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9월, 제목에 혹해서 산 책. 10권까지 나왔는데, 일단 3권까지 보고 더 살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림이 좀 불균형하지만(인물들이 약간 가분수... -.-) 한 편 한 편 읽는 재미가 있다. 다만 선이 날카로워 잇따라 보면 좀 질리는 기분이 든다. 한 편씩 띄엄띄엄 읽으면 괜찮다.
모든 자연물에 넋이 깃든다고 믿는 것을 애니미즘이라 하던가. 사람이 만든 물건인 골동품도 만든 사람이나 쓴 사람의 사연이 담기면 마음과 의지가 생길지도 모른다. 전에 아는 디자이너가 심지어 컴퓨터나 팩스 같은 기계도 쓰다듬고 격려하면 좋아진다고 믿는다, 고 말하는 걸 들었다. 하긴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매킨토시 컴퓨터나 프린터는 꼭 숨넘어갈 듯 바쁠 때 말썽을 부린다. 갑자기 얼어버리거나 고장 나거나 하드가 날아가거나. 날마다 밤늦게까지 혹사하니까 그렇지. 그럴 때 마우스를 던져버리거나 자판을 부서져라 때려 엎는 것보다는 “고생 많다. 네 신세를 많이 지는구나. 너 덕분에 내가 먹고산다”고 말하며 하드나 모니터를 쓰다듬어 주는 편이 훨씬 좋겠지.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음부터 나도 성질 급한 나를 견뎌주는 내 컴퓨터를 가끔 쓰다듬어 준다. ^^
이 만화는 저마다 사연이 있는 골동품들과 그 골동품들의 말을 알아듣는 소년의 이야기다. 이 소년은 골동품점인 우유당 주인장의 손자다. 원제는 우유당몽돌(雨柳堂夢咄). 우유당은 이 만화의 배경이 되는 골동품점 이름인데, “우류당”이라 읽어야 하지 않나 싶지만 번역을 “우유당”이라 해놓아서 그대로 쓴다. 몽돌이라, 꿈을 꾸다 소스라쳐서 깨어나는 걸 말하나? 한글2002의 자전에 따르면 咄이란 글자는 꾸짖다, 놀라 지르다, 탄식하는 소리, 어이! 하고 부르는 소리를 뜻한다. 우유당은 비를 맞고 선 버드나무 집? 으스스한 듯도 하고 운치 있는 듯도 하고.
하츠 아키코Akiko Hatsu라는 일본 작가의 만화다. 왜 표지에 작가 이름을 한글로 쓰지 않는지? 앞에서 그림이 균형 잡히지 않았고 선이 좀 거칠다고 했지만, 일본의 전통 옷이나 건축물, 골동품의 생김새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세밀하게 묘사했다. 내가 모르고 넘어간 부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인물 표현력은 별도이고, 그런 것은 참 치밀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 나온 역사물 그림책을 봐도, 대충 그린 것 같아도 작은 것까지 있어야 할 것은 다 그린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책의 화가나 디자이너에게 고증상의 문제를 지적하면 “이건 아주 작게 들어갈 건데” “보이지도 않아요” 하고 넘어가려 드는 것과 참 비교된다. 간섭받고 싶지 않은, 자유로운 기질은 이해하지만 논픽션 그림에서는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필요한 일인데...
1, 2권은 1994년, 3권은 1996년에 나오고 한국에선 1999년에 시공사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