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2시 대법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있었다.
관습법상 종중은 성년 남성을 회원(종원)으로 구성한 단체이고, 성년 여성의 종원 지위는 부정하해 왔던 것에 대해, 이 관습은 사회 환경, 국민 의식의 변화로 그 관습법에 대한 법적 확신이 약화되었고, 헌법 등 사회 질서가 개인의 존엄과 양성 평등을 기초로 한 가족 생활을 보장하고, 가족 내에서의 실질적 권리와 의무에 있어 남녀 차별을 두지 아니하여, 정치 사회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남녀 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왔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 관습은 우리 법질서에 부합하지 아니하므로, 공동선조와 성과 본을 같이 하는 후손은 남녀 구별없이 종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별개 의견으로는, 관습법에 따라 성년 남성은 당연히 종원이 되고, 여성은 희망에 따라 종원이 된다고 한다). 다만, 이 판결 이전에 있었던 종중의 결정 등에 대해서는 이 판결의 해석을 소급하지 않기로 하였으므로 따라서 이 판결의 취지에 따라 성년 여성의 종원 지위 인정은 이후부터 가능하게 되나, 다만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해야 하므로, 이 사건에 한해서는 종원의 지위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취지를 덧붙였다. 파기 환송 판결이므로 다시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을 할 것이나, 이미 결론은 나온 상태다.
이런 저런 복잡한 말 다 빼고 대충 들어도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이 아닌가 싶지만, 무려 5년 가까운 노력이 담긴 판결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대법원 판결....
해고된 지 8년이 넘은 노동자 김석진은 오늘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는 지난 1997년 회사의 일방적 조치에 부당하다고 항의하고, 성과급 삭감 지급에 항의하는 유인물을 돌리다가, 회사는 그것을 이유로 징계 해고하였다. 그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1심, 2심 법원에서 승소하였다. 그런데, 2002년에 회사가 대법원에 상고한 후 대법원은 3년이 넘도록 선고를 하지 않아 그런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고, 국회에서도 논란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법관은 판결로 모든 것을 말한다고 하지만, 판결문에 그간의 속사정이 담길 리 없고, 오늘 법정에서 아무런 설명도 없었을 테고, “사건번호 2002다13911 사건, 상고 기각” 오로지 이 한마디만을 내뱉고는 대법원은 또 다시 침묵을 지킬 게 뻔하니..기나긴 기다림에 비해 너무나 허망하다고나 할까? 그나마 결과가 좋아 그는 기뻐할 테고, 나 역시 그의 승소 소식을 기다렸나니, 축하할 일이로다.
소송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돈 없고 시간 없고 아는 것 없고, 아는 사람마저 없다면 너무 힘들어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법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법이 돈 많고 그래서 시간도 많고 아는 것 없어도 아는 사람 많은 사람이 결국 손해 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