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시작했다. 어린이가 우리집에 오면 차를 대접하고 한 주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그중엔 책 읽은 이야기도 있다. 그러다 책을 더 읽기도 하고, 내키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퍼즐을 맞추거나 게임을 한다. 집에 갈 때는 다음 주에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한다. 진지한 대화를 위해(?) 고객은 한번에 한 분씩만 상담. 요즘 고객과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H (7세, 남, 문맹)

"선생님, 나 백 더하기 만이 뭔지 알아요."

"뭔데?"

"정답은 백 만."

"아.. 선생님이 그 생각은 못했네. H는 똑똑하구나!"

"제가 원래 똑똑하진 않았는데 그거 먹고 똑똑해졌어요. 사.. 싸.. 사.."

"??"

"아 그거 뭐지. 등이 파래 가지고, 그거 먹어서 똑똑해졌는데."

"삼치?"

"딩동댕!"

 

*

 

쑥스럽지만 나는 책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떤 형태가 좋을지 몰라서 고민도 했고 지금도 완전히 정하지는 못했다. 어떤 분은 평론을 하고, 어떤 분은 가르치고, 어떤 분은 연구를 한다.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 그런 분야의 좋은 분들을 볼 때면 부러웠고, 한편으로 나는 그보다 가벼운 자리가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가벼운, 더 세속적인 자리가. 그게 어떤 자리일지 탐색하는 중이다. 다만 책읽기는 지극히 사적인 일이고, 좋아할 만한 책은 사람마다 다르며,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추천한 사람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다.

 

1년 안 되게 쉬면서 약간의 공부를 하고 자잘한 일을 했는데 그것을 기반으로 곡괭이질을 시작한다. 얼마가 되었든 소출을 볼 때까지는 까다로운 계산을 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겠다. 노트북에 나도 모르게 "최선을 다하자"라고 써붙이면서 이 촌스러운 말의 힘에 대해 생각했다. 흔한 표어 덕분에 조바심이 정리되는 것은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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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4-03-11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하트)

네꼬 2014-03-11 11:30   좋아요 0 | URL
아아 쩜쩜쩜이 더 좋은지 하트가 더 좋은지 갈등중. *_*

hnine 2014-03-11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길을 열어 가세요.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거라 믿습니다 ^^

네꼬 2014-03-11 11:53   좋아요 0 | URL
hnine님 고맙습니다. 새로운 길이라기보단 약간 샛길.. -_-;

꿈꾸는섬 2014-03-11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멋진 일을 시작하셨군요.^^ 잘 되어갈거에요.^^

네꼬 2014-03-11 11:54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고맙습니다. 잘 되면 멋진 일로 더 포장해볼게요!

아무개 2014-03-1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만년 만에 영어공부를 시작했는데 네꼬님의 페이퍼덕분에 왠지 제가 분발하게 되네요.
우리 촌스럽지만 최선을 다해보아요^^

네꼬 2014-03-11 11:54   좋아요 0 | URL
앗 아무개님, 저도 영어공부 할까 하고 책 주문했는데. (하겠다고는 하지 않음 ㅎㅎ) 그래요 우리 같이!

moonnight 2014-03-1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문맹인 7세 남아 H . 너무 귀여워요. >.< 그리고 부러워. 부러워. 나도 네꼬님의 책읽기 교실에 가고 싶어요. 땡깡땡깡. ㅠ_ㅠ
조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뭔가 더 좋은 방법이 있는 거 아닌가. 고민되기도 하는데, 네꼬님이 제 곁에 계시면 좋겠어요. 네꼬님과 함께 하는 아이들은 행운아들이에요. ^^

네꼬 2014-03-13 11:12   좋아요 0 | URL
문맹 7세는 여러가지로 저를 당혹스럽게 하지만 웃기고 재미있어요. 잘난척 받아주느라 등골이.. ㅎㅎ 사실 책 읽는 시간은 잠깐이고 놀고 얘기 들어주는 시간이 더 많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저 좋자고...? 음 저도 놀고 자기들도 노니까 저 좋고 고객 좋고군요. (어머님들... )

2014-03-11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13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4-03-11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근사해라. 제 눈에 하트가 총총히 뜨는 걸요. 네꼬님을 격하게 응원해요!

네꼬 2014-03-13 11:16   좋아요 0 | URL
총총히 하트 ㅎㅎㅎㅎ 마노아님의 격한 하트와 응원 힘껏 받겠습니다. 영차! (감사해요!!)

껑충 2014-03-19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배 보고싶단 말이지요 (이런 뜬금없는 댓글이라니)

네꼬 2014-03-20 09:55   좋아요 0 | URL
누구냐 넌! ㅎㅎ 아이 참 나 보고 싶다는 후배들이 한둘이어야지. 껄껄껄. 그러면서 임시 닉네임으로 짐작함. (늘 그리운 후배님들 ㅠㅠ)

paviana 2014-03-20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교실가면 차도 한잔(알코올이면 더 좋겠지만) 주시고,이야기도 하고
책도 한권 추천해주시나요? ㅎㅎ

네꼬 2014-03-23 23:49   좋아요 0 | URL
파비님은 오실 때마다 책 한 권씩 소개 받아야죠, 제가. ㅎㅎㅎ 알콜은 무한제공. 안주도. (오늘 음료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고객님? ㅎㅎ)

술빵이 2014-03-20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독서교실에 가려면 애를 낳아야 되는 것인가! 흑흑

네꼬 2014-03-24 01:10   좋아요 0 | URL
그러냐! (만나자!)

이순화 2014-03-2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7세, 문맹' 크하하하... 작년 주헌이의 상태이고만... 아... 같은 동네에 살면 좋으련만...
주헌이는 학교 입학하고도 도통 공부 비스무리한 건 안하려고 하네. 수학 문제집을 하루에 두 장만 제발 풀어달라고 애원해도 소신있게 안하고 있다. 결국 소리를 빽 지르며 "수학문제집 하라고오오.." 하면 한자쓰기 책을 꺼내 한일, 두이, 석삼을 쓰고 있지. 방에 가서 보면 당당하게 "엄마, 나, 대신에 한자 하고 있어요." 학교에서 매일 책읽기와 줄넘기 숙제를 주는데 줄넘기만 열심으로 한다. 잘하는 게 하나쯤은 있겠지 뭐... 파주 밥 먹으로 오삼...

네꼬 2014-04-15 11:39   좋아요 0 | URL
소신 있는 주헌이 ㅎㅎ 꿋꿋한 아이가 좋아요. 줏대가 있어야 학교 생활도 하고, 친구도 만들죠. 많이 컸다 그쵸? (^^) 선배 정말 밥 얻어먹으러 가야 되는뎅. 비싸고 기름진 거 사주세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