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심리학 - 아들을 기르는 부모, 남자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교육 지침서
댄 킨들론.마이클 톰슨 지음, 문용린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아무래도 (거친 단정이지만) 자기계발서와 심리학서랑은 도무지 궁합이 안 맞는 것 같다. 유일하게 감동 받았던 자기계발서는 오래 전 네꼬님이 소개해주신 소노 아야코의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뿐. 대개는 혹 해서 읽었다가 에이, 역시...이러면서 덮게 되니. 쩝. 

이 책 <아들 심리학>도 그런 편에 속한다. 솔직히 말하면 EBS의 <아이의 사생활> 프로그램이나 여타 교육 심리 프로그램에서 본 것들 중에 남자아이에게 조금쯤 더 깊고 집중된 시선을 둔 정도에 그쳐서 아주 새롭달 만한 내용이 없었다. (그러고보니 역자가 EBS에 자주 나오시던 그 문용린 선생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 되기에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혹시 내가 남자 아이를 키우면서 놓치고 있는 게 없는지 점검 차원에서 읽은 책으로는 알맞았다고 생각한다. 

미리 밝혀두건대, 나는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저렇다 라는 식의 화성인 대 금성인 구분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니다. 남자는 다 그래, 여자는 다 그래라는 생각으로 '남자'들의 생각을 알려하기 보다는 지금 당신이 사랑하는 한 '인간'의 생각을 알려는 식으로 접근하는 편이 관계에 훨씬 이롭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남녀 간에 생물학적인 차이와 환경적인 변수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이분법으로 나뉠 수 있다고 믿고 그에 따라 쉽게 단정하는 오류는 차라리 그 차이를 모를 때보다 더 치명적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나의 생각은 이 책을 읽으니 더욱 굳어진다. 이 책에서도 아들은 (딸이 그렇다고 많은 페미니스트가 주장해서 오늘날 교육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주었듯이) 아들로 키워지는 경우가 많지, 태어나면서부터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폭력성이나 공격성을 지니지는 않는다는 게 새로운 학계의 주장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내용은 기존의 내 생각을 글로 읽는 것 같아서 크게 내 이목을 끌 수 없었지만, 근래 들어 조금은 고민이 되던 두 가지 주제에 대해서 약간의 방향성을 찾은 점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 하나는, '아들에게 여자친구 혹은 사랑하는 이가 생겼을 때, 아니 생기려고 할 때 대처하는 가장 좋은(?) 자세' 같은 것.  

그러니까 소위 촌스러운 엄마나 간섭하는 엄마가 되기도 싫지만 아들이 의견을 물을 때 제시하는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암암리에 상상하곤 했는데 - 이 책에 나온 사례를 보니 오, 애매한 대답이 제일 낫겠다 싶다. 그러니까 좋다고도 싫다고도 하지 않고, 예쁘다고도 밉다고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봐 주되 관심은 갖고 있음을 표현하는 거다. 이 책에 나온 엄마는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아들이 조금은 의아하고 섭섭해서 왜 그렇게 의견 표현을 하지 않았나 묻자, '절대 너를 잃고 싶지 않아서'라고 대답했다. 혹시 헤어질지도 모르는 젊은 연인에게 좋은 평가를 해두면 나중에 아들이 왜 그때 별로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원망할 수 있고, 반대로 나쁜 평가를 해두면 '엄마는 처음부터 자기 안목을 믿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아들이 언제나 엄마에게 마음껏 연인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들을 잃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흠, 내 촐싹대는 입이 이런 과묵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노력은 해 볼 작정.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죽기로 결정났을 때부터 죽기까지 아들을 대하는 자세"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확률상 아들보다는 내가 먼저 죽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고 질병에 의한 죽음이라면 예고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 책에서는 어떤 엄마가 그런 예고를 받고 두 아들을 대하는 의연한 자세가 묘사되고 그 의연함 때문에 어린 두 아들이 훌륭히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극복하고 자신의 인생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 대목이 나온다. 이 엄마의 방법은 보통 하듯이 그저 아들에게 자신은 괜찮으니 너희는 걱정 말아라 정도에서 조금 더 과감하게 나아가는 것이었다. 불치병 선고를 받고 약 일년 반 남짓 생이 남았다고 들었을 때부터 모든 병원 치료 과정을 상세히 아들들과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준비해두어야 하는 것들도 같이 준비했으며, 심지어 아들이 '내가 방학하기 전에 엄마가 죽을 줄 알고 휴학 신청했는데 안 죽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철없는 말을 할 때에도 노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았다. 엄마의 죽음이 곧 두려움인 아들의 속내를 이해하고 휴학 신청 후 계획을 다시 논하고 크리스마스에 죽지 말아달라는 아들의 바람에 대해서는 약속하기 힘들다고 솔직히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아들들은 엄마는 곧 죽는다는 기정사실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결국 엄마가 죽을 때 쯤에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휴학 이후 학교생활을 비롯한 일상에도 전혀 지장이 없었고. 어떤 엄마도 자식이 본인이 죽은 뒤 통탄만 하고 제대로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하길 바라지 않을 것이지만 생을 얼마 못 남긴 상태에서는 인간의 이기심과 유약함 때문에 자식에게까지 죽음의 두려움을 고스란히 전하는 엄마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무척 이기적이라서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이 책의 엄마처럼 의연하고 차분하게 준비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 

