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 평생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마음껏 즐기는 것도 늘 귀찮기는 마찬가지. 이번에도 역시 시큰둥 하던 차에 오, 놀라워라, 사람 일은 역시 모르는 거지, 예수님이 아니라 일반인이지만 좋은 인연이 되는 사람이 생일을 맞이하여 무려 크리스마스 겸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간 것이 어제. 

히야 - 파티에 음식이 제대로 코스별로 나오는 걸 즐기리라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꿔 온 일생이었건만, 들어서자마자 보인 이 브로콜리로 만든 귀여운 크리스마스 트리를 식탁에서 보는 순간, 베시시 웃음이 나오고 식욕 또한 왕성하게 솟아났으니. 이게 웬 떡?!!! 

  

너무나 앙증맞고 정성스러운 이 모습을 보라, 도저히 양심상 뜯어 먹을 수 없어서 (또한 나머지 음식으로 배가 터질 것 같아서) 마지막까지 이 모습 유지. 흐 - 언제 초대한 주인장이 이걸 먹을지 기대된다. 

다음은 우리가 코스별로 먹었던 음식들. 아아 - 또 먹고 싶으다. 추루룹.  

연어 쌈과 베르니니를 곁들여 애피타이저를 먹고, 

 레몬소스를 얹은 닭튀김과 샴페인을 먹고, 

 홍합밥에 달래 간장 소스를 얹어 먹고, 

 사과 케잌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오오, 마지막으로 엔쵸비를 얹은 피자까지! 

점점 부풀어 오르는 배와 함께 소박하거나 원대한 우리의 꿈도 부풀어 올라가던 밤. 축구와 야구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는 이유에서 시작하여 인문학적 소양이 삶에 끼치는 영향까지, 맛있는 음식에 부르짖게 되는 탄성에서 시작하여 그 음식으로 재화를 마련하고 재능을 기부하고 도시인이 하지 못하는 노동을 농촌에서 얻는 물물교환 사회에 대한 이상향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노동하고 시에스타를 즐기는 정도로 하루를 구성하고 일 년에 한 두번은 긴 휴식을 겸하는 여행을 떠나며 이웃에게 일거리를 분배하면서 일하면서도 지치지 않는 삶을 꿈 꾸며, 잠잠이처럼 오래 게으르게 연마한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고맙고 착한 뮤지션들을 보금자리에 초청하는 일까지 이어가던 - 그렇게 방울방울 꿈들이 무리 지어 머리 위를 수놓던 밤.  

참으로 따뜻하고 유쾌하고 푸진 크리스마스. 2010년 12월25일을 잊지 못할 것 같네요. 여러분도 모두, 이런 따스한 기운 갖고 2011년 맞이하시길 - :) 이상 대놓고 자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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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12-26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로컬리 너마저로 시작하여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저 연어들과 함께하신 크리스마스셨군요...^^ (이왕 본격적인 터가 가까운 곳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치니 2010-12-26 16:37   좋아요 0 | URL
메피님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셨나요? :) 새해에 더욱 따뜻하고 기분 좋은 일들 많이 생기시길 바랄게요 ~ (아쉽게도 지리적으로는 그다지 가깝지 않을 듯. 하지만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에요!)

2010-12-26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6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10-12-26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트리를 보고 메피님 댓글을 보니 하고픈 말은...

브로콜리...너 맞어?

치니 2010-12-26 16:3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역시 천재 웬디양님.
브로콜리 맞아요, 저거 만든 분도 천재. 아흐흐.

굿바이 2010-12-2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엔쵸비를 얹은 피자라니요!!!! 온도계가 14도를 가리키고 있는 사무실에서 저 사진을 보고 혼자 뜨겁습니다^^
아참, 여행은 잘 다녀오셨나요? 비기를 알려드리지도 못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ㅋㅋㅋ

치니 2010-12-27 11:52   좋아요 0 | URL
아앙 굿바이님 ~ 비기, 뽀샤시 그거 안 알려주셔서 저 그냥 쭈굴쭈굴하게 만났어요. ㅋㅋ 지금이라도 알려주세요!
저 피자 위 엔쵸비만 제가 영국서 공수해온 것, 나머지는 다 주인장이 한 땀 한 땀 ㅋㅋ 아니 한 입 한 입 먹어가며 만드신 거랍니다. 피자건 뭐건, 요즘은 집에서 만든게 최고 맛있어요, 밖에서 뭘 못 먹겠다능.

