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지 마세요, 이선생님. 네? 이러지 마세요. 이러지 마세요. 네? 무섭게 왜 이래요?”
전화로 이별을 고하는 민용에게 민정이는 울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러지 마세요. 무서워요. 이러지 마세요. ‘민용이는 왜 이유를 말하지 않는 거야, 말도 안돼!’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TV 속의 민정이처럼 울고 있었다. 나도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으니까. 이러지 말아요, 무섭게 왜 이래요.
끝내 민정이는 민용이를 신지에게 보내주었다. 이들의 행보를 두고 말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어쩐지 모두가 이해가 간다.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 전 부부, 애인의 관계로 얽힌 그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스스로도 상처를 받지 않는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다만 민정이가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 이별을 '선택'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민정이와 민용이가 마지막으로 포옹하는 장면에서는 음악이 잦아들었고 누군가의 흐느낌이 들렸다. 어쩌면 둘 다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까칠한 남자 민용이도 민정이의 어깨를 적실 정도로 눈물을 쏟으며 아파했지만, 민정이만큼은 아닐 것이다. 민용이의 뒷모습을 애타게 쫓으며 문이 닫힐 때까지 엉엉 울고 서 있던 민정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건 그녀도 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은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같이 울어줄 사람뿐이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그 에피소드가 끝나고도 나는 오래 울었다.
그날, 나는 집까지 200미터를 걷는 것도 힘들었는데. 인천공항에서 수원까지 그녀는 어떻게 하나. 잘 들어갔을까. 다음날 아침까지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어젯저녁, 그들이 떠났다.
그들이 살았던 흑석동은 내가 태어나 자란 동네이고, 그들의 촬영지는 지금 내가 사는 동네였다. 내가 이러지 말아요, 무서워요라고 말했을 때도 그들은 우리 집 앞에서 한 장면을 찍고 있었다. 극의 안팎에서 그들은 정말로 내 곁에 있었다.
김병욱 감독이 만들어낸 그들의 세계는 하나의 완성된 행성이었다. 첫 회에서 어른이 된 준이가 우주비행을 하면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 나를 웃기고 울리며 내 곁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젯저녁 떠났다. 언젠가 떠날 것을 알고 맺은 인연이지만 정말로 그들이 떠나고 나니 말할 수 없이 허전하다. 사이좋게 살던 동네 사람들이 이젠 때가 되었다면서, 나만 남겨두고 일제히 자신들의 별로 돌아간 것만 같다.
당신들을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고마웠어요.
안녕, 거침없이 하이킥.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