자, 이제, 책 한 권 읽고 대단한 공부한 것 마냥 또 한참 아들에게 써먹어 봐야지.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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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4-2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연달아 올라오는 40자평과 리뷰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치니님은 참으로 계획성 있는 분이로구나, 하는거에요. 이 책을 살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그 책을 사서는 또 죄다 읽으셨네요. 치니님 책장에는 읽지 않은 책이 몇십권씩 쌓이는 일이 없을거라는 생각이 막 들었어요. 물론 일전에도 그런 뉘앙스의 말씀을 하기는 하셨지만 말이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저는 왜 그런 사람이 못될까요?
이웃블로거 D 님의 블로그에 가서 책 감상 올라온거 좌르륵 읽고, 여기서 치니님의 리뷰도 읽고 나니 아아, 나는 왜 요즘 책을 멀리하고 사는가, 다시 책 읽는 생활로 돌아가자 싶어요.


아들의 여자친구, 도 그렇지만 저는 남동생의 여자친구도 누나에게 참 애증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요.(물론 '아들'과 '남동생'은 다르지만 말이죠.)
간섭은 아니고 관심은 가져야 하는 그 지점을 어떻게 제대로 캐치할 수 있을까요? 조금만 어긋나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제 경우엔 남동생의 여자친구는 일단 '만나기도 전부터' 꼴도 보기 싫더라구요. 하핫. 그런데 묘한건 일단 만나고 나면 제가 예뻐라 한다는 거에요. 잘해주고 싶고 예뻐하게 되요.

나에게 아들이 있다, 아들을 둔 엄마로서 공부를 하고 싶다, 라는 건 정말 멋진 생각인 것 같아요. 사실 대부분의 부모 자식 관계에서는 공부를 한다기 보다는 무조건적인 애정만이 답이라고 생각하게 될 확률이 크잖아요. 공부를 한다고 반드시 더 좋은 엄마가 되는건 아니겠지만, 공부하려고 마음 먹는 엄마는 일단 좋은 엄마인 것 같아요.


전 뭐가 이렇게 댓글이 길어요. -_-

치니 2011-04-26 13:42   좋아요 0 | URL
아하하, 오해십니다. 그렇게 계획성 있는 편은 못 되고요, 그보다는 좀 강박성이 있는 편인 듯. -_ㅠ 숙제도 아닌데 읽겠다고 해놓은 책은 읽어야 직성이 풀려요. 그래서 책을 고를 때 약간은 신중해지는 편이지만 또 가끔은 충동적으로 아무거나 읽기도 하고. 읽지 않은 책이 몇십 권씩 쌓이는 일은 없기는 한데, 읽은 책도 별로 안 쌓여요. 저는 왠지 집에 뭐가 많은 게 싫어가지고 ㅋㅋ 쌓이면 내다 팔거나 누굴 주거나 해서. (이러니 가끔 읽었던 책을 까먹고 또 사서 읽기도 하고요 ㅋㅋ)

