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남편의 외가에 다녀왔다. 연휴를 맞아 외할머니를 뵈러 간 길이었는데, 마침 그 전 주에 결혼한 신혼부부가 돌아온 날이라 친척들이 많이 모였다. 가게도 편의점도 먼 한적한 마을, 남편의 어린시절부터 있던 시골집, 마당의 개들이 계속 컹컹 짖고 자동차들이 들어서니 옆집 아저씨가 외삼촌께 무슨 일인가 물었다. 웃는 얼굴로 어른은 답하셨다. "오늘 이 집에 사람 하나 들어와요." 외삼촌 내외는 몇해 전 아들을 군대에서 사고로 잃으셨다고 한다. 둘째를 결혼시키면서 마음이 어땠을까. 그 얘길 전하는 형님도 듣는 나도 눈시울을 붉혔다. 처음 보는 외사촌동서가 더 귀하게 여겨졌다. 사람 하나가 그렇게 귀하다.
지난 주말엔 오래간만에 언니네 집엘 갔다. 가까운 친구가 이번 사고로 아이를 잃었다고 한다. 아이가 수학여행 한번 가면서 아주 살림을 새로 장만하려 든다고 농담을 했던 친구를, 언니는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났다. 아이 아버지는 사고 당시 아들의 연락을 받았을 때 침착하게 어른들 하라는 대로 하고 있으라고 한 게 한으로 남았다. 아이 외할머니는 자식 잃은 딸을 위해 버티시는데 숟가락 드신 손이 덜덜 떨리더란다. 아이들의 친구들은 장례식장에 들어서서 친구 사진을 보자 마자 통곡을 하는데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언니도 무릎이 꺾였다고 한다. 어떤 아이가 울면서 엄마, 여기 내 친구 또 있어, 그러더란다. 언니가 친구 대신 학교엘 갔는데, 아이를 잃은 어떤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는 분식점에서 웃으며 나오는 교복 입은 아이들에게 뭐가 좋아 떠드냐고 소리를 지르더란다. 분식점 주인 아저씨는 멍한 얼굴로 그 아버지를 바라만 보더라고. 언니는 그 셋이 모두 이해 되어 울었다고 한다. 집에 와서 잠든 조카를 보고 또 울었단다. 보이는 게 달라졌다고, 이제 그 전과는 달라졌다고, 언니는 말하면서 울고 나는 들으면서 울었다.
한달에 한두 번 신문을 모아 버린다. 바닥에 4월 15일자 신문이 있었다. 거기 쓰인 글자들은 어쩌면 그렇게 한가로운가. 내 세상도 이렇게 달라졌는데, 가족들은 어떨 것인가. 나는 감히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수백명을 한꺼번에 잃었다고 해서 슬픔이 하나가 아니다. 잃어버린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 달려 있는 슬픔은 얼마나 복잡하고 깊은가. 그래서 결국 얼마나 거대하고 무거운가. 그래서 명복을 빈다는 말도 한 번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차마 입이 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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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최근 서재에 쓴 게 어머니와 아이의 대화였다. 떠나간 아이들과 보낸 부모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겁이 나서 서재를 열어볼 엄두가 안 났다. 안부 물어준 용감하고 너그러운 친구들에게 염치가 없다. 보잘것 없는 나지만, 읽고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 늘 하는 결심이지만 어딘가 다르다. 분명히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