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제 대학에는 대학원생이 조교라는 이름으로 담당 교수 연구실에서 연구 및 학위 취득을 위한 공부를 하면서 일부 학과 업무를 보조하고 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듣기로는 크게 달리진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의 법적 지위는 어떻게 될까 ? 학생 ? 임금을 받으려고 하는 노동자 ? 글쎄다. 학과 관련 업무를 하고 일정한 금품을 받는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으므로 그 범위 안에서는 노동법의 적용도 고려해 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러나 오늘 할 얘기는 그들에 관한 것이 아니니 여기서 그만두자.
한편 똑같이 조교로 불리지만, 2년제 대학에서는 4년제 조교들과는 전혀 다르다(일부 4년제 대학에도 아래에서 말하는 그런 조교들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2년제 대학보다는 덜한 것 같다). 그들은 학교에 채용되어 업무 부서를 학과로 배정받아 학교 업무 중 학과 관련 업무를 주로 하거나, 어떤 때는 학과가 아닌 부서에서도 근무하기도 한다. 앞의 경우를 주로 학과조교라고 부르고, 뒤의 경우를 주로 행정조교라고 부른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모두 비정규직, 즉 계약직 노동자라는 점이다. 거의 모든 2년제 대학이 다 그렇다(다만,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서는 단체협약으로 정년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학과 업무는 다른 업무와 마찬가지로 계속적이고 상시적이다. 따라서 계약직 노동자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또 하나 문제는 조교라는 이름이 갖는 데서 오는 사실상의 불이익이 만만치가 않다. 흔히들 조교라고 하면 위에서 본 4년제 대학 조교를 떠올린다. 노동자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담당 교수를 모시고 다니면서 학위나 취득하려는 대학원생"정도라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2년제 대학 조교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권리 주장을 하게 되면 의아해 하는 경우를 본다. "조교가 무슨 노동자야 ?" 하면서 말이다. 조교라는 이름만으로 그들의 현실과 주장은 무시될 가능성이 있으니, 그 불이익이 적지 않다.
한 예를 들어 보자.
지금 파업 53일을 맞이하고 있는 경기도 안산 지역의 안산공과대학에 조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 있다. 그들이 하는 업무는 학교 업무다. 누구나 채용되면 그렇듯이 학교의 필요에 따라 근무 부서와 하는 업무가 결정된다. 그들은 학교 업무 중 업무 부서가 학과이고 학과 관련 업무를 주로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다른 부서 근무자들도 다 마찬가지 아닌가 ?
그럼에도 그들은 다른 부서 근무자들과 달리 계약직이다. 게다가 재계약도 2회밖에 할 수 없다. 따라서 3년 이상을 근무할 수가 없다. 그들은 다른 부서 직원들보다 임금도 적다. 다른 부서 직원들이 얼마나 일을 많이 그리고 어려운 일을 하길래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대학 직원들이 하는 일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데도 말이다(이것은 나 혼자만의 판단은 아닐 것이다. 간혹 대학 직원들 입에서 직접 듣는 말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대부분이 같은 학교를 졸업한 학생이다. 교수의 권유에 따라 조교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어리다. 안산공과대학 노동조합은 19명의 조합원 중 1명이 남성이고, 18명은 여성이며, 대개 20대 중반이다.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계약기간이 늘어나긴 했지만 학교가 마음만 먹으면 20대 중반에 직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많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어떠할까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임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 업무가 상시적이고 계속적이면 계약직으로 노동자를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 지극히 당연하고도 누구나 요구할 수 있는 주장 아닌가 ? 그런데도 그들은 오늘로 파업 53일을 맞이하고 있고 학교는 요지부동이다.
한편 헌법은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적정한 조치를 국가가 마련할 것을 정하고 있다(헌법 제32조 제1항). 그럼에도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력하다고 볼 만한 조치를 제대로 취해 왔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관련법을 "비정규직 보호법"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정부의 주장이 코메디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고, 더 멀리 더 많이 지난 역사를 되짚어 본다면 내 생각이 지나치다고 보지는 않을 거라 확신한다. 국가마저 그 모양이고 자본가(사용자)는 그렇게 하는 국가를 좋아하니, 특히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과 투쟁이 안타깝다.
아무튼 조교라는 이름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구성된 안상공과대학 노동조합의 파업 결과는 다른 대학의 조교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만하다. 조교라는 이름으로 같은 학교 졸업생들을 채용한 다음, 계약직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만두라고 하는 비인간적인 처우를 하면서도 지금까지 노동조합의 요구에는 요지부동인 학교에 제대로 맞서 싸워서 노동조합이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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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코메디라는 단어를 쓰고 보니, 안산공과대학에서 나를 웃게 만든 일이 있어 적어 본다.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집회를 하거나 유인물을 벽에 붙이면 졸졸졸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교가 아닌 다른 부서 직원들이다.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사진 찍고 다닌다. 유인물을 찢어 버린다. 찍지 말라고 찢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초상권 침해, 사생활 침해, 집회 방해, 노동조합 활동 방해 등등..아무리 경고를 해도 소용없다. 그것이 자신들이 학교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칭찬을 해주어야 하나 ? 많은 사립대학, 특히 2년제 대학 중 많은 경우는 학교측과 친인척 관계, 지인 관계, 학연 관계 등이 채용을 하는 데 있어서 영향이 크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 안산공과대학 역시 예외는 아닌듯 싶다. 그래서 더 극성이었나 보다. 그래도 그렇지.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하다니. 어떻게 그런 사람을 채용할 수 있지 ?
그런데, 지난 5.16. 생각해 보면 날짜도 참 거시기하다. 그 다른 부서 직원들이 일도 안하고 모였다. 붉은 조끼를 맞춰 입고서는 보직 교수들 책상을 들어내고 학교 유리창을 부수고, 학장실을 점거하고 벽에 유인물을 붙이고 현수막을 학교 곳곳에 걸었다.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농성을 위해 천막을 학교 건물 앞에 치려고 하니까,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밀어붙여 끝내 막아서던 그들이, 주차장 한켠에 친 천막에 전기마저 끊던 그들이,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갔다고 노동조합 사무실 인터넷 접속마저 차단하던 그들이, 졸졸졸 조합원들을 따라 다니며 시비거리나 만들던 그들이, 조합원들이 머무는 곳에 그것도 마침 여성 조합원들만 달랑 4명 있었을 때 150여명이 몰려와 집기를 부수고 난리를 치던 그들이, 조합원들이 나이가 어리고 여성이라는 것 때문인지 함부로 욕지거리를 해대던 그들이, 학교바로세우기운동본부라는 것을 만들어, 학교 집기를 부수고 본관을 점거하고 있다. 학장은 그것을 방관하고 있다.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집회를 하고 유인물을 돌리는 것은 불법이라고 하더니만, 자기를 옹호하는 직원들이, 학장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 보직교수들과 노동조합을 함부로 대하고 때려 부수어도 가만히 두고 보기만 한다.
난 그 광경을 보고 웃었다. 이건 코메디다. 그런데 너무 쓰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기나 할까 ? 도대체 그런 상황을 어떻게 합리화할까 ? 너무나 미우면 오히려 연민의 정을 느낀다는데, 정말 그런가 ? 참 불쌍하기까지 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한대 맞아라. 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