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유도 없이 마음이 불안하고 잠을 설치는 날들이 있다.
겨울이 멈칫 거리며 갈까 말까 태세를 갖추는,
성급한 사람들에게는 봄이라는 단어를 디밀어도 되겠다 싶은,
2월.
마무리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과 새롭게 다가올 것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서성대고 또 서성대게 만드는 어중간한 2월.
지리적/공간적 감각이라곤 제로에 가까운데도,
아침이면 매번 어설프게 동서남북을 따져보면서
침대 머리를 어디로 하고 잘까를 고민한다.
지난 밤 그토록 울렁이던 뱃속과 지끈하던 머릿속이 혹시나 그런 풍수지리와 관련이라도 되는게 아닐까 하는 또 다른 불안감을 더 얹으며.
칫솔질을 하는 손목은 시큰하고,
거울에 보이는 눈가는 퀭하다 못해 꺼지는 중.
나는 영락없는 ‘이터널선샤인’의 짐 캐리다.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었다가, <FTA 폭주를 멈춰라>를 읽고, <톰 존스>를 읽다가 <허니와 클로버>도 다시 뒤적이고 싶고.
읽는 책마다 나만 모르는 이야기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 같거나
내겐 도무지 없는 재주로 세상이 빛나는 것 같거나 하여
마음은 또 들쑥날쑥이고 신경은 삐죽삐죽이다.
낙낙하고 차분하게 무엇에 몰입하지 못하니, 조금만 틈이 나도 시빗거리를 찾는다.
갈수록 생활은 그저 묵묵한 밥벌이 정도가 아니라, 소리 없는 절규 속에 발버둥 치는 뭉크의 그림 같고
무기력한 공상이나 낭만은 겉치레로도 위안을 주지 못한다.
한마디로 사는게 고단하다는건데,
어디에고 이런 말을 한다는 것도 참 병신 같아 보여서 창피하기도하고 또한 너무나 부질이 없다.
뭐 결론은 늘 그렇듯이, 대안은 있을 테니 대안을 어서 찾자 라는거다.
이렇게 밖에 못사는 이유는 다른 어디에도 없고, 내 마음 속에 있는거겠지.
풀 한포기라도 감동적이면 고단한게 대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