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된 원제는 十面埋伏(십면매복). 한 번 보고는 알 수 없는 열 가지 얼굴, 곧 많은 얼굴(혹은 국면)이 숨어 있다는 뜻인가 봐요. 영어 제목은 Lovers-House of Flying Daggers(연인-비도문)라는군요. 영화의 종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 웃어버리던데, 글쎄요, 그렇게 우습도록 황당한 영화는 아니라고 봅니다. 아 장예모가 인제는 "개인"을 이야기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하나쯤 죽어버려도 좋은) 장기말 같아"라는 말에서부터는 슬퍼지기 시작했고요.
그러고 보니 장예모란 감독, 중국 곧 자기 나라의 질서에 대들어본 적은 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이 사람에 대해 잘 모르고, 영화도 다 보지 않았으니 섣불리 말해선 안 되겠지만. [붉은 수수밭]도 남한에서 보기에 혁명적이지, 중국은 공산당이 집권한 나라 아닌가요. [귀주 이야기]에 나오는 관리도 부정부패라고는 모르고 상냥하기 그지없지요. [책상 서랍 속의 동화]나 [집으로 가는 길]도 "긍정"으로 가득합니다. 소박한 사람살이에 초점을 맞춰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냈을 뿐이지요. 그러다 [영웅]에 와서는 영화에 화려한 옷을 입히면서 "중화 질서"를 옹호하더니, 이제는 중국의 변화에 발맞춰 "바람 같은 영혼"을 이야기하나요.
이 영화에 대한 제 옆지기의 해석이 그럴듯해서,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보기에 이 영화는 장예모란 사람의 "자신에 대한 변명" 같다는군요. 장예모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영웅]으로 동료 영화인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해요. 그래서 장예모는 중국 5세대 영화인으로서 신념을 가지고 인간(우선은 중국인)에 대해 말해왔던 자신을 [연인]의 레오(유덕화)에게 투영했던 게 아닐까. 레오는 오랜 세월 쇼우메이(장쯔이)를 사랑했지만, 상황이 바뀌어버린 지금, 레오의 사랑은 전과 같은 보답을 받지 못하지요. 레오(과거의 장예모)는 사라져야 하고, 쇼우메이는 계속 살아야만 한다고 말하려 한 겁니다. 우리(제가 아니고 장예모에게 "우리"가 되는 이들)가 정말 지켜야 할 것은 쇼우메이, 곧 자신들의 막내누이와 같은 존재... 그들이니까요.
제 옆지기는, 이 영화의 무협은 [와호장룡]뿐 아니라 [영웅]보다도 못하다는군요. 하지만 전 7000원(할인해서 5500원 ^^) 주고 보는 쇼 치고는 꽤 훌륭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