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었는지 아침 잠이 더 이상 안온다. 물론 더 이상 안 온다는 시각이 11시이긴 하지만, 일요일이면 누가 전화라도 하기 전까지는 몇시가 되던 계속 딩굴딩굴 자다말다를 해왔는데, 11시에 더 이상 눠 있을 수 없는 기분이 되니, 착잡하다.

일어나자마자 어젯밤 자다가 쉬야를 하러 가면서 편의점 생각이 났던게 떠올랐다.

우리 동네 편의점은 자다가 쉬야를 하러 갈 때 강력히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기때문에 그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자연 떠올리게 한다.

위치 자체가 그렇다.

화장실 창문을 열어두고 있는데, 그 창문과 편의점 정문은 길 하나를 사이에 놓고 맞닿아 있고, 편의점 정문 근처에는 커다란 티비 모니터를 걸어둔 채 24시간 방송을 틀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몽롱하게 자다가 일어나서 화장실 의자에 앉아 "텔레반 인질..."어쩌구 새벽녘의 피곤한 아나운서 목소리를 듣거나, 축구 경기를 해설하는 소리를 듣거나, 심지어 드라마 소리를 듣고 있자면, 소란스러움에 신경질이 솟다가도 혼자가 아니구나 라는 어이없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화장실에서만 들리는 수위를 넘어 방까지 목소리 뿐 아니라 숨소리까지 들리는데다가 그 티비를 보고 앉았으면서 여름밤 맥주잔 기울이는 부엉이들 때문에 숙면에 차질이 생긴 날이 한 두날이 아니다. 몇번을 신고까지 하려다가 참고, 편의점 주인아저씨에게 볼륨을 줄여달라는 부탁만 해온 상태인데, 이제 여름이 다갔네 하는 생각에 지난 해에 이어 또 포기상태.

이 주인아저씨로 말할것 같으면, 한마디로 나로서는 정이 안가는 사람이다.

갈 때마다 두번에 한번씩은 예전에 읽은 "달려라 아비"라는 소설이 생각나는데, 김애란에게 감사하다. 내가 가진 모든 편의점에 대한 기준과 애증을 그 소설의 한 단편에서 너무 잘 표현해주고 있었던 기억이 생생해서이다. 이렇게 마뜩치 않은 주인아저씨 같은 타입을 표현하자면, 그 소설 읽어본 사람에게는 더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만큼 세세하고 예리하게 표현한 단편이 하나 있었다.

아무튼 이 아저씨, 보통 알바를 주로 쓰는데 자기가 24시간을 거의 죽치고 있는 자체가 맘에 안든다.

밖에 티비 모니터를 걸어서 24시간 방송을 할 뿐 아니라, 정문 앞에는 채소를 화분에 넣어 키우고 있는데, 그것이 정겹다기보다는 한참 지저분하고, 이 채소들을 걷어먹기 위해 똑같이 푼수 없어 뵈는 동생으로 뵈는 남자분과 한 명 정도의 여자를 때마다 초청하여 그 앞에서 삼겹을 구워드신다.

삼겹만 구워 드시냐, 아니다. 손님이 조금만 없다치면, 서서 컵라면이나 다른 먹거리를 해 드시고 있는 광경도 너무 자주 본다.

티비 모니터만 걸어놓으시냐, 아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엄청나게 큰 볼륨으로 소위 흘러간 뽕짝을 고속도로용으로 만든 노래들이 흘러 나온다. 뭘 천천히 사려다가도 황급히 뛰쳐나오게 만든다는 걸 모르는지 아는지, 노래를 따라 부르느라 신난 주인 아저씨. 참 개념 없어보인다.

친절과 사생활 개입에 대한 기준도 애매한건 이런 아저씨에게는 너무 잘 어울리는거라, 되도록 사생활 이야기를 슬쩍 물어오지 않게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며 2년여를 살아왔지만,

가끔이나마 하린군을 데리고 가면, 유효기간이 딱 당일로서 끝나는 우유를 쥐어주면서 한마디씩 안하고는 못배기시니.