맞아요, 다락방 님처럼 남동생이랑 친한 누나에겐 남동생의 여자친구도 애증의 대상일 거 같아요. 어쩌면 아들보다 더 묘하게 경쟁심리? 그럴 수도. 하지만 나는 남동생이 다락방 님 남친에게 더 눈을 부라리며 감시가 철저하고 웬간해선 마음에 안 들어한다에 한 표. ㅋㅋ 처남 무서워서 벌벌, 맨날 그럴 듯. 든든해보여서 좋아요.

아웅, 나도 답글을 길게 쓰고 싶었건만, 답글 창이 어느 줄부터는 가려지는, 그래서 안 보고 타이핑 해야 하는 (뭔지 알죠?) 이 시스템에선 너무 힘들다. 알라딘에 제안할까봐요. ㅠ

굿바이 2011-04-26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늘어진 오후 눈이 번쩍 했어요! 이런 마더는 쫌 짱인데요 :)

아들의 여자친구와 관련해 울 엄니의 단짝이신 장여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부도수표 떠넘기는 즐거움을 니들이 알겠니?ㅋㅋㅋ"

유사심리학 책들을 보면 남자와 여자를 가르마타서 잘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건 좀 믿기 힘들어요. 한때 유행했던 "그때~그때 달라요~!"가 오히려 오해를 줄이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나저나 이렇게 든든한 그리고 노력하는 엄마를 둔 아드님은 참 좋겠어요.
일종의 횡재죠 :)

치니 2011-04-26 14:53   좋아요 0 | URL
어이쿠, 굿바이 님 같은 이모를 둔 귀연이야말로!

엄마로써 너무 뭘 잘 모른다는 자괴감, 그러니까 나는 늘 철이 없기에, 조금이나마 노력을 해보는 것이지요. 노력의 방향성이 제대로여야 할 터인데. ㅋ

Kir 2011-04-26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감동받았어요... 자식을 끔찍히 위하고 절절히 사랑하는 엄마는 수없이 많겠지만,
자식을 위해서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썩 많지 않은 것 같거든요.
아드님 정말 좋겠어요, 이렇게 멋진 엄마라니요!

<남자는 다 그래, 여자는 다 그래라는 생각으로 '남자'들의 생각을 알려하기 보다는 지금 당신이 사랑하는 한 '인간'의 생각을 알려는 식으로 접근하는 편이 관계에 훨씬 이롭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남녀 간에 생물학적인 차이와 환경적인 변수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이분법으로 나뉠 수 있다고 믿고 그에 따라 쉽게 단정하는 오류는 차라리 그 차이를 모를 때보다 더 치명적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이 부분에 형광 노랑으로 밑줄 쫙 그어두고 싶어요.

+) 저도 자기계발서는 피하게 돼요, 맞지 않기도 하지만
억지로 읽어야하는 경우에도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요.

치니 2011-04-26 18:51   좋아요 0 | URL
아냐 아냐요 ~ ^-^;; 좋은 엄마 혹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시는 분들 많아요. Kircheis 님이 주변에서 못 봤다면 저처럼 생색질을 안 하시는 진중한 분들이라서 그랬을 거여요. ㅋㅋ 저는 뭘 해도 늘 생색이 우선.

그르니까요, 자기계발서는 또 누가 읽으라 해서 억지로 읽는 상황도 종종 발생시키는 주범. 자기계발서도 물론 좋은 책이 있겠으나...아무래도 시간과 돈이 적은 우리는, 확률적으로 맘에 들 가능성이 높은 여타 장르를 선호할 수 밖에요. :)

pjy 2011-04-26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자기계발서나 심리학관련 책이 참 거시기해요-_-;
힘들게 날짜빼서 나름 비싼 돈내고 의사앞에 앉았더니 순 사기꾼처럼 아는 얘기만 주저리주저리..목이 아프십니까? 제가 보니 부었군요~ 말을 하지마십시오~
그건 나도 아는데 불가능한 미션이라 병원왔구만!!!
다른방법이 있을것처럼 말은 시작했으나 결국 사기당한 기분이 들어요ㅋㅋ;

