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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수커피 알라딘 블렌드 100g - 분쇄_핸드드립용
평점 :
절판
커피를 꺼내면서 또 한번 생각한다. 밀폐용기를 살까? 똑같은 순서로 또 생각한다. 아니야. 뭐 금방 다 마실 텐데. 오히려 용기에 옮기다 향이 다 날아가고 말지. 뜨거운 물로 조금 데워둔 머그컵에 플라스틱 드립퍼를 올리고 여과지를 접어 넣는다. 커피 봉지의 한쪽 귀퉁이를 조금 잘라내고 스푼도 없이 툭툭 커피를 덜어낸다. 오늘은 조금 피곤하니까 한번 더 툭. 이쯤이면 되겠지? 커피 봉지는 손에 힘을 주어 꼭꼭 접은 다음 집게로 잠가둔다. 그리고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뜸을 좀 들이고 천천히 구석구석 물을 부어야 한다는데(심지어 시계방향으로 혹은 반대방향으로) 어떻게 그럴 수가. 커피가 머그잔만 한 화산처럼 포르르 부풀어오르는 게 좋아서, 오히려 조금 서두르다시피 한다. 나의 조그만 1인용 드립퍼가 넘칠락 말락 할 때 쯤 멈추면 적당하다. (그나마 이 '적당'의 기준도 매일 아침 달라진다.) 드립퍼에서 물이 완전히 빠지기 직전에 오늘 아침 내 커피는 완성된다. 여기는 회사 탕비실. 차를 타러 들어온 선배가 향기 좋다며 무슨 커피냐고 묻는다. 어제 늦게 배달됐어요. 지금 막 뜯었어요. 선배도 한 잔 내려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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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다행히도 커피 맛을 잘 모른다. (응?) 그래서 대부분의 커피를 맛있게 마실 수 있다. 그중 이 '알라딘 블렌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콜롬비아 뭐니, 케냐 뭐니 하는 이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무엇보다 도대체 전광수 아저씨는 어떤 마음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커피를 블렌딩했을까 상상해보는 게 즐거워서다. 그리고 내겐 향도 썩 좋다. 게다가 100g 단위로 판매하기 때문에 향이 날아가기 전에 어지간히 다 마실 수도 있다. 집에서는 나름대로 하얀 도자기 드립퍼와 주둥이가 날씬한 빨간 주전자를 쓰고, 무려 손으로 커피콩을 득득 갈아서 마시지만 회사에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 대부분의 아침은 이 핸드드립 분쇄 커피와 함께 시작한다. 깨질 염려 없고 값도 싼 플라스틱 드립퍼와 여과지만 있으면 된다. 시월의 한복판, 오늘 아침에 '이거 조금 추운데'라고 생각했던 분들께, 이런 아침 커피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