결국에는 조금 멀더라도 다른 편의점을 가는 - 동네가 동네인지라 이런 편의점보다는 십대 알바들이 돌아가면서 뛰는 아주 냉정하고 사무적인 편의점도 많다 - 방법이 최선이겠는데, 게으른 내 육신이 그걸 자꾸 포기하게 한다.

오늘은 일요일. 갑자기 자신이 처량하다. 오늘은 물도 있고 담배도 있고 해먹을 거리도 있으니 그넘의 편의점에 안가도 되겠네, 라며 좋아하는 꼬락서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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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5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6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7-08-05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마지막, 치니 님의 안도가 저에게도 절실히 전해져 오면서..아니 도대체 어떤 편의점 아저씨길래? 김애란의 단편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히힛. 한밤중 변기 위에 앉아 편의점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여자. 어느 어둑한 홍콩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도 같아요.

치니 2007-08-06 09:43   좋아요 0 | URL
김애란의 단편은 시간 되면 함 읽어보시길. 양배추님 덕분에 저도 한번 다시 들처 봤는데, 그 단편의 제목이 "나는 편의점에 간다"였군요.
홍콩 영화의 한 장면 같다니, 역시 상상력이 한 수 위세요. ^_^

chaire 2007-08-06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편의점에 거의 '담배'를 사러 가곤 했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젠 그 일이 과거형이 되어버렸는데, 편의점 주인장 남자랑 제법 편하게 지냈던 터라, 저번 어느날엔가는 하드(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수박맛바!)를 사러 갔더니, 그게 다냐고 요샌 왜 담배를 안 사느냐고, 하더군요. 그 아저씨는 항상 제가 카운터에 가서 지갑을 여는 그 순간, 저의 엔츠를 꺼내놔두곤 했거든요. 하여, 몰랐구나, 나 담배 끊었잖아(그 주인장은 추정컨대 나랑 동갑, 밧트 외모는 동갑 아님..), 했더니, 뭐하게 끊어요 하더군요.. ㅋㄷㅋㄷ (아저씨 입장에선 그렇겠지?) .. 하여간, 어떤 편의점은 그렇게 마음이, 물론 '어떤' 마음은 통!하기도 한다는..
아, 물과 담배, 먹을거리 재료, 그게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죠, 사실...

치니 2007-08-06 15:30   좋아요 0 | URL
가장 이상적인 편의점 맨과의 관계를 갖고 계시는군요.
이런 알흠다운 풍경은 아쉽게도 그다지 자주 보이지 않아서...^-^;;
하긴 굳이 각박하게 선 그으며 살아갈 것도 없는데, 전 애가 좀 까칠해놔서요.
아무튼 엔츠를 피우셨었군요. 흠. 저로서는 한번 밖에 피워본 경험이 없어서 맛이 기억이 안나요.
언제 또 피우실건데요? ㅋㅋ 기다려집니다 ~

누에 2007-09-08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편의점이란게 없는 곳에서 살아서 가끔 생각난답니다. 밤에 쫄랑쫄랑 나가서 만화책 빌리고 담배랑 맥주랑 양파링 사가지고 쫄래쫄래 들어오는, 그 가슴이 훈훈해지는 풍경이 그리울 때가 많아요. 정말 덩달아 '달려라 애비'라는 책이 읽고 싶어지네요. ^^;

치니 2007-09-08 13:58   좋아요 0 | URL
아 , 미루어 짐작이었는데, 정말 프랑스 거주 중이신가보네요.
한국의 편의점 만큼 편안한 데는 세계 어느 곳에도 별루 없죠? ^-^
그래도 티비 크게 트는 아저씨, 아앙 아직도 미오요.
 

