재미는 물론 교양이라는 덤까지 얻는다.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신들에게 최후의 운명이 닥칠 때까지 인간이 설 자리는 없었다. 오딘과 빌리와 베가 의지와 지성과 추진력을 주고 인간의 형상을 짓고 물푸레나무라는 뜻의 아스크Ask’와 느릅나무라는 뜻의 엠블라Embla’를 만들었다. 아스크와 엠블라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고 어머니다. 우리 모두의 조상이다. 그리고 미드가르드라는 안전 지역에 살게 되었다. 거인과 괴물과 황무지에 도사린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곳에 인간이 산다. 지금도 여전히.

 

하지만 신들의 바람과 달리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은 미드가르드조차 지옥으로 만들었다. 지금 우리는 오딘과 벨과 베가 태초에 만든 형상으로 살고 있지 않다. 그것이 저 지구 반대편 북쪽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라서 단지 재미로만 읽힌다면 곤란하다. 온라인 게임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도,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도구는 더더욱 아니다. 북유럽 신화는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상상력의 원천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오만한 인간에게는 겸손을, 미드가르드를 지옥으로 만드는 인간에게는 경고를, 라그나로크를 잊은 자에게는 성찰을 촉구하는 듯하다.

 

생명생명에 대한 갈망으로 출발한 인간은 이제 더 이상 게임 속의 이야기로만 북유럽 신화를 받아들이지 않아야 할 때다. 재미로 시작한 북유럽 신화는 언제나 그렇듯 우울한 자기 반성으로 끝났다. 신들의 최후가 결말이 아니었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래도 게임은 계속된다. ‘그리고, 게임은 다시 시작된다.’(298)

 

수르트의 불은 세계수를 건드리지 못하는데, 이그드라실의 몸통에 인간 두 명이 안전하게 몸을 숨기고 있어. 여자의 이름은 생명이고 남자의 이름은 생명에 대한 갈망이지. 그들의 후손이 지상에서 살게 될 거야. 이건 끝이 아냐. 끝은 없어. 그저 옛 시대의 종말일 뿐이지.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기도 하고. 죽음 뒤에는 항상 부활이 따라와. 넌 패한 거야.”(헤임달이 로키에게 한 말) -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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