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02.1.17

 

'현대 일본의 마지막 사상가'라는 후지따 쇼오조오(藤田省三)의
글을 묶은 책입니다. 재일조선인 2세인 이순애(李順愛)가 엮고
이홍락이 우리말로 옮겨 1998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냈습니다.
1999년 초, 고대의 정대 후문 쪽에 있는 장백서원에서 마지막으로
산 책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읽기는 2000년에 읽었는데,
제가 2000년에 읽은 책 중 최고였습니다.
누군가 자기 세계관을 진지하게 응시하려 한다면
이 책을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에서 제가 특히 별표를 찍어 놓은 글은
[불량정신의 찬란함]과 [소나무에게 들어라]입니다.

후지따 쇼오조오는 1927년생으로, 도쿄대 법학부에서 정치사상사를
공부하고 호오세이(法政)대학 법학부 교수를 역임했다고 합니다.

이 책의 엮은이 이순애는
"물론 후지따말고도 재일조선인 문제라는 사회문제에
양심적으로 대처해온 일본 지식인들이 있었다. 그와 같은
유형·무형의 연대가 없었더라면 재일조선인은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후지따만큼 자신의 인식과 존재,
그리고 정념의 절박한 존재양식을 통해 재일조선인의 영혼
부분에까지 다가서려 했던 일본인 지식인은 별로 없었다"고 씁니다.

일본 글을 직역하면 문장이 참으로 지저분하게 됩니다.
사실 이 책도 그런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기에
물 흐르듯이 순탄하게 읽히지는 않습니다만
한 마디 한 마디 후지따 쇼오조오란 사람의
예리하게 날세운 순백색 신경을 타고
뼛속 시린 사고의 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아프고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쓴 글도 아닙니다.

전체주의 혹은 파시즘이란 것이 2차 대전, 혹은 냉전 종식,
혹은 군인정권의 몰락과 더불어 사라졌다고 생각되십니까?
그러나 정보화, 탈집단화 사회, 아니 그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그는 '생활양식에서의 전체주의'를
몸으로 느낀다고 합니다. '안락에의 예속' 바로 그것이죠.
자신의 온 존재로 대상, 물질, 세계를 겪고 만나고,
그로써 고통이 따르는 경험을 통해 이해와 지혜를 얻기란
보육기 속의 만능 계측기를 지향하는 현대인에게
불가능해진 걸까요? 일률화한 사회질서에 굴복해
오직 '소비할 자유'만으로 만족하는 현대인에게는?

사회에 적응해 '둥글어진다는 것'은
사실 약자에게는 예사로 비수를 흩뿌리는 행위라는 거,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제가 권력의 노예입니다...

글 중에 <아리랑>의 서장을 해석한
[김산 서사시 서장에 대하여]란 것도 있어 흥미롭습니다.
내 <아리랑>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분명 한 권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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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길
베르나르 포콩 사진, 앙토넹 포토스키 글,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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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1. 11

 

베르나르 포콩(Bernard Faucon)이라는 프랑스 남자가 사진을 찍고
앙토넹 포토스키(Antonin Potoski)라는 프랑스 청년이 글을 쓴
책입니다. 원제는 La plus belle route du mond.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란 뜻이지요.
저작권 표시는 2000년으로 되어 있고 마음산책이란 출판사에서
2001년 2월에 우리말로 펴냈답니다. 옮긴이는 백선희.

일회용 사진기로 찍은, 입자가 굵은 사진에서
미얀마의 사원 벽돌을 달구는 열기와
사헬 지역의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합니다.

유명한 사진작가라는 베르나르 포콩은 1997년에
"내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날"이라는 축제에 전념했답니다.
그건 세계 20개국에 걸쳐서 청소년 2000명이 참여한 축제였다는데요,
이때 앙토넹 포토스키가 그와 함께 이 축제를 위해 세계여행을 했답니다.
이 책은 그 여행의 산물인가 봐요.

"거리를 걸을 때면 나는 누군가가 나를 납치해주기를 꿈꾸곤 했다.
내 등뒤로 다가오는 자동차 소리를 들으면서,
이번이야, 라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어린이 유괴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경험이 몇 차례 있는
나라 사람으로서, 책머리의 이 글을 보고는
진짜 '꿈꾸고 있네' 하는 생각부터 떠올랐지요.

미얀마의 옅은 황금빛 공기를 말하는 서두,
프랑스 식민지였던 사하라 남쪽의 아프리카 나라(말리)에서
강렬한 빛에 짓눌리며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 그의 몸,
그리고 쿠바의 밝은 빛 아스팔트가 깔린 고속도로를
한국제 자동차를 타고 테크노 음악을 들으며
그 아름다움과 난폭함을 받아들이는 그의 여행.

오리엔탈리즘의 혐의를 완전히 벗을 수는 없지만,
하얀 플라스틱 통에는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고
은색 뚜껑에 검은 잉크로 '말리 우유 딸기'라고만 찍혀 있는
말리의 요구르트를 마시고는 이 나라의 모든 요구르트가
그러리라 생각하고 그 통을 간직하지 않은 아쉬움을
말하는 대목, "떠나온 세계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간다"는
걸 아는 그의 양식, 황금빛 억새가 펼친 양쪽 책장 가득 휘날리고
그 너머 보랏빛 민둥산이 희미하게 보이는 사진 때문에
용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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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09-08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배우시는군요. 멋져요! 저는 전에 배우려고 했지만 게으른 탓에. 그리고 디카가 생기니 내멋대로 찍을 수도 있고 해서. ^^ 그래도 기술이 좀더 좋으면, 카메라가 좀더 좋으면 더 멋지게 찍을 수 있을 텐데 하곤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