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빅히스토리 - 빅뱅부터 전쟁과 혁명까지
김서형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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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먹과 찍먹 사이

 

짬뽕과 짜장면, 물냉과 비냉 사이의 갈등은 이해하나 탕슉을 부먹이나 찍먹이냐로 고민해 본 적은 없다. 전혀 다른 음식, 서로 다른 맛을 넘어 이제는 같은 음식 같은 맛이지만 식감의 차이를 따질 만큼 우리는 배가 부르게 산다. 졸업식 날 온가족이 짜장면을 먹던 기억에 대한 언급은 꼰대질이다. 음식 문화가 변했다는 건 단순히 경제생활의 향상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트렌드는 문화가 되고 생활이 된다. 생활의 변화는 생각을 바꾸고 습관과 행동 그리고 운명을 조정한다.

 

사소한 차이에 시간이 결합하면 그 결과는 놀랍다. 스키 바인딩을 적절히 조절하면 큰 부상을 방지할 수 있지만 조절에 실패하면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다. 빅히스토리는 136억년 넘어에 놓인 빛과 어둠에서 출발한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시간의 흐름 속에 현재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것은 부먹과 찍먹의 바삭거림 차이가 아니라 탄생-성장-소멸을 가늠하는 존재론적 차이다.

 

김서형의 그림으로 읽는 빅히스토리는 두 가지 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우선 신선함이다. 그림으로 빅히스토리를 보여주고 있어 어느 한 쪽만 이해한 사람에게는 낯선 영역과의 결합을 보여준다. 물론 일관성 있게 전체적인 구성과 히스토리가 치밀하게 엮이지는 못했다. ‘우주와 생명의 탄생’, ‘인류의 빛과 그림자’, ‘혁명과 전쟁으로 우주와 인류의 빅히스토리가 모두 담길 수는 없다. 그래도 친숙한 그림에 담긴 과학, 신학, 역사, 사회, 전쟁, 근대화 이야기가 풍부하다. 또 하나의 장점은 한국인이 쓴 쉽고 적절한 설명이다. 번역서로만 접했던 빅히스토리를 우리글로 읽으니 더 쉽고 재미있다. 경어체를 사용한다고 해서 청소년용이 되는 건 아니다. 이런 책이 특정 독자를 대상으로 읽힐 필요도 없지만 누구나 거부감 없이 예술빅히스토리를 함께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나치게 전문적인 내용을 덜어내고 지식과 정보를 간명하게 전달한다.

 

 

재벌과 학벌 사이

 

초등학교 시절, 눈밑을 벌에 쏘인 적이 있다. 한쪽 얼굴이 부풀어 올라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선생님들의 기상천외한 체벌에 시달렸다. 자로 손등을 때리거나 부러진 눈밑을 꼬집거나 부러진 아이스하키 스틱으로 종아리를 때리거나 구레나룻을 쥐어뜯거나……. 그때 그 시절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어 재벌을 알게 됐다. 학문 영역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학벌 체제로 굴러가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혐오감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재용 2심 판결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승복한다고 해도 36억 아닌가! 누군가 공무원에게 36억의 뇌물을 주고 풀려날 수 있을까? 재벌공화국의 오명은 대통령이 바뀐다고 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견고한 기득권의 시스템과 그보다 더 단단한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어찌 하루아침에 무너지겠는가.

 

동종교배는 열성인자를 낳는다. 대통령의 권력이 국민을 무시하는 세상은 교수의 권위가 새로운 학문적 도전을 배척하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학벌 사회의 견고함은 학문의 동종 교배에서 비롯된다. 선생님의 권위가 아니라 새로운 생각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대학은 발전이 없다. 교수 자리를 탐하는 학자, 승진에 목숨 거는 공무원, 이익에만 집착하는 기업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재벌가의 몸종이 되지 못해 한이 되고 학벌로 줄 서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세상에서 우리들의 빅히스토리는 쓰일 자리가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빈센트 반 고흐의 삼나무와 별이 있는 길로 시작해서 모네와 고갱, 클림트, 루벤스, 김호도, 들라크루아, 윌리엄 터너, 조지 럭스의 헤스터가로 이어지는 스물 한 작품은 예술적 완성도 뿐 아니라 풍부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하나하나에 얽힌 우주의 신비, 생명의 탄생, 지구의 모습, 인류의 삶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상상하게 한다. 분과 학문에 매몰된 학교 교육을 넘어 거대한 퍼즐이 맞춰지는 공부는 가능한가. 서로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생각과 도전이 받아들여지는 세상은 가능한가. 재벌과 학벌이 아니라 상상력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변화와 공존은 가능한가.

 

혼자 꿈을 꾸면 공상이지만 다함께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는 훈데르트바서의 말은 선언적 의미만 갖는 게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치고 깨져도 소수의 가진자와 힘센자가 아니라 다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가진자와 힘센자가 되려는 노오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 발상의 전환과 각자의 빅히스토리가 필요하다.

 

 

팝핑[popping] : 재미를 보태고_대중성

1. 호모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조현욱 역, 김영사, 2015.11.24

2.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김영사, 2017.05.19

 

펌핑[pumping] : 외연을 넓히며_동질성

1.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이덕환 역, 까치글방, 2003.11.30

2. 빅히스토리, 신시아 브라운, 이근영 역, 바다출판사, 2017.12.04.

3. 시간의 지도, 데이비드 크리스천, 이근영 역, 심산, 2013.05.20.

 

점핑[jumping] : 깊이를 더해서_연계성

1. 위대한 설계, 스티븐 호킹/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까치글방,2010.10.06

2. 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김동광 역, 사회평론,200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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