치니 2011-04-27 01:02   좋아요 0 | URL
후훗, 적절한 비유 같아요.
부었군요 ~ 말을 하지 마십시오 ~ ㅋㅋ

아들 심리학은 완전 자기계발서는 아니지만, 좀 더 심리학 본연의 학문적 접근을 기대했던 저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어요. 어떤 설명은 조금 더 깊게 해주었음 싶기도 했고. 어차피 정답이 없는 분야니 뭐 특별한 방법 제시 이런 건 안 하더라도 말이죠. :)
 
뮌헨 여름 소리
신동준 지음 / 초방 / 200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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솨 - 바람 불고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여름날, 태생적 불안을 달래줄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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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살고 죽고 - 20년차 번역가의 솔직발랄한 이야기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하고,재미있고,도움된다. 제목은 내용에 비해 너무 비장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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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04-22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속에서 하루키 씨는 한번 번역한 책은 다시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본인 책이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된 것에 설사 오역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탈고한 책 역시 절대 돌아보지 않기에 어디가 빠졌는지 더해졌는지 잘 모른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으니, "그건 마치 벗어놓은 양말 냄새를 맡는 것과 같아서." - 캬, 멋지잖아!!! 그리고 부럽. ㅠㅠ 난 아마 안 될 거야, 절대...

다락방 2011-04-22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벗어놓은 양말 냄새.. 아 미치겠어요, 하루키. ㅎㅎ

치니 2011-04-22 12:40   좋아요 0 | URL
그 문장을 읽을 때 다락방 님을 바로 떠올렸어요. 제가 카카오 톡을 했다면 적어서 보내주고 싶었어요. ㅎㅎ 저 책 표지에 코를 감싸쥔 하루키 보이시죠?

stillyours 2011-04-22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하루만에 다 읽었는데- 아, 진짜 솔직하고 재밌고 가독성 좋고 무엇보다 실질적이고!! 하루키 얘기는 일전에 『문학동네』인터뷰에서 읽고 빵 터졌었는데 그림으로 보니 또 확 다가온 ㅋㅋ

치니 2011-04-23 12:56   좋아요 0 | URL
아 moon 님 벌써 읽으셨구나 ~ :)
다른 번역 관련 책에 비해서 개인 경험을 더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밝혀주셔서 가끔은 '어, 이 정도로 다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어요. 실질적인 금액까지 막 나오고. ㅋㅋ 게다가 대리번역 시킨 그 사장님은 아직도 사업 중이시라면 좀 많이 뜨끔하실 듯.
하루키 이야기도 문학동네에 나왔었구나. moon 님은 다 아네! :)

2011-04-22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3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송승준 편집장님이 언급하셨듯, 현 출판계에서는 무리한 홍보 전략과 치열한 가격 경쟁이 초래하는 부담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땡스 투 하나 당 작게는 몇 십원에서부터 몇 백원 까지 차곡차곡 쌓이는 적립금에 무심할 수만은 없는 소시민으로써 우아한 소비자보다는 홍보에 즉각 반응하는 소비자로 사는 나를 부정할 수는 없는 법. 반값도서라고 하면 우선 들여다보고, 주문 전에 땡스 투를 눌러서 적립금 올리기 위해 안 읽었던 40자 평, 페이퍼, 리뷰 등을 서둘러 읽기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책값을 절약할까 고심한다. 그러나 퍼뜩 정신을 차리고나면 나름대로 약게 계산해서 장바구니를 채웠다고 해도 바로 그 '약은 계산' 때문에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책을 충동적으로 구입했음을 깨닫기도 하는 것이 인지상정.
알라딘과 나 중에 누가 더 꼼수가 나을까 평가라도 한다면, 반드시 알라딘이 이길 것이매 섣부른 도전으로 아껴봐야 거기서 거기라는 경험치만 쌓이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정신이 외출하여 주문을 다 하고보니 땡스 투도 안 눌렀고 이리 저리 맞춰서 가격에 상응하는 할인도 받지 못했던 것. 부랴부랴 땡투 할 평들을 살폈으나 오 - 신기하게도 정말 하나도 누를 것이 없.다.
그런데 이게 더 순도가 높고 책에 대해 순정적이라는 마음이 들며 뿌듯한 건 또 웬일? 물론 자체적으로 온라인 서점이니까 할인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내 손으로 뭔가 책값을 깎아내리지 않았다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이리저리 할인 받는다고 구색 맞추는 게 괜히 깨끗한 천에 누더기 입히는 기분도 들고(그래, 너 배가 불렀구나 욕할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 당장은 로또 맞지는 않아도 사두기는 한 사람처럼 착각의 호사를 누리고 싶다), 누가 뭐라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척척 주문하고 다른 건 신경쓰지 않았다며 혼자 괜스레 으쓱, 소신있는 독자가 된 기분이다. 풋.
아무튼 그 목록은 아래와 같다.

