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즐거울 일도 없이 봄이 왔는데 집 앞의 목련까지 필까 봐 조마조마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도끼가 썩어있었던 건 아니고 그 목련은 이미 져버렸다. 내 눈치를 슬슬 보며 나무들에 물이 오른다. 봄이구나. 그래도 울지 말라고, 이번 봄이 나에게 좋은 기운을 보내준다. 좋은 기분, 좋은 감각을 깨워주는 그런 기운을.

[분노의 질주: 더 오리지널] 1) 주인공은 악당이 주시하지 않는 창문을 깨고 공격한다. 2) 레이스 끝에는 길이 아닌 길로 과감하게 턴. 3) 자동차 경주가 벌어지는 곳에는 요란한 음악이 쿵쾅거린다 4) 그런 곳에는 늘 늘씬한 언니들이 잔뜩 모여 춤을 추고 있다.(미니스커트에 부츠차림) 4) 정체를 밝히지 않는 악당이 실은 뜻밖의 인물이다. 5) 주인공은 과묵하고 정의롭다. 6) 주인공은 여자친구 또는 여동생을 위해 아픔을 참는다. 7) 악당 수하의 늘씬한 여자가 주인공에게 첫눈에 반해 그를 도우려 한다 등등 다양하고도 친근한 클리셰로 이루어진 이 영화를 고른 건 바로 나였다. 다행히 나의 친구는 근육질 남자와 그의 젠틀한 친구를 삼킬 듯이 바라보느라(실제로 입도 조금 벌렸음) 나를 원망하지 않았고,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삼겹살에 소주, 쥐포에 맥주를 먹고 마시며 만족스러운 수다를 나누었으므로 이 영화는 결과적으로 좋은 영화였다.(응?)

[상상마당 리얼 주크박스: 김창완밴드 공연 4월 5일 / 5월 5일] 공연이 시작되자 김창완 아저씨는 기타를 연주하면서 앞 줄에 선 관객들의 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나이가 들었어도, 아니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록스타에게는 진정 '후광'이란 게 있더라. 나야말로 나이를 잊고 두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줄넘기 500회 분량으로 뛰었다. 이게 얼마만이냐! 마지막 곡은 [개구장이]. 한때 나는 초등부 주일학교에 다니면서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던 (화끈화끈) 어린이였다. (이 멋진 사진은 여기서 얻어 왔다. http://poohoot.co.kr/tt/334)

[Speaking With Hands : 헨리 뷸의 컬렉션. 대림미술관 5월 24일까지] 저 아름다운 사진 제목은 [골무 낀 손]이고, 저 손은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손이며 그의 남편인 (무려) 스티글리츠가 찍었다. '손'을 주제로 한 사진과 조각품을 열심히 모은 헨리 뷸 씨의 다양한 컬렉션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지금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데레사 수녀의 손, 권투선수의 손, 편지를 쓰는 손, 장난치는 손, 손을 흉내낸 손(이건 정말 웃겼어요. 스포일러라 밝힐 수 없지만, 혹시 전시장에 가신다면 제가 뭘 보고 '정말 웃겼어요'라고 했는지 금방 맞히실 수 있을 거예요, 하하) 등 꽤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나처럼 사진에 문외한인 사람이 가서 보아도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다. 광화문에서 대림미술관까지의 가벼운 산책과 대림미술관 건물 자체의 단정한 아름다움이 주는 즐거움은 덤. 작은 뒷뜰에서 참새소리도 실컷 들을 수 있다. 어린이도 같이 가서 보면 좋겠지만 다른 관람객을 위해 10세 미만 어린이 여러분께는 자제를 부탁(억울하면 너희도 나이 먹으렴).
사실 오늘 하려던 얘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만화책에 대한 것이다. 출퇴근 가정부로 일하는 고양이 '네코무라' 씨. 고양이가 자기를 그린다면 어떨까? 고양이가 사람과 말이 통한다면 어떻게 말할까? 고양이가 설거지를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면 그 가사는 어떨까? 고양이와 함께 드라마를 보면 어떨까? 고양이가 만든 '네코무라이스'의 주재료는 뭘까? 고양이가 엉엉 운다면 입모양은 어떻게 될까? 그런 것들을 알려준다. 지금까지 네꼬 씨를 미워했던 분이 이 책을 읽으신다면 아마 이제부터 절대 그럴 수 없을 거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소개해준 사람을 미워할 수는 없으니까. 지금까지 네꼬 씨를 아주 쪼끔이라도 좋아했던 분이 이 책을 읽는다면 앞으로는 나를 미워하게 될 거다. 도대체 언제 나올지 모를 2권(이 만화는 하루에 한 컷씩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단다) 때문에 몸부림을 칠 테니까. 그래도 할 수 없다. 나는 어디까지나 착한 마음으로 이 책을 나의 이웃들에게 (강)권한다. 나중에 품절 됐다고 울어 봐야 소용 없다. 일단 한번 잡숴봐는 아니고 일단 한번 읽어봐(주세요, 네?) 봄을 맞이하여 그동안 스스로도 잘 몰랐던 '어떤 감각'을 깨워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