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모님은 구멍가게를 하셨다. 대모님은 '성당 엄마'라고 배웠기 때문에 나는 대모님도 "엄마"라고 불렀다(이상도 하지.) 아들 딸이 나보다 훨씬 컸던 대모님은 그런 나를 귀여워하시면서 가끔 가게도 맡기시고, 가게 잘 봤다고 사탕도 주시고 했다. 언니가 학교 가고 동네에 놀 사람이 없을 때 나는 가게 뒷방에서 배 깔고 누워 놀았다. 한번은 그 방에 갔더니 난생 처음 보는 과일이 있었다. 조금 못생겼는데 향은 끝내주게 좋았다.
"엄마, 이거 뭐야?"
"모과."
"이거, 이거 뭐냐고."
"모과."
"???"
이거 뭐냐니까 뭐가 뭐냐니? '모과'를 '뭐가'로 듣고 당황한 나를 보고 대모님은 빙긋 웃으셨다. 그러곤 내 눈을 똑바로 보시면서 "모, 과."라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해주셨다. 아직도 모과를 보면 이제는 연락이 끊긴 대모님의 다정한 눈빛이 생생히 떠오른다. (얼마나 웃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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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대구에서 올라온 아주버님, 형님, 조카 둘과 함께 강화도의 펜션에 놀러 갔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둘은 30년 가까이 묵혀 온 어색함을 조금 깼고, 나보다 어리고 나보다 예쁘고 나보다 날씬하고 나보다 상냥하고 나보다 어른스러운 형님(ㅜㅜ 게다가 경상도 사투리)과 나는 고기를 처음 먹는 사람들처럼 쉴 새 없이 먹고 또 먹었다. "숙모~" 하고 부를 때마다 애간장을 녹이는 일곱살 대구 소녀 S와, 이제는 제법 말이 통하지만 가끔 내 말을 못 알아듣고 "뭐라카노?" 하고 혼잣말을 하는 세살 경상도 남자 K는 기력이 다할 때까지 물놀이를 하고 잔디를 뛰고 불꽃놀이를 했다. 형님 말씀따나 "즐겁다, 맛있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주말이었다. 대구로 내려가면서 형님은 초대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세살 K가 차 출발하자 (역시 혼잣말로) "재밌었어." 하더란 얘길 전해주셨다. 하지만 압권은 일곱살 S의 질문. "숙모는 왜 자꾸 아빠한테 아주머니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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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의 아들 여덟살 H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긴 멋진 소년. 자기가 다 큰 줄 알고 아저씨처럼 구는데, 얼마 전 제 엄마가 "우리 H, 학교 가 있는 동안 보고 싶어서 혼났네." 했더니 어리둥절한 얼굴로 "누구한테 혼나?" 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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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은 바보 같다. 그래서 정말 좋다.
올랴가 병아리에게 양배추 잎을 뜯어 먹인다.
"병아리는 양배추 안 먹어."
엄마가 알려 주었다.
"갖고 있다가 나중에 토끼가 되면 먹으라고 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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