땡스 투 없었던 이유:
신간이라 리뷰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타 블로그에서 이웃으로 지내는 D님이 공동저자로 낸 이 책의 출간 배경을 알고있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마음을 제 돈 주고 사는 행위로나마 스스로에게 표현하고 싶었다.
부디 많이 많이 팔려서 수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고 내상을 극복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땡스 투 없었던 이유:
이 책 역시 리뷰가 없었다. 신간이어서는 아니고 어쩐 일인지 덜 소개된 모양인데, 나는 이 책을 트위터에서 팔로잉하는 W님을 통해 알게 되었고 '초방'이라는 출판사 이름을 보니 몹시 반가워서 무조건 읽기로 마음 먹었다.
십 몇년 전 '초방'이 연대 근처에 작은 어린이 책방으로 있을 때, 그 대표와 나같은 초짜 몇 몇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어린이책을 열심히 읽고 합평회를 하던 기억, 그 때 먹은 빵이 너무나 맛났던 기억까지 - 추억이 아롱다롱. :)







땡스 투 없었던 이유:
이 책 역시 알라딘을 통해 알게 되기보다는 네*버에서 출판사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되었기도 하고 (그러니까 나는 지금 진정한 의미에서의 땡스 투를 해야만 한다는 억지를 좀 쓰는 중이다. ㅎ 나의 구매에 정말로 영향을 끼친 이에게만 한다는 원칙 따위를 내세우면서), 신간이라 아직 리뷰가 달리지 않았다.
제목이 너무 비장하기는 하지만 최근 번역 일에 관심이 높은 나로서는 일독에의 유혹을 피하기 어렵다. 권남희 씨 책은 나도 여럿 읽어본 기억이 있지만 정확히 어땠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번역가란 오역이 심했을 경우에만 다시는 그의 번역서를 읽지 않기 위해 이름과 작품이 기억되는 운명을 지녔는지도. ㅠ




땡스 투 없었던 이유:
이 책은 아주 최근에 나온 신간이 아니라서 리뷰나 페이퍼가 있기는 했지만...역시 엄정한 나의 잣대에 ^-^;; 맞는 땡스 투 대상은 없었다.
심리학 서적이나 자기계발서를 유독 꺼리기는 하지만, 이런 책에 거는 기대는 솔직히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 대한 기대이기에 - 즉, 단 몇 줄만이라도 나의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면 족하다는 뜻 - 읽어보기로 했다. 아들 좀 잘 키워보겠다고 이제 와서 욕심 내는 건 아니고, 나와는 성별이 다른 아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가끔 아주 많이 궁금해지기 때문.