굿바이 2010-12-27 13:53   좋아요 0 | URL
이제와서 발을 뺄 수도 없고, 날아온 돌에 맞고, 미친뇬 눈 맞고 널 뛰는구나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으니, 비기도 아닌 비기를 비기라 과대포장하고, 심지어 궁금하게 만들었으니 미리 심심하지만 약간 엔쵸비처럼 짭짤한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자, 이제, 제가 한창 잘나가던, 언제 그랬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시절의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뭔가 끊어써야 할 것 같아 다음 답글로....

굿바이 2010-12-27 13:5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먼 먼 나라의 그대나 혹은 당신을 만나러 가는데, 동화속 그대나 당신이 마중을 나온다고 하면 말입니다, 일단 비행기에 탑승하실 때 메이크업을 하시면 아니됩니다. 또한, 크림 보다는 수분 에멀전(뭔가 전문적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죠? 로숀입니다)만 바르시고 비행기를 타십시오. 비행시간이 얼추 10시간이다 싶으면 일단 계획했던 독서를 하시든 코를 파시든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주의사항, 주는 밥 다 드시면 안되고, 더 주지도 않는 술 더 마셔도 안됩니다. 밥은 한 끼만 드십시오, 기름 낍니다.ㅋㅋㅋ 술도 주는 것의 반 만 드십시오, 역시나 기름 낍니다.
또 다시 다음 댓글로.....

굿바이 2010-12-27 14:22   좋아요 0 | URL
이제 비행시간 8시간이 지나 두 시간 쯤 남았을 때, 중요한 물건이 필요합니다. 핸드!!!! 손!!!!! 일단 얼굴을 감싸세요. 세균이 많을 것 같으면 씻고 감싸세요. 이마부터 눌러 볼을 그리고 턱을 마지막으로 목을 조르듯이 눌러주세요. 우습게 보이지만 붓기가 약간 가라앉습니다. 그 다음, 물세안을 할 수 없는 곳에서 쓸 수 있는 전용 클렌저가 있습니다. 이건 물과 동일한 형태인데, "클라00" 라는 브랜드에 가시면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을 솜에 묻혀 얼굴을 닦습니다. 그 다음, "랑0"에서 나온 팩이 있습니다. 이 브랜드가 비싸면 대략 리페어 어쩌구 하는 에센스가 묻어 있거나, 수분 에센스가 묻어있는 팩을 얼굴에 붙이세요. 넘들이 쳐다보건 말건 무시하시구요.
또 다음 댓글로....

굿바이 2010-12-27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팩은 일반적으로 10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아까우시면 목에 뜯은 팩을 문질러주세요. 팩을 떼고나면 얼굴에 잔여물이 남는데, 문지르지 마시고, 손으로 누르세요. 이때 손의 강도는 카스테라를 뜯는 정도의 힘이면 됩니다.
자~ 얼굴의 팩 잔여물을 모공이 다 빨아먹었다 싶으면, 여기 위에 수분 에멀전을 바르시기 바랍니다. 주의사항, 젤타입은 바르지 마세요. 되도록이면 온천수가 들어간 제품이 좋은데, 제품을 고를 때, 맛을 보셔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제품이 피부에도 맞습니다. 물론, 들이키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아벤0"의 제품이 대충 덜 짭니다. 그니까 덜 무겁습니다.
다시 에멀전을 손으로 누르세요, 이때 시간을 보시면 한 1시간 남았을 겁니다.

또 다음 댓글로...