 

 

 

 

........그러나 너무 진지하고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 에쓰코의 신조였다. 맨발로 걸으면 발에 상처가 난다. 걷기 위해서는 신발이 필요하듯 살아가기 위해서는 뭔가 이미 만들어진 '믿음'이 필요하다. 에쓰코는 무의미하게 페이지를 넘기면서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그 누구도 그걸 부정할 순 없다. 우선 증거가 없다'

--------------------------------------------------------------------------------------

"우리도 친절하게 상담해 주자고"

이 부부는 기성복 밖에 입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맞춤 양복점의 존재 이유를 의심하는 것처럼 이미 벌어진 비극은 마음껏 재미있어 하지만 비극을 만들어 입는 사람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에쓰코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자였다.

--------------------------------------------------------------------------------------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건가. 이런 장난이 뭐 그리 재미있단 말인가. 그러나 아이들 장난에도 나름대로 그럴싸하고 진지한 이유가 있어. 무관심한 어른의 관심을 끌려는 아이들 세계에서 유일한 술책이 장난인거야. 아이들은 자신들이 버려졌다고 느끼지. 짝사랑하는 여자들과 아이들은 똑같이 버려진 세계에 살고 있어. 거기에 사는 사람이 본의 아니게 잔인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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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9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09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7-07-10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글 / ㅎㅎㅎ 저도 이전에 읽은 미시마 유키오는 너무 강해서 아름답기보다 거부감이 들었어요.
이 책은 그렇게 맛 가기 ㅋㅋ 이전의 초기 작품이라, 그런 느낌이 훨씬 덜하고, 참신하답니다.

토니 2007-11-25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금 이책 읽고 있어요. 작가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반신반의하며 책을 들었는데
정말 한 글자도 버릴게 없는 멋친 책이네요. 연달아 한두 번은 더 읽고 싶은...

치니 2007-11-25 21:43   좋아요 0 | URL
비운의 천재 작가라는 수식어는 이런 사람에게 붙이는 것 같죠?
저도 한 자도 버릴 게 없는 책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번 대방출 때도 이 책은 뺐죠. ㅎㅎ
 
당신을 뒤흔드는 소설
사랑의 갈증
미시마 유키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서커스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알라딘은 책방이라 그런지, 리뷰를 잘 쓰는 분들이 무척 많다.
나 역시 책을 좋아하고 끄적대는 것을 좋아는 하지만,
일기 혹은 기록의 의미로서의 끄적임일 뿐, 정작 ‘리뷰’라고 할만큼 생각을 거듭하고 여러 번 읽은 책에 대해 들추면서 쓴 글이 거의 없다.
그래도 그런 나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 같은 건 없었다.
잘 쓰는 분들이 부럽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로 인해 글쓰기에 대해 몸살이 날 거 같은 기분이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랑의 갈증>은 이런 나조차 기어이 몸살나게 하고야 만다.
글쓰기에 대한 갈증을 일으키고야 만다.
한 줄 한 줄, 단 한 치의 모자람도 여분도 없는 단어들의 결합이 황홀하고,
그러한 결합 이면에 깔려 있는 생각의 힘이 엄청나고,
감히 어째 보지 못하겠는 거대한 산 같은 느낌이 드는데도,
이런 글을 읽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보다는 그 리뷰만이라도 정말 ‘잘’ 쓰고 싶은 욕망 때문에 어이 없는 고민을 하게 한다.

결국 언제나처럼 나태함이 승리를 거두어, 이런 되도 않는 잡설을 늘리고 있지만,
리뷰는 못 쓰되,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 새로이 갖게 된 경배심은 오롯이 남겨 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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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2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02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aire 2007-07-02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언제 이런 책이 나왔답니까!! 아, 미시마, 글 너무하다 싶게 잘 쓰죠? 게다가 글쓰기에 대한 몸살까지 불러일으킨다니... 꼭 읽어봐야겠어요. 쌓인 책 때문에 일단은 보관함행이지만..