책들은 별일이 없으면 내일 도착한다. 우적우적 먹어치울테다! 생뚱맞게 돋은 독서욕에 힘 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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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11-04-20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그래서 '순정한' 주문이군요. 하하.
저는 대체로 귀찮아서 순정한 주문을 하게 되는데... 음...
역시 엄마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역시 참 책을 많이 (그것도 실하게) 읽으신다 하는 생각 하나...^^

치니 2011-04-20 11:20   좋아요 0 | URL
이힛, 오버 좀 했어요. 무슨 순정 씩이나.
카이레 님은 쿨 한 주문을 하시는군요! 귀찮아서 땡투 따위 신경 안 쓰는 ~ 오.
엄마 노릇도 배워 가며 하는 게 저 같은 철부지에게는 필요하더라고요. ^-^;;

굿바이 2011-04-2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정한 주문, 너무 근사한데요.
그나저나 저는 땡스투가 뭔지 몰라서....그러니까 저는 반편이 주문!이라고 외칩니다! ;0

아참, 치니님은 번역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으시는 것 같아요. 음....뭐든 대박나세요!!!:)

치니 2011-04-20 11:22   좋아요 0 | URL
하하, 나 참, 제 서재에 와주시는 분들은 왤케 쿨하신 거에욥. 굿바이 님은 아예 뭔지도 모르다니. ㅋㅋ 이렇게 살짝 허술한 게 굿바이 님 매력인 걸요.

번역, 으흑 - 그 애증의 단어.

Arch 2011-04-2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가 맑아지는(?) 페이퍼에요. 못미더운 땡투도 우선 누르고 봤던 제 경우엔 더더욱! 앞의 두 책은 찜했어요.

치니 2011-04-20 11:23   좋아요 0 | URL
제가 그래서 순정 씩이나 하다며 웃기는 주장을 하잖아요. ^-^;; 저 역시 못미더운 땡투도 누르고 본 경험이 있는지라.
보통의 경험 찜해주셨다니 고마워요. 왠지 이 책은 제가 막 사라고 홍보하고 다니고 싶어서. ^-^;;

당고 2011-04-20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것이 말로만 듣던 입소문 마케팅! ㅎㅎㅎ
애정해요, 치니 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치니 2011-04-20 11:41   좋아요 0 | URL
히히, 나 잘했쎄요?
실은 더 많이 돕고 싶은데 어째야 할지 몰라서 일단 나부터 책을 구매하자, 그런 중이에요. 하지만 이 글 읽고 누군가 한 권이라도 사고 누군가 큰 도움을 받는다면, 정말 좋겠다 바라기는 해요.
게다가 익히 알고 있는 누구누구의 글 솜씨 때문에 심지어 재미있으리라는 기대도 하고 있답니다. 아훗.

2011-04-20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0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티 크라이스트 - Antichris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를 보러 간 어제는 비가 내렸다.
개봉하자마자 보려 가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며칠을 미루다가 안되겠다 싶어 나선 날, 하필이면 비도 내리고 그 때문인지 봄은 급 샐쭉해져 찬란한 빛이나 초록을 다시 감춘 채, 차갑고 스산해져 있었다.
설령 보고나서 굉장한 불쾌감이나 우울감에 빠지더라도 날씨 탓을 하기에 좋은 영화일 지도 모르겠다, 고 우선 자위했지만 보고나서 이 날씨 덕분에 더 주체할 수 없어질까봐서 걱정이기도 했다.

극장의 창구에는 영화 소개와 더불어 빨간 글씨로 특정 장면의 가학성과 잔인성이 담긴 내용을 친히 소개해두고 있었고, 창구 직원은 혼자 온 여성인 나를 주의깊게 살핀 후, "이 영화는 매우 잔인한데요, 그래도 보시겠습니까?" 미리 교육한 흔적이 역력하게 재차 확인을 한 뒤에서야 표를 내주었다. 내 뒤의 남성은 푹 하고 웃었지만 나는 차마 웃을 수 없을 정도로 겁을 먹고 말았다. (관람 후 돌이켜보건대 극장 측의 이러한 자기방어는 영리하면서도 예의 바른 배려의 일환으로 둔갑될 만큼, 괜찮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래서 어땠느냐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영화의 완성도는 - 정작 라스폰트리에 감독은 '완성도는 높지 않더라도' 자신의 우울병을 치유하는 기간에 쓴 가장 개인적인 작품이라고 칭했지만 - 내게는 놀라웠다. '도그빌'에서 놀랐던 그때처럼 가슴 한 쪽이 불쾌하지만 기이하게 뻥 뚫린달까, 묘한 여운을 가장 오래 간직하게 될 영화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역시 그 표현 방법이 찝찝하다. 어쩔 수 없다. 각오는 했지만 몇 몇 장면에서는 눈을 꾹 감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눈을 감자 안 보이는데 소리만 들릴 때의 공포감이 더 심해졌다. 그래서 눈을 뜨고 화면 가장자리만을 봤다. 엉엉, 씨네21에서 이름 지었듯 이 영화는 '고문 포르노'이다.
포르노를 호기심에서 보고야 말지만 포르노에서 그 어떤 교훈을 얻기 힘들다는 점에서도, 그럼에도 그 망할 놈의 호기심이 고문까지 예술적이라는 허명 하에 받아들이도록 억제하기 힘든 '보는' 욕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그리고 고문 후에도 잔존감은 내상으로 남는다는 점에서도 두루두루 그러하다.

