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 참 유치한 줄은 알지만 이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으므로 그냥 해보겠다. 멋있는 남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네꼬씨 개인적으로 단 한 번도 안 끌려본 적이 없는 타입을 말하자면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이다. 꼭 되게 웃겨서가 아니라 내가 재밌는 말을 했을 때 그게 왜 얼마나 어떻게 재미있는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나의 동거녀는 똑똑하지 않은 남자에게는 안 끌린다고 했다. 내 친구는 약간 느끼한 것 같은 남미의 남자들을 좋아한다. 운동선수라면 사족을 못 쓰는 친구도 있고, 누가 뭐래도 크고 비싼 선물을 주는 남자에게 넘어가는 친구도 있다. 운전을 잘하는 남자에게 정신을 놓는 친구도 있고, 옷 잘 입는 남자에게서 눈을 못 떼는 친구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여인들이 따로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동의하고 있는 유형이 있으니 그건 바로 노래를 잘 하는 남자다. 남자는 진심이 담긴 노래를 부르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이 큐트한 남자는 영국에 사시는 개러스 멀론씨(34), 런던 심포니 시민 합창단의 지휘자다. 그는 어렸을 때는 곧잘 노래를 부르던 남자아이들이 커가면서 노래부르기를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고 이걸 바로잡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소년합창단을 꾸리기로 계획하고 찾은 랭커스터 중등학교는 학생수가 1200명에 이르는데(1200명의 남자 청소년들이라니!) 심지어 스포츠명문이기까지 하다. 합창단에 들어오라는 권유에 아이들은 "애들 앞에서 노래하면 집에 가는 길에 공격당해요"라고 대꾸한다. "남자가 노래를 부른다니, 그건 게이들이나 하는 거예요" "노래라뇨? 이런 거요? (이어서 비트박스와 랩 시범)" 그래도 개러스는 꿋꿋하게 음악시간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무작정 운동장을 누비며 아이들을 하나씩 만나 합창단에 들게 하고 무서운 (우리식으로는 학생주임 정도 되는) 선생님을 조르고 졸라 조회 시간에 전교생이 노래를 부르게 하며 급기야 로열 앨버트 홀(전 모르지만 아마 되게 큰 극장인가봐요)에 아이들을 세울 계획까지 세운다. 바로 내 사랑 EBS의 다큐 10+ 에서 방송하는 <개러스 선생님의 합창단 프로젝트-소년이여, 노래하라!>(5월 5일 ~ 26일 (화) 밤 11시 10분 ~ 12시)이야기다. 이 4부작 다큐멘터리는 지난 4월 British Academy Television Award 2009에서 Best Feature 상을 받았다. 원제는 <The Choir- Boys don't sing>. 2007년 같은 부문 상을 받은 <The Choir>의 두번째 이야기 되겠다.(이것도 내 사랑 EBS에서 방송한 적 있는데 나는 그때 개러스씨를 처음 알았다.)
지난 화요일 첫방송에서는 음악시간에 엉망으로 잡담하고 도무지 노래할 생각이 없는 아이들과 "경험이 많은 선생님이라면 포기했겠죠." 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개러스의 대립, 뛰어난 재능을 보고 개인 교습을 해주려 하지만 도무지 말을 들어먹지 않는 임란의 등장(아래 동영상에서 중간 솔로를 맡은 소년), 체육 선생님에게 노래하랬더니 '당신이 먼저 나랑 운동을 하면'이라 대꾸하는 웃기고 무서운 장면, 조회 시간에 혼자 꿋꿋하게 노래를 부르는 개러스의 고군분투 등이 방송됐다. 첫방송을 놓치신 알라딘 친구 여러분들께, 이번 화요일부터는 같이 보자고 알려드린다. "past"를 '파스트'라고, "can't"를 "컨트"라고 발음하는 초절정 매력남 개러스 멀론과 다큐멘터리 전반에 흐르는 아름다운 클래식 연주만으로도 분명 만족하실 거다. 혹시 내 말을 안 믿으실까봐 이 둔한 고양이발로 동영상까지 찾았다.(아이고 허리야) 바로 그 "로열 앨버트홀"의 공연 장면. (자 빨리 스피커 켜세요. 이어폰 꽂으세요. 모니터 앞으로 바짝 오세요. 더 바짝.)
다른 동영상을 보니, 공연을 끝낸 아이들은 벅찬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무대 뒤에서 소리지르고 손뼉을 마주치고 선생님께 감사의 환호를 보내고 가족들과 포옹한다. "Stand by me"의 시작부분 솔로를 맡았던 소년은 "왜 우는지도 모르고" 운다. 나는 이유를 알고 있다. 그래서 말해주고 싶었다. 얘, 너는 이제야 진짜로 남자가 되어가고 있는 거야.
*붙임.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하나 더 보시라고. 이건 연습공연쯤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