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흐물흐물 퍼지기 시작하고,
출장은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마음만 바쁘지 손은 움직이기 구찮은 상태이고,
토요일부터 담이 결렸는지 등짝은 아파죽겠고...대략 애매한 화요일.

평소 회사 문앞에서 픽 하고 쓰러져보는게 꿈이라고 떠벌릴만큼 왠만한 스트레스나 피곤이 쌓여도 건강하다고 재고 다녔는데 허리와 등을 제대로 펴지 못하니 저절로 인상이 써지고 신경이 보통 쓰이는게 아니었다.
게다가 겉으로 봐도 아파 죽겠는거여야 무슨 유세를 떨어도 떨지,
이건 겉으로는 완전 멀쩡하니 그냥 공주병으로 치부될 억울함까지 보태진다.
그래도 진정 과로로 인한 아픔이라면야 유세를 떨었겠지만, 실은 이 증상이 토요일날 죽어라고 눠서 티비나 책만 보고 화장실 갈 때 빼고는 일어나지도 않은데 대한 벌이라고 내심 생각하는지라, 양심상 견디고 있었는데...

이를 지켜보던 우리 부서 대리님이 슬쩍 제안하시길,
본인이 지압을 어디서 잠깐 배웠는데 한번 해봐줄까나 하는 것이었다.
이 대리님으로 말하자면, 솔직히 그다지 친해지기가 어려운 상대이고 (라기보다는 내 입장에선 관리가 잘 안되는 타입, 상사로서의 역량 부족을 절절히 느꼈었다. ㅠㅠ) 입사 이래 여러가지 일로 좀 힘들었던 관계였는데 최근 들어서야 호전된 상태였다. 게다가 지압 받으려면 쭉 누워서 온 몸에 건드림을 당해야 하는데 성별도 남자공...

출장일까지 안 나으면 어쩌나 걱정이던 중이라,
일단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 점심시간 이후에 받아보마 하긴 했지만, 소심한 나는 지난 수개월, 그러니까 대리님이 우리 부서에 입사한 지난 가을부터 어렵사리 지내온 기억들과 그에 따른 불편함, 둘만이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지압 당시에 내게서 저절로 나오게 될 신음소리 등을 떠올리며 걱정이 앞섰다.
아무래도 신음소리와 더불어 여러가지 자세들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이, 거 참 왠지 난감한데, 이걸 부끄러워하자니 마치 내가 더 음흉한 꼴이 되는거 같아서 그럴수도 없공.

평소 좀 뻔뻔한 나인지라 사실 이 정도로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좋아라만 할 지도 모르는데, 대상이 마침 그 대리님이고보니 저절로 마음이 움츠러든 거다.
사람이 사람을 들인다는 것, 그것도 마음으로 진정 들인다는 게 업무 위주로만 돌아가는 회사에서 쉬운 일이야 절대 아닐테지만,
나로서는 참 코드가 안 맞아도 많이 안 맞는다는 생각과 업무적인 답답함 때문에 같은 부서가 된 사실이 후회스러울 정도였는데, 뚝딱 지압을 해준다고 나서니...

아무튼 결론적으로 지압사의 기술은 훌륭했고, 설명도 자상했고, 내 마음과 뭉친 근육은 봄 시냇물처럼 졸졸 풀렸다.
그동안 친구들에게 뒷담을 하고 왠지 밉상으로 본 적도 많았는데...흑, 반성이 된다.
이런 이런, 간사하고 용렬한 마음이여,
그러니 아무리 상대가 미운 짓을 해도 내 쪽에서 이쁘게 봐 줄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이쁘게 봐 줄 구석들이 다 있는게다.
앞으로도, 마음밭 좀 이쁘게 해두고 똘레랑스를 가져야지, 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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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7-02-27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등이 아프다가 아니고 등짝이 아프다고 하실때부터 키득거리면서 읽었는데, 끝에 가서 완전 뒤집어졌어요. 맞아요. 똘레랑스! 크크크.

2007-02-27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7-02-27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 / 아무튼 손바닥처럼 마음이 홱홱 뒤집히는 이넘의 간사함을 좀 다스려야겠어요. 헤헤.
속삭이신 님 / 저야말로요, 스스로 참 못났다 싶은데도 잘 안되더라구요. 이쁘게 봐주는게... 으흐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당.

chaire 2007-02-2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용렬한 건 마음이 아니라 몸인 거지요. 아니 정직한 게 몸인 건가요? 저도 킬킬거리며 웃었습니다. 신음을 내뱉으며 부르르 떠는(?) 과장님과 열심히 지압하시는 대리님의 풍경.. 근데, 지압이란 거 주는 이도 받는 이에게도 복이 되는 좋은 행위 같습니다. 하하. (저도 지압, 실력은 없지만, 해주는 거 받는 거 다 좋아하는 편이라)


superfrog 2007-02-2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카이레님은 오늘도 빈둥거리시는군요? 일은 언제 하실 거에욤?ㅋㅋ

rainy 2007-02-28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본명에 웃었던 것이 새삼 ㅋㅋ
지압을 받기 전 짧은 시간의 갈등이 넘 웃겨서
이 야심한 시각에 웃소 ㅋㅋ

치니 2007-02-28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haire / 정직한게 몸이다 , 맞는 말씀이네요. 신음소리를 마음껏 내지는 못하니까 숨을 참느라 아주 죽는 줄 알았다지요, ㅋㅋ 덕분에 오늘은 엄청 가뿐해졌어요!

Superfrog / 저는 종일 빈둥댈 시간도 없다가, 이제 짬이 나서 들왔어요, 흑.

rainy / 언니라면 아파 죽을 망정 나처럼 뻔뻔하게 그 앞에 누울 엄두도 못낼테지, 이럴 땐 뻔뻔한게 다행인건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