사실 밤잠을 설칠까봐 두려웠다. 까불거리는 상업영화 한 편을 더 보고 상쇄하거나 편안한 친구를 만나 영화에 대해 실컷 뒷담화를 하면 나아질 것도 같았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고 괜한 대비였다. 친구를 만나면서도, 술을 마시면서도,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영화 속 샬롯 갱스부르의 표정이 어른거렸지만 그것은 두렵지 않았다. 조금 과장하자면 친근하기까지 했다. 이 친근감은 무엇? 의문이 생겼다. 어쩌면 단지 내가 여성이기 때문? 어쩌면 원래 내가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 어쩌면 ... 이 영화에 매혹되었기 때문? 아직은 모르겠다.

현재로서 내가 아는 한 가지는,
'내'가 이 영화를 (두려움을 무릅쓰고) 보기는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지만 '남'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기란 무시무시하게 어렵다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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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2011-04-26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보셨네요~ 그런데 어는 극장에서 보셨나요? 씨네큐브인가요? 아~ 만약에 만약에 말이죠 치니님과 이 영화를 가지고 얘기한다고 가정할때 끝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문뜩 드네요~ 왜냐하면 다른여성은 이렇게라도 소상하게 자세하게 말하진 않을꺼라는 느낌이 들어요~ 전 영화 보자마자 바로 아는 사람에게 영화홍보사마냥 강추하고 다녔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그 전에 보던 어떤 영화보다도 여성을 이렇게 다룬적이 없었다는 거죠~ 가학적으로요~ 특히 가위나오는 장면은 쓰나미 울트라초특급이었죠~ 프로이드가 울고갈 지경이네라며 속으로 생각했어요~ 여러 리뷰들을 읽고 아무리 많은 블로거들의 글들을 접해도 납득할만 이 영화의 해석은 아직까지는 없어서요~ 홍상수처럼요~ 100년갈 영화로 보여요~ 저에겐~ 샬록 갱스브르 대단하죠~ 그 여주인공은 니콜키드만, 에바그린을 걸쳐 그녀로 가기까지의 우여곡절이 엄청 많았데요~ 그런데 이번의 신작 멜랑콜리아는 더 어마어마할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치니 2011-04-26 18:48   좋아요 0 | URL
네, 씨네큐브에서 봤어요. :)
네오 님이 미리 언질을 주신 덕분에 여성을 어떻게 그리는가에 대해서도 조금 더 집중하며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보러 가기 전 웬간해선 영화 정보를 전혀 접하지 않는 저인지라, 안티크라이스트가 반기독교와 다르다는 것도 몰랐고 역시 이래저래 이해 안 가는 장면도 많아서 (잘려서 그런 것 같지만은 않아요, 그냥 제 이해력 부족 ㅠ) 저도 다른 분들 리뷰를 봤지만 여전히 해석이 분분, 결국 자신만의 느낌을 가지고 갈 수 밖에 없는 듯해요.
누구라도 이런 영화의 주인공을 선뜻 수락하긴 힘들겠죠. ㅠㅠ 이해해요. 니콜 키드먼은 전작 도그빌에서 이미 감독과 엄청 싸웠다매요. ㅎ
아, 하지만 이제 이 감독의 영화를 또 볼 엄두가 날까, 걱정도 들어요. 쎄도 너무 쎄다능.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