치니 2007-07-02 13:14   좋아요 0 | URL
저도 언제 어디서 보고 이 책을 보관함에 넣고 구입했나 잘 모르겠어요. 가끔 그런 코끼리 뒷발질에 이런 횡재도 얻곤 하죠. ^-^;;
최근 본의 아니게 음주 금지 상황인지라, 무연히 이 책 저 책 읽고 있습니다. 헤헷.

rainer 2007-07-02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이 달의 리뷰예요. 이 글 읽자마자 장바구니에 넣었거든요. ^_^

치니 2007-07-02 15:49   좋아요 0 | URL
레이니어님, 어쩌면 저보다 더 몸살을 하실지도...^-^;; 그 문체의 섬세함이 레이니어님의 그것과 닮았거든요.

nada 2007-07-02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저는 처음 듣는 작간데 너무하다 싶게 잘 쓰는 데다가 몸살까지 불러일으킨다고요? 지금 마구 책상에 머리 박고 있습니다...

치니 2007-07-02 15:51   좋아요 0 | URL
꽃양배추님, 머리를 박을 필요까지야,...ㅋㅋ 아무리 유명해도 내가 모르면 안 유명한거죠. 전 늘 그렇게 우기고 삽니다. 후기 작품에선 이 책과 같은 완전무결한 구성을 갖추기보다는 돌아이 적인 쪽으로 확 기울어졌던 거 같고, 할복 자살이라는 최후가 주는 꺼림직함(?) 때문인지, 우리 문학계에서 많이 다루지는 않았었던 거 같아요.
요즘 들어 무슨 연유에선지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Fox in the snow 2007-07-03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살짝 장바구니에 넣어야 겠네요. 치니님의 별다섯개라면!!

치니 2007-07-03 09:15   좋아요 0 | URL
헤헤 본의 아니게 이 책을 엄청 광고한 셈이 되었네요.

2007-07-03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03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7-04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감질나는 리뷰네요.^^

치니 2007-07-04 10:39   좋아요 0 | URL
저도 감질이 나서 조만간 밑줄긋기 한 구절들을 옮겨보리라 생각하고 있어요. ^-^;;

누에 2007-09-08 0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웃.. 읽고싶어지는데요.

치니 2007-09-08 13:56   좋아요 0 | URL
네, 읽어보시라고 하고 싶어요. 저의 이정도 리뷰로 설명이 안되는 책이라서...
그나저나 누에님, 반갑습니다. 누에님 방에서 좋은 정보를 많이 얻고 있어요.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음 / 이레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를 한참 먹은 지금에도, 어디다 대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분야가 ‘가난’에 대한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던가 하는 실체적인 가난을 체험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요,
사람에게조차, 작아져만 가는 초라한 마음의 가난을 제대로 느꼈을까 스스로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늘상 막연한 상상에 그치는 공감으로 아쉽기 때문에, 이런 산문집을 읽었을 때, 내가 과연 어디까지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도 나는,
시인의 담백함이, 시인의 일상에 대한 따사로움이,
무엇보다도, 제비들이 시인의 외로운 집에 둥지를 틀게 하려고 애쓰는 그런 마음이,
아릿하게 무뎌진 내 눈물샘을 건드리는 작고 여린 이 노크가, 정말 반갑다.
그럼에도 내 눈물은 싱겁기 짝이 없다.
평생을 도시에서 애매한 소시민으로 살아온 내가 그토록 짠 눈물 맛을 낼 수가 있겠는가.

만화 <허니와 클로버>에는 불행 자랑 금지 라는 말이 나온다. 고생고생 하며 살아온 떠돌이 날품팔이 인생에 대해 한탄하는 인부에게 내공 있는 연장자가 일침을 날리는 장면이 인상 깊었었다.
그렇다, 시인의 이 가벼운 산문집에 무겁고 쳐지는 가난의 우울함이 가득했다면 명문이 빛나더라도 무언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을거다.
다행히도 이 책에서는 어머니, 공장에서의 경험, 단 돈 이백만원으로 전세집 구하기 등의 에피소드에서 예의 마음 고생과 가난이 언급될 뿐, 그래서 뭘 좀 어째 달라는 무언의 협박은 전혀 없다.

