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 사람은,
4시 20분 영화를 예매해놓고, 나름대로 시간을 계산해서 점심 약속을 마무리했는데, 일행 중 '아파서 휴가 낸 누군가' 가 시내에 갈 일이 있단 말에, 당사자는 더 불편할지 모르나 자기 마음 편하자고 부득부득 데려다 준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시내 길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밀리고, 그 누군가 씨는 자기가 더 불안해서 "어떡하니 친구야, 어떡해." 걱정하고, "아냐, 괜찮아! 시간 넉넉해. 그리고 좀 늦어도 돼! 같이보는 친구는 이해해줄 거고, 그 영화는 별로 사람 없어서 늦게 들어가도 되는 종류야. 그리고 별로 늦지도 않을 거고. 하하하하하하! 괜찮아 괜찮아!"를 외치다가 드디어 누군가 씨가 내리자,
바로 영화 친구에게 전화해 "아니 그러니까 내가 을지로 1가에 갇혔는데 여기서 광화문을 어떻게 돌아가냐고. 유턴 해? 야, 여기 중앙차로 버스 전용이야. 어떡해? 응? 아 몰라. 나 늦으면 매표소에 표 맡기고 먼저 보고 있어. 그나저나 미안해. 이렇게 밀릴 줄 정말로 몰랐어." 한바탕 생난리를 치른 후, 유턴이 안 되니 우회전 우회전 우회전 전략을 쓰기로 하고 퇴계로 진입. 문득 먼 옛날 아빠가 "서울 시내에서 제일 밀리는 길이 바로 퇴계로란다" 라고 다정히 알려주셨던 기억이 그제야.....
초긴장 상태로 과연 이 길이 맞는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그리고 헤매지 않고) 무사히 방향을 잡았는데 영화 친구의 문자가 도착. "매표소에 표 맡겼어. 그런데 시작하고 15분 후엔 못 들어온대. 달려!" 시계를 보니 25분. 즉, 10분 내 도착해야 한단 얘기.
영화관이 있는 건물 주차장에 들어서려니 운전 경력 10개월 만에 최고로 깊고, 거대한 라면처럼 꼬불꼬불한 지하주차장. 땀이 또 쏙 났지만 나름 완주한 것을 스스로 기뻐할 사이도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니 31분. 지하 2층 버튼을 눌렀(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냥 2층에 가는 거냐. 땀 흘리며 다시 지하 2층 안착. 33분. 매표소로 달려가보니, 예쁘게 생긴 언니가 분홍색 휴대폰을 들고 (남자친구로 짐작되는) 누군가와 소리높여 다투시는 중. (유리문을 두드리며) "저기요! 저기요!" (유리문 밖은 내다보지도 않은 예쁜 언니는) "아 몰라, 오빠 땜에 짜증나!" (유리문을 더 애절하게 두드리며) "저기요!! 저기, 언니! 언니!" 라고 외치자, 언니, 할 수 없이 전화를 끊고 이름만 확인한 다음, 현재 시각 따위는 보지도 않고 표를 내줘서,
다행+허탈한 마음으로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 찾아갈 자리를 확인한 다음, 문 연 상황을 시뮬레이션 해서 최대한 남들의 피해를 줄이려고 머리를 쓰고 문을 살짝 열었더니, 조그만 극장에 꽉 찬 사람들이 일제히 이쪽을 노려보(는 것만 같)고, 시뮬레이션의 그 자리에는 어떤 여인이 당당히 앉아 있어 울고 싶은 심정으로 쭈그리고 앉아 (나중에 알고 보니 역시 지각생인 그분이 급히 앉아버리셨던 것) 겨우겨우 제자리를 찾느라 눈물나게 고생 중인,
그런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이쯤에서 맨 윗줄을 다시 보셔야..)
앞으로는, 영화를 볼 때 지각해서 헤매는 누군가를 째려보면 안 되겠다, 하고,
<<스틸 라이프>>를 보는 간간이 결심하였다.
꽃양배추님 페이퍼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보고 싶었던 스틸 라이프.
알라디너들의 지지도도 높은 편이고, 무엇보다 이동진 기자가 "이영화는 완벽하다"며 별 다섯을 주었다는 풍문에 혹해 도전하였으나, 조는 중간중간에 앞으로는 누굴 째려보지 말아야겠단 결심을 했던 걸 생각하면, 네꼬 씨가 이해하긴 너무 어려웠던 모양이다.
고백하건대, 네꼬 씨는 거기에 "앞으로 이동진 기자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리" 결심을 더하였고, 함께 본 영화 친구 씨는 "마지막 장면은 내 영화 인생 최고의 장면이라고 했다는 정성일의 정체는 거짓말쟁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얘기. 난 역시 <<오션스 13>> <<트랜스포머>> <<다이하드 4.0>> 체질의 고양이. 친구 고양이들도 그렇고!
*꽃양배추님께는 먼댓글로 항의하는 것으로 복수. (과연 꽃대인께 이런 경박한 페이퍼가 복수가 되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