굿바이 2010-12-27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페이스 오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 브랜드에서 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록시0"의 "임모르뗄"성분이 들어간 오일을 적극 추천합니다.
자 손바닥에 욕심내지 마시고, 두 세 방울 떨어뜨리고,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온기를 전하세요. 그리고 코로 냄새를 맡으세요. 너무 킁킁거리면 가오 빠집니다^^
다음, 이마와 볼 아래턱 순으로 지긋이 누르세요. 문지르는 것이 아니고 누르셔야 합니다.
오일이라 미끄덩거리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코팅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잠깐 얼굴이 진정하게 두시고, 그동안 메이크업 준비를 하시면 됩니다.메이크업이라고 파운데이션 쓰시면 안됩니다.
또 다음 댓글로.....

굿바이 2010-12-27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외선 차단제인데, 적당히 얼굴 잡티도 가릴 수 있는 제품으로 "시슬0"같은데서 마구 나오던데 여튼 그런 걸 살짝 바르시고, 볼터치를 하세요. "베네00"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하셔도 되고 없으면 립스틱 손가락으로 녹여 하셔도 됩니다. 주의사항은 일단 웃어서 광대를 올라오게 하고 그 지점을 중심으로 살짝 발라주세요. 스테이크는 아니지만 핏기만 있으면 됩니다. 다음 눈썹은 브러쉬로 살짝 형태만 잡으시고, 입술은 그냥 입술보호제만 바르면 됩니다. 아참, 마스카라를 하셔야 하면, 투명한 걸로 하세요, 그냥 자다 내린 것처럼 말입니다 ㅋㅋㅋ
이렇게 얼추하고, 머리 한 번 빗어서 자연스레 묶으면 내릴 준비 하셔야 할 겁니다.
공항에 도착하면 적어도 하차객 중에 가장 빛날 겁니다. 자다 내리신 분들이 워낙 많은지라...ㅋㅋㅋ 아참 내리시기 전에 등을 세우고 가슴을 무한대로 펴시기 바랍니다. 자세가 얼굴의 광채만큼 중요합니다.

굿바이 2010-12-27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까지 입니다. 물론, 옷을 입는 방법, 향수 선택 등 남은 이야기는 많지만, 그것은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참! 이렇게 해서 뭔가 잘 된 적이 있는지 궁금하시다구요? 없습니다 ㅜ.ㅜ

치니 2010-12-27 14:27   좋아요 0 | URL
아아아아, 굿바이님 사랑해요!
저 이거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어요, 이런 건 이렇게 댓글로 남겨서는 아니 됩니다, 이런 좋은 정보, 고급 정보는 만천하에 알리는 카피레프트 정신이 필요해요.
제가 만일 유능한 화장품 회사 담당자라면 굿바이님을 당장 모니터 요원으로 돈 많이 주고 고용해서 리뷰 쓰게 할 텐데!
고로, 이 댓글을 모두 모아 페이퍼로 정리하려 합니다. 국제화 시대에 해외여행도 빈번한 분들이 많습니다. 적어도 알라디너와는 나눠야 해요. 캬아 -

에디 2010-12-28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와

치니 2010-12-28 01:43   좋아요 0 | URL
에디님도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어요? :) 요즘 다시 뜸해지셔서 또 서재 안 오시나 은근 걱정 되었답니다.
 