기실, 가난 뿐 아니라 그 어떤 불행도, 자신의 입으로 떠들어대는 순간에 초라해진다는 것을 잊는 경우가 많다.
누구든 이 세상에 나만큼 이런 힘든 일을 겪은 적은 없어, 라고 생각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일의 무게감은 남이 재단할 수 없고 본인만이 저울질 할 수 있다. 하지만 떠들어버린 순간, 그건 그 누구에게도 소득 없는 자랑이 될 뿐이다. 본인에게는 그 아픈 기억이 자꾸만 되새김질 되어 더욱 불행해지고, 남에게는 왠지 모를 부담을 준다.
힘들수록 웃는 사람들은, 그래서 위대하다.

비록, 손뼉을 쳐가며 공감하고 재미있게 읽은 산문집은 아니었지만, 유순하게 풀린 내 눈물의 싱거운 맛이라도 보았으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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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7-06-29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두번째 문단은 정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네요..:)

치니 2007-06-2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라 / 처음 뵙는 거 같은데, 반갑습니다! :) 불타는 골방, 서재 제목이 멋져요.
지금 가봤는데, 이랜드 기사, 헉 남의 일 같지 않네요. (저희 회사도 기독교인들이 많아서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 모임도 많아요)

2007-06-29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7-06-29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글 / 장소를 옮겨주신 것 뿐이지, 버린 거는 아니니까...^-^;;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으실거 같은데. 다자이씨 영향을 받은건지, 요즘 보고 싶은 영화 <오 마이 보스>때문인지, ㅋㅋ 암튼 그러고보니 오 ~ 어쩌구 그런 소릴 잘하네요, 요즘.

blowup 2007-06-30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싱겁지 않고 소금기 있는 리뷰인데요.^-^
그게 치니 님 '간'인 것 같아요.
과하지 않은 간.
늘 자신의 마음보다 좀 덜 표현하는 간.
엷은 소금기.

치니 2007-06-30 19:02   좋아요 0 | URL
왓! 나무님, 오랜만이에요. 언제나 본인조차 모르는 것을 잘 간파해주시는 나무님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맞아요, 제가 마음보다 덜 표현할 때가 있는거 같아요.^-^


이게다예요 2007-06-30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난과 아픔을 겪어 내는 일도 힘들지만 고난의 냄새를 피우지 않는 건 사실 더 힘들죠. 그래서 담백한 사람이 되는 건 더더구나 어렵고요.
구지 겪어보지 못한 일에 애쓰며 곁눈질할 필욘 없는 거 같아요. 애매한 대로 담백한 대로 싱거운 대로 사는 것도 어려워요.
그런데 치니님, 말씀도 요렇게 짭조름하게 하시니, 제대로 간을 아시는 분인데요?^^

치니 2007-06-30 19:03   좋아요 0 | URL
네, 겪어보지 못한 일에 애쓰며 곁눈질 할 주제도 못되는 것이, 천성이 느무 게을러서...
싱겁다기보다는, 단순한 뇌 때문에 이러구 산다 싶어요. ^-^;;

로드무비 2007-07-04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의 생활과 여정이 흑백사진처럼 눈에 밟히더군요. 형님 만나러 가는 장면, 경로당의 어머니......집 앞의 갯벌, 오두막 등.

치니 2007-07-04 10:42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님의 리뷰를 보고 보관함에 오래 넣어두었다가, 이제사 읽은 책이에요. 좋은 리뷰 덕에 오랜만에 수더분하고 담백한 정취를 한껏 느꼈죠.감사 ~

라로 2007-09-19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하고 추천합니다.

치니 2007-09-19 08:58   좋아요 0 | URL
앗 nabi님 좋은 그림과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 (물론 떙스투도 감사 ㅎㅎ)
 
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 참 ,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남들이 너무 너무 재미있어서 두번이나 읽기도 했다는, '이런 것이 바로 소설이야'라고 무릎을 딱 쳤다는 소설이, 왜 내겐 좋다고 읽으면서도 간혹 시시하게 느껴지는지 알 수가 없어.

도대체 난, 소설에서 뭘 바라는 거지?

이정도면 내러티브도 잘 짜여져 있고, 구성도 탄탄하고, 이야기 속에 진실된 작가의 마음도 간혹 담겨 있고, 별 4개는 줘도 되잖아?

