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원을 통틀어서 여직원이라고는 7명 뿐인 회사라 그런지, 아니면 근무 시간 내 휴식이라는 개념을 아예 도입하고 싶지 않은 사장님의 속사정 때문인지,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소위 여직원용 휴게실이란 것도 없고 그 비슷한 공간도 없다.

오래전 여직원만 몇백명이 되던 회사에서는 그 휴게실 내에서 들리는 온갖 뒷담화와 질리는 수다 때문에 오히려 멀리 하고 싶었건만, 가끔이나마 이렇게 한가한 오후에는 누구 눈치 안 보고 편안히 눠 있을만한 그때의 휴게실 안마의자가 살짝 그립기도.

 

상황은 열악할지언정 놀고픈 마음은 수를 찾아내는 법.

오늘부터 집에서 녹차를 싸오시는 대리님 이 분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경이롭다, 회사 일도 만만치 않은데 자전거를 사서 운동 겸 출퇴근도 하시고, 가사 일에 육아에, 영어 회화도 배우고 싶어하시고, 멀긴 하지만 재래시장이 가격 대비 질이 좋다고 부러 찾아가 찬거리를 준비하며, 아침상으로 생선구이도 가끔 드시고 온다. – 을 부추겨 녹차 세트를 들고서 초라하지만 쇼룸 비슷하게 차려놓은 작은 방으로 기어들어가 십여분의 휴식 시간을 내봤다.

 

대리님: 저는 항상 생각이 너무 많아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런데 시간은 없고 그래서 늘상 쫓기는 기분이야, 지금도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막막해요.

: (멍한 표정으루) 저는 항상 생각이 너무 없다는 기분인데. 하고 싶은 것도 그다지 많지 않고아무 할 일 없는게 제일 좋은데….헤헤.

대리님: 근데 생각만 많지 실천이 안되서요,…

: 그럼 그중에 제일 하고싶은 것부터 하면 안되낭….

대리님: 그게 그렇지가 않죠. 진짜 마음으로부터 젤 하고 싶은 거랑, 젤 해야 하는 거가 달라서요. 근데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할라믄 젤 해야 하는걸 해야되잖아요.

: (@@ 한 표정으루)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할라믄, 젤 하고 싶은 거 해야 되는거 아닌가이상하다….

 

휴식 마치고 책상으로 돌아와 또 컴과 놀면서 휴식하는데 ^-^;;; 아무래도 대리님 생각에 동의가 안된다.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렇다면 내가 젤 하고 싶은 거부터. 이게 단순한 내 머리로는 아무래도 맞는데… '원하는 방향'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마 첨부터 다른 의미인가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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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07-02-22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런 얘기 들으면 성공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그런 거구나... 입을 헤 벌리고 고개를 주억거려요..- -;; 아마 그럴 때 표정이 @@한 표정이겠죠. 큭. (근데 치니 님은 대리님보다 높으시구나.. 이런 맹한 생각 하며 읽었다지요..^^)

치니 2007-02-22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성공하는 사람들은 저와 같은 사람과는 아무래도 다른가봐요. 으 하지만 성공 안하고 맨날 하고싶은 것만 하고 놀고 싶어요, 헤헤.

mooni 2007-02-22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치니님. 왜 이렇게 웃겨주시는 거예요. ㅋ 멍한 표정으루와 @@ 한 얼굴, 완전 귀엽습니다...>.<

대리님은 도전하는 포즈를 취해서 자신이나 남한테 인정도 받고 싶고 그러면서도 또 실제 도전은 안해도 되서 피로도와 실패후유증은 확 줄이는, 매우 저렴하고 현실적인 타협안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뭐, 아닐지도 모르죠. 모르는 분이니...호호...근데 저도 회사에서 저런 상담(?) 자주 들어요. 심드렁한 얼굴로요. 속으론 으으~~ 일기는 방에서 혼자 쓰셔! 하고 생각하면서요. ㅋㅋ

sudan 2007-02-22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회사에서 여직원끼리 대화중에 @.@ 표정 지은 적 있어요. 억지로요. 속으로는 -_-;;; 표정이었기 때문에, 곤란했었어요. 그 직원이 말하기를 "난 지금이 너무 너무 행복해요. 집에서는 남편이 잘해주고, 애기가 너무 이쁘고, 회사에서는 회사일이 너무 재미있어요. 출근하는 게 정말 좋아요." 그러더라구요. -_-;;;

sudan 2007-02-22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그런데, 지금 좀 핀트가 빗나간 댓글이었군요. 저 '여직원끼리의 대화'가 저도 좀 오랫만이었기때문에, 끼어든다고 끼어든건데.

치니 2007-02-23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하연 / 웃겨요? 히히. 웃어주시니 감사할 따름. 톰 존스는 이제 삼분의 일 정도 남았어요, 곧 갑니다 ~
마하연님 말을 듣고보니, 그분이 그런 스타일인 거 같기도...@@ 피로도는 좀 높아보이지만요. 저는 뭐 상담을 자주 듣는 타입은 아니공, 어제 유난히 한가한 바람에 모처럼 대화랍시고 나눈거죠. 헷.

수단 / 음, 그 여직원은 정말 특이하네요. 왠만해선 그런 말 하는 사람을 최근 본 적이 없는데...진실이야 모르겠지만, 암튼 그런 표현을 서슴없이 한다는 자체도 특이해요. ㅋㅋ 빗나간 댓글이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울끼리 수다 떠는게 재미있기만 한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