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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 자녀교육법 - 혜경궁 홍씨, 인수대비, 사주당 이씨에게서 조선시대의 총명하고 어진 자녀 교육법을 배운다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05년 5월
평점 :
자료 삼아 읽은 책인데, “혜경궁 홍씨, 인수대비, 사주당 이씨에게서 조선시대의 총명하고 어진 자녀 교육법을 배운다”라는 부제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막상 책을 다 읽고 보니, 저 부제는 사실 아예 붙을 필요가 없었다. 혜경궁 홍씨, 인수대비, 사주당 이씨가 남긴 책의 내용을 인용하며 태교란 늘 삼가는 것이고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절제를 가르치는 것임을 밝히는 부분이 있지만, 그건 책 내용의 일부일 뿐이다. 아마 출판사 쪽에서 전통 엘리트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환상과 욕심에 불을 붙여 조금이라도 팔아먹을 속셈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짙게 든다. 말 그대로 종묘사직을 잇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유교적 왕권, 조선 왕실이 왕을 어떻게 길러냈는가 하는, 전통 국왕 교육법에 관한 사료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임신 전부터 잉태, 낳은 후, 세자 교육, 국왕 교육에 이르기까지(왕이 된 뒤에도 교육은 끝나지 않는다) 전 생애에 걸쳐 진행된 ‘교육법’을 알 수 있는 각종 사료를 읽기 쉽게 고쳐 썼기 때문에, 드라마나 역사 그림책 등에서 조선 왕실의 생활을 재현하려 할 때 매우 유용할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에서 딱 한 군데 감동한 부분이 있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리뷰를 쓸 생각이 들었다. 중전이 임신하고 나서 해산 예정 한두 달 전에, 중전의 방 근처에 아기를 낳을 방, 곧 산실을 마련하는데, 산실을 들이면서 먼저 고사를 지냈다. 동의보감에 이 고사 때 올린 기도문이 나온다.
동쪽 10보, 서쪽 10보, 남쪽 10보, 북쪽 10보, 위쪽 10보, 아래쪽 10보의 방안 40여 보를 출산을 위해 빌립니다. 산실에 혹시 더러운 귀신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동해신왕, 서해신왕, 남해신왕, 북해신왕, 일유장군, 백호부인께서는 사방으로 10장까지 가시고, 헌원초요는 높이높이 10장까지 오르시고, 천부지축은 지하로 10장까지 내려가셔서, 이 안의 임산부 모씨가 방해받지도 않고 두려움도 없도록 여러 신께서 호위해 주시고, 모든 악한 귀신들을 속히 몰아내 주소서. (127쪽)
인간이 멋대로 아이를 낳을 게 아니라, 아이 낳을 곳도 자연과 천지의 기운에게서 빌린다는 생각, 그리고 아이를 낳는 게 목숨을 거는 일이 되기도 했으니 부디 천지신명께서 살펴주시기를 기원하는 마음. 남자들 가운데에는 임신하고 조심하는 여성에게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밭 한가운데에서 일하다가 쑥 낳고 다시 일하기도 했다”는 둥 막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자기 각시가 임신했을 때도 그랬을지 참 궁금하다), 그 사람들에게 이 기도문을 들려주고 싶다. 출산은 이렇게 삼가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거라고.
삼가는 마음이 어느 정도였냐면 “왕비가 임신을 하게 되면 왕은 온 나라에서 짐승을 잡는 것도 금했다. 비록 짐승이라 해도 혹시 그 원혼이 왕비와 뱃속 태아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왕비가 임신 중일 때는 사람을 사형시키는 일도 중지되었다.”(121쪽) 하긴, 이런 대접도 왕의 자손을 낳을 경우에나 해당하는 것이다. 쳇.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임신 중의 금기 사항 중 “산달에는 머리를 감지 말아야 한다” “높은 곳에 있는 화장실에는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108쪽)는 것도 있다. 머리 감느라 다리를 벌린 채 쪼그리고 앉거나, 높은 곳에 있는 화장실에서 변을 보다가 해산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랬을까?
재미있는 이야기 둘. [동의보감]에 “요즘 사람들은 아이를 품에 안기만 하고 땅에서 걸리지를 않는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뼈와 근육이 약해져 쉽게 병에 든다. 이런 것은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보호하는 방법이 아니다.”(158쪽)고 했단다. 그리고 [소학]에도 “만약에 자식이 태어났을 때 위아래의 예절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마침내 부모를 모욕하고 형과 누이를 때리기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도 어떤 부모들은 금하고 꾸짖지 않고 도리어 웃으면서 아이의 기를 꺾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182쪽) 했다니, 조선 시대 이전에도 ‘요즘 사람들은’ 아이를 너무 귀애한다고 걱정했다는 이야기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