그런데도 어중간하게 3개만 딸랑 표시하게 되는 건 무슨 심보람.

기대가 커서 실망도 큰걸까.

아니면, 정말 소설의 백미란 이런 책에서 찾을 수는 없는걸까.

인물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각각의 인물에서 특이함을 느끼지 못하고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인물들의 묘사만 보았다면, 내가 너무 까칠한 걸까.

그래도 이틀간에 걸쳐 꽤 몰입해서 읽었는데 말야.

탐정소설과도 같은 추리극을 삽입하면 도통 심취하지 못하는 버릇 때문에 그런가.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안개 자욱하니 희미해져가는 2권의 긴 이야기가 주는 뒷맛.

에, 모르겠다. 먼 훗날에 생각하면 달라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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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6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7-06-27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글 / 우후후, 역시 동지가 있었군요. 사실 수많은 리뷰들 중에서 단 한 분 말고는 동지를 찾을 수 없어서, 내가 똘이구나 그랬는데...

nada 2007-06-27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가 돌아이구나, 싶을 때가 많아요. ㅋ 소설에서 뭘 바라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내 인생에서 내가 뭘 바라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싶기도 해요..끙. 저도 리스트 한 구석에 이 책 올려 두었는데, 왠지 마음이 가벼워질 거 같아요.^^

치니 2007-06-27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 / 인생에서 뭘 바라나... 자문해보게 되네요. 바라는 게 없는 거 같다가도, 수없이 많은 거 같기도 하고. ^-^;;;

sudan 2007-06-27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뷰 보면요, 꼭 이 책을 읽어야만 할 것 같아요. 치니님만 재미 없어하시는건지 소설이 정말 재미가 없는건지 저는 치니님편일지 아닐지 그런게 소설보다 더 궁금해져서요.

치니 2007-06-28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udan / 하하 귀여운 수단님, 이럴 땐 정말 전공 티 나요. 어뜨케 그런게 궁금하냐. 음 수단님도 역시 좀 시시하다 하실지도 몰라요. 감 잡는 거랑 추리력이 뛰어나시니까 초반부터 예상 다하고 읽을 거 같아요.

mooni 2007-06-28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인생에서 바라는게 뻔해요. 돈하고 시간. +_+ 소설에서 바라는 것은 재미! 그러자면, 확실한 캐릭터가 아니면, 리얼리티 넘지는 플롯을 달라! 하고 싶어요. ㅋ
이 책은 서평들이 굉장하네요. 올해 최고의 책...이런 찬사로 일관. 역시 출판사나 서점에서는 찬사가 아닌 광고는 빼는 거겠죠...-_-;;

치니 2007-06-29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하연 / ㅋㅋ 돈하고 시간, 중요하죠. 저는 다시 생각해보니까 , 아마도 바라는 것이 없는 삶을 바라는 거 같아요. 거창하죠?
소설에서 바라는건 저 역시 재미!
그 '올해 최고의 책' 같은 찬사들 때문에 제가 실망한게 아닌가 싶으네요. 그 정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란 말이죵... 헤헤.

Fox in the snow 2007-07-02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극찬한 당사자로서 괜히 죄송해지는데요..뻔한감은 물론 있지만,장르소설로서의 역할은 충분했다는 생각엔 아직 변함이 없어요.작정하고 쓴 소설이니깐. 올해최고의 책이란 찬사는 좀 과하긴 했죠.^^

치니 2007-07-02 13:1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제가 가끔 별 거 아닌데서 까칠해지곤 해요. 기대가 높았던만큼 실망이 약간 있었다는거지, 이 소설 자체가 별루란건 아닌데...제법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러고보니, Fox in the snow님 리뷰를 보고 보관함에 넣었었나보네요.

Fox in the snow 2007-07-03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치니님 글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까칠..아니 날선 감성때문에 ^^

치니 2007-07-03 09:14   좋아요 0 | URL
날선 감성, 이라뇨 ~ 당치 않습니다. 타고나기를, 약간의 신경질이 있을 뿐이에요. 안 좋은 거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