여행 동안 책은 기껏해야 100페이지 정도를 읽은 게 다다. 어쩌면 오웰의 책을 들고 간 게 벌써 잘못된 선택이었을 지 모른다. 달달하기 이를 데 없는 감정이 충만한데 오웰의 책이라니. 어울리지 않아서, 라기보다 양심이 괜히 찔려서 못 읽겠더라. 하지만 기내 영화는 그럭저럭 즐길 수 있었다. 그 중 압권은 이 영화. 모두에게 강추한다. 단, 사랑 따위 내 인생엔 없어!라고 장담하시는 분은 봐봐야 시간 낭비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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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가까운 Scotmid는 밤마다 우리가 맥주와 칩스 따위를 사들고 와서 정이 들어버렸다.
그날은 아이를 만난 지 셋째 되던 날. 아이는 제 집에서 기타를 메고 간단한 짐을 꾸려왔다.
우리는 예의 Scotmid에서 맥주를 사와서 침대에 누워 마시며 수다를 떨었고, 그러다가도 아이는 자꾸만 기타를 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음악이 나온 곳은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였다. 아이는 친구와 이 영화를 이미 봤다고 했다. 조금은 슬퍼,라고 했다. 엘르 패닝, 이라는 배우를 처음 알았다. '너 말이야, 여자친구를 사귄다면 저런 여자아이였음 좋겠다!'고 내가 외쳤다. 아이는 말도 안된다는 듯이 킥킥 웃었지만, 내 의견에 분명히 동조했다. 아이는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내가 오는 그날까지 이 노래의 허밍을 많이 하고 기타를 치며 많이 불렀다. 이 노래를 들으면, 이제 아이의 모습이 선연하게 그려진다. 짧았지만, 감히 the happiest time이었다고 할 수 있었던 여행. 우리가 여전히 같은 음악을 미치게 좋아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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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2-23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의 이 페이퍼는 마치 한편의 예술영화를 옮겨 놓은것 같아요. 씨네큐브나 미로스페이스에서 볼 수 있는 규모가 작은, 그러나 아름다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몇몇 사람들을 반드시 불러들이는 그런 예술영화요.

치니 2010-12-23 13:4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이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그런 거 같아서 더 행복해졌어요. :)
흑, 그런데 이 영화 언제 한국서 개봉될 지 아직 미정이네요.

레와 2010-12-2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음악 들어보고 싶어요. 나중에(쉬는 시간에) 꼭 들어볼게요!!

치니 2010-12-23 13:40   좋아요 0 | URL
들어봐주세요 레와님, 그리고 아들이 부르면 어울릴지도 말해주세요! ^-*

차좋아 2010-12-24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치니님 왜국이에요? 언제 갔어요??

치니 2010-12-24 19:03   좋아요 0 | URL
벌써 다녀왔어요. 차좋아님 내 서재 잘 안 오시는구나, 딱 걸렸어요. ㅋㅋ

2010-12-25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6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 자랑하려고요. :)
(그저 기록해두기 위해 썼다고 하려다가 자백하는 겁니다.)

   
  사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성가시게 굴지 않으려고 애쓰는
상당히 총명하고 독립심이 대단한 여자였지만,
진실한 우정, 유쾌하고 고독한 산책, 질 좋은 담배,
양서 그리고 절호의 기회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았다.
 
   
- '끄리스띠나 뻬리 로씨', <추락한 천사> 중에서 -

<추락한 천사>를 검색하니 알라딘에 없고, 크리스티나 페리 로씨를 검색하니 다른 책들만 나온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멋진 밑줄이 적힌 카드를 받았으니 이 책을 꼭 읽어봐야지.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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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2-23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71775

치니 2010-12-23 13:38   좋아요 0 | URL
오, 이래서 제가 못 찾았군요! 흐 - 읽어볼게요.

Arch 2010-12-23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누구한테 그 카드를 받으셨는지 짐작이 가요.

치니 2010-12-23 13:39   좋아요 0 | URL
^-^ 네, 저 자랑할 만 하죠?
 
<건축콘서트>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건축 콘서트 - 건축으로 통하는 12가지 즐거운 상상
이영수 외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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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소리부터 하자.
건축이 예술의 한 쟝르로써 받아들여지는데 아무런 이의를 달 생각은 없지만, 건축은 그놈의 '공사'를 동반한다는 사실 때문에 요 몇 년 건축이란 소리만 들어도 몸이 부르르 떨렸다는 실없는 소리.
멀쩡한 건물이나 도로를 허물고 부수고 24시간 오만 소음을 내면서 사람의 기를 한없이 빨아들이는게 이 도시 시장님의 소위 '디자인' 정책이고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
내가 사는 곳은 특히 더 이런 현실을 체감하는 서울 중심부, 디자인 거리를 만든답시고 온동네가 멀쩡한 간판도 다시 달고 보도블럭도 뒤엎었고 오래된 골목 사이 정든 돌도 들어냈으며 광화문 광장은 아시다시피 세상에서 가장 웃기면서 부실한 광장이 되었고 경복궁은 11월에 오셨던 부자 나라 손님들 덕분에 마치 방금 지은 빌딩같은 면모를 갖추며 가부키 같은 화장을 서둘러 끝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건축'과 '건축가'가 있다.

