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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권리를 소망한다
뱅상 욍베르 지음, 최내경 옮김 / 도서출판빗살무늬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식물인간인 아내를 오래 간호해 오다가 안락사 시킨 남편에게 미국 법원이 무죄 선고를 내렸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다. 그리고 오늘, 반신불수인 남편을 30년 동안 간호하다가 남편이 자살하도록 도운 아내 이야기가 포털 뉴스에 떴다. 예순이 다 되었다는 이 여성에 대해 오늘 수원경찰서에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한다.
먼저 사건을 들었을 때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나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다. 그냥, 이 책이 떠올라서, 뒤늦은 독후감이나 쓴다.
뱅상 욍베르는 열아홉 살 때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전신마비 상태에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움직였고, 이것을 보호자인 엄마가 발견할 때까지 아무도, 뱅상 스스로도 자신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는 걸 알지 못했다.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던 환자가 엄지손가락을 까닥인다. 상상해 보자. “내 말 들리니? 들으면 두 번 까닥여 봐” 하는 말에 그가 손가락을 두 번 까닥인다. TV극이나 영화라면, 이 순간이 감동의 절정, 혹은 해피엔드의 시작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자기 혀와 이를 움직여서 과일이라도 먹으며 두 눈 뜨고 드라마를 즐기는 사람이 보기에 그런 것이고, 내가 바로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그 사람이라면?
뱅상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방식으로 엄마와 의사를 소통하고, 엄마가 일하러 나간 사이 엄지손가락으로 리모컨을 눌러 이리저리 채널을 바꾸어 가며 TV를 보면서 기나긴 하루를 보내는 것, 단 두 가지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신마비 환자가 몹시 “아프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마비되었으니, 움직이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몇 년 전에 야구선수 한 명이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도 난 “식구들이 고생이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뱅상은 몹시 아프다고 한다.
이 고통에 대해서는 표현하기가 힘들다. 전에 항상 경련에 시달렸던 것과도 약간 비슷하다. 다리가 뻣뻣해지고 팔이 아프다. ... 아파서 숨쉬기조차 힘겨울 때에도 그들은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만 한다. -90쪽
팔다리가 묶인 채 누워 있는 것과 비슷할까 생각해 보았다. 팔다리가 묶인 채 24시간, 48시간, 아니 언제까지일지도 모르게 누워 있다면. 아, 내 맘대로 한번 뒤척이지도 못한다면. 나는 힘들 때, 아플 때, 내 손으로 얼굴을 감싸거나 몸을 웅크리거나 아픈 부분을 주무르거나 한다.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전신마비 상태에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덮쳐 오는 아픔을 맨몸으로, 무방비 상태로 맞아야 한다. 차라리 잠들어 버렸으면... 그런데 의식은 또렷하여 아픔과 고독을 온전히 맨몸으로 느끼고, 내 앞에 놓인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뿐이라면. 그렇게 2년 3개월을 살았다면.
뱅상은 편안하게 죽기를 소망했고, 결국 아들의 끈질긴 청을 받아들인 어머니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저세상으로 갔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에서는 “소생 가망이 없는 말기 환자가 생명연장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환자와 임종의 권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고 한다. 뱅상에게 주입되는 링거에 신경안정제를 치사량으로 주입한 어머니는 구속되었다가 일단 풀려나고, 뱅상의 호흡기를 뗀 의사는 살인죄로 기소되었다는데 그 후 어찌 되었을까?
이 책의 원고는 프레데릭 베이유라는 기자가 뱅상 욍베르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자기 손을 대고서, 알파벳을 하나하나 부르다가 뱅상이 엄지손가락을 누르면 그 글자를 받아 적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단어 하나가 완성되면 그 단어가 맞는지 다시 물어보고, 뱅상이 엄지손가락을 눌렀다 뗐다 하여 확인해 주었겠지. 얼마나 길고 지루한 일이었을까. 베이유 기자와 뱅상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는 죽을 권리를 소망한다 | 원제 Je vous demande le droit de mourir (2003)
뱅상 욍베르Vincent Humbert (지은이), 최내경 (옮긴이) | 도서출판빗살무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