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하이킥을 보니, 나문희 여사는 봄이면 봄바람이 나서 미친x 이 되는 증세가 있던데,나에게 봄은 늘 ‘나른함’의 대명사라 나여사처럼 뛰쳐 나갈 마음이 들기는커녕 쏟아지는 햇살이 부담스럽고 그 햇살 속에 더 잘 비춰지는 온갖 세상의 오염들과 먼지 때문에 바깥 출입이 오히려 꺼려지는 계절이다.
(하긴 겨울엔 추워서 나다니기 싫다고 하고 여름엔 더워서 나다니기 싫다고 해왔으니, 봄에만 이런게 아니라 그냥 태생적으로 게을러 터졌다)
그래도 계절이 주는 여파는 작게나 크게나 누구든 피할 수 없기 마련.
나에게는, 역시 ‘일하기 싫어 죽고 싶은’ 여파와, ‘뭔가를 사고 싶은’ 충동 구매의 여파가 왔다.
일하기 싫은 거야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어떻게든 시간을 떼워보자고 버티면 되는건데, 뭔가를 사고 싶은, 혹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싶은 충동이 지갑이나 몸이나 가만 놔두질 않는다.
나란 인간이 경제 관념이 꽝이라 그런지, 경제 관심이 꽝이라 그런지 아무튼지간에 무슨 무슨 이벤트는 항상 내가 무언가를 사고 난 뒤에 열리고 남들 다하는 인터넷 쇼핑도(알라딘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할 줄을 몰라 어찌 어찌 1시간만에 구입을 하고 나면 쓸 수 있었던 쿠폰이나 무슨 무슨 할인이 다 빠져 있거나 몇 일 뒤에 가격 폭락인 경우가 비일비재다.
오늘도 점심 먹고 나른하게 어서 어서 시간 가라 하고 있는데,
몇일 전 요가 생각을 했던게 떠올라서 나름 요가 비디오를 고르다가는,
생전 잘 들어가지도 않던 알라딘 메인 페이지를 보게 되고 이벤트에 서재 책꽂이 준다는 대문짝만한 그림이 있길래 '응모하기'부터 쿡 누르니, 무슨 책을 사야 하는 모양이라, 카테고리당 300개씩이나 되는 베스트셀러 책들을 하나씩 보고 앉았다가(그래요 오늘 백만년만에 한가해요),
‘이건 예전엔 읽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건 소문에 비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이건 어차피 사놔도 안 읽을 거 같은데’
‘이건 아무리 이벤트래도 너무 비싸당’
따위의,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걱정이나 하면서 창을 닫고 말았다.
이벤트도 없고 할인도 없고 아무것도 없을 때는, 휙 보관함에 들어가서 척척 고르고 결제하면서, 정작 이럴 땐 왜 이러는지 당최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위와 유사한 짓을 두어 시간 하다가,
다시 하이킥으로 돌아가서 나문희 여사가 부럽고 알흠답다는 생각을 한다.
꽃 한송이와 나비 한마리에 열광하며 기분 좋으면 노래와 춤이 절로 나오는 동심의 나여사.
그런 자신을 속박하는 모든 것에 대해 온 몸으로 가열차게 저항하는 나여사.
참 건강하게 잘 늙은 어여쁜 인생이다.
나는? 오늘 산 요가 디비디 오면 그거라도 열심히 해야지, 끄응.
(그래도 그간 모은 적립금으로 할인 받아서 달랑 3천원에 구매한 것에 뿌듯해 하는 중.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