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자이 미즈마루 -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안자이 미즈마루 지음, 권남희 옮김 / 씨네21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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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출판도시에서 일할 때 이야기다. 집이 과천이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4호선 사당역에 내려 2호선으로 갈아타고 홍대입구에 내려 파주 가는 직행버스로 직장에 가야 했다.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왕복 세시간을 출퇴근 시간에 쏟아부은 셈이다. 당연히 일터에 도착하면 기진맥진하며 진이 빠졌고 일요일 저녁이 되면 한 주를 맞이해야 한다는 공포에 떨었다. 아마 나와 같은 고통을 감내하며 지냈거나 버티고 있을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일자리에 목숨을 거는 인생에는 정성이 스며들 여유가 있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칠 뿐이다. 남에 대해 배려할만틈의 여유는 상상속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급하지 않은 일에는 대충 넘어가는 여유가 생길 수도 없다. 단 5분이라도 더 자기 위해 매일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사투를 벌여야 한다.

 

처음 안자이 미즈마루이 그림을 봤을 때 난 뭐야, 이 사람은 치열하게 살지 않는군. 일본인 답지 않은걸, 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수필 속의 삽화라지만 너무 성의없는 것 아니야.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자신의 책 속에 들어간 그의 그림을 본 작가도 개탄했다. 쯧 쯧 이렇게 대강 그려서야.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곧 그의 그림체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끌리더니 급기야는 중독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번 책에는 왜 안자이의 그림이 없는 거지? 대충 그리는 듯 해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을 다하고 있다는 진심이 독자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의 여러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익히 알려져 있는 하루키의 글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게 실린 그의 그림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2014년 그의 타계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게 아닌가 싶어 놀랐는데 그건 아니었다. 젊은 감각을 죽을 때까지 유지했다는 말이다. 제가 그린 그림은 별게 아니에요. 그냥 최대한 자연스럽게 쑥스러운 듯한 느낌을 지키려고만 했을 뿐이랍니다, 라는 기분을 지켜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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