그래서 나는 책을 받자마자 이 책의 저자들이 지었다는 건물이 어떤 것인지부터 살폈다. 물론 정부청사나 관공서를 지은 분도 계셨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질색을 할 만한 건물로 기억하는 건축물을 지은 분은 없어서 일단 안도했다.

다음은 아무래도 거슬리는 제목의 문제. 경제학 콘서트, 심리학 콘서트 등 콘서트 붙이기 트렌드는 이미 지난 걸로 생각했는데 2010년에 건축에 대한 에세이 교양서가 이런 제목으로 나온다면, 아무래도 깐깐한 독자의 관심을 끄는데 실패하기 쉽겠다는 아쉬움이 앞선다. 건축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에게 입문하는 자세를 일깨워주고, 일반대중에게는 조금 더 힘을 빼고 친밀하게 다가가는 건축이라는 종합예술을 소개하고자 하는 의지라면 이보다는 신선하거나 정직한 제목을 썼으면 좋았을 걸 싶어서.

내용은 기대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그런 수준이다.
애당초 12명이 쓴 글이 모두 마음에 든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거다. 그 중 몇몇은 솔직히 지루한 교과서적 (뻔한) 이야기를 왜 이런 책에 굳이 썼을까 싶은 편도 있고 한 두 꼭지는 문외한인 내게 아주 좋은 정보가 되기도 했으며 건축이라는 주제에 국한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모든 문화예술에 접목할 만한 좋은 내용도 있었다.
개인적인 취향도 반영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건축으로 통하는 12가지 즐거운 상상'이라는 부제에 걸맞고 이 책을 가장 흥미롭게 해준 꼭지는 이종환의 '유쾌한 딴지걸기'였다.
건축을 비롯하여 모든 창조 행위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사고의 전환'이라는 문제를 겉핥기 식으로 설교하지 않고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을 꺼내며 이런저런 제안을 솔직하게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구성상 가장 아쉬운 점은 어차피 너무 광범위한 건축이라는 주제를 12가지로 나누고 짧은 글로 나누는 과정에서 나오는 거칠고 성긴 직조는 그럼직한데, 각각의 글이 예로 들고 있는 건축물의 그림이 너무나도 작다는 점이다. 미적 감각이라고는 제로에 가까운 메트로폴리탄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사는 나 같은 독자는 당장 내 두 발로 그 자리에 서지는 못할 망정 그림으로라도 멋진 건축물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려가며 읽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조차 심드렁하게 읽게 되곤 했으니까. 지면이나 두께의 한계, 비용의 문제까지 있었겠지 짐작은 가지만 이런 내용의 책이 오래 읽히려면 포기하지 말았어야 할 대목이었다는 게 개인적인 (주제넘은) 생각이다.

아무려나 유명하다는 건축가, 겉으로 봐서는 모르지만 알고보면 생태학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건축물, 맛보기 했으니 이제는 길을 걷다가 혹은 여행을 하다가 잘 살펴볼 일만 남았다. 더불어 암울한 관 주도 디자인과 건축 문화를 타개할 수 있는 용감무쌍하고 똘끼 가득한 건축가도 많이 나와서 우리 눈과 몸을 보다 편안하게 해주시길 감히 바래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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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2010-12-1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저는 건축가들이나 그쪽 전공자들에 대한 연민마저 생겨요. 음악, 소설, 시, 그림 같은 것들보다 훨씬 생생한 물리적 제약속에 있다보니 '업자'가 없으면 일을 하기도 힘들고... '개발' 이란 단어와 언계가 안될수도 없고..

치니 2010-12-14 15:11   좋아요 0 | URL
네, 사실은 이 책 읽으면서 그런 애로사항을 바탕으로 해서 건축과 권력 관계를 파헤치는 책이 나온다면 어떨까, 발칙한 상상을 했드랬어요. 하지만 상상에 그치는 일이겠죠. 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