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지 마세요, 이선생님. 네? 이러지 마세요. 이러지 마세요. 네? 무섭게 왜 이래요?”

전화로 이별을 고하는 민용에게 민정이는 울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러지 마세요. 무서워요. 이러지 마세요. ‘민용이는 왜 이유를 말하지 않는 거야, 말도 안돼!’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TV 속의 민정이처럼 울고 있었다. 나도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으니까. 이러지 말아요, 무섭게 왜 이래요.


끝내 민정이는 민용이를 신지에게 보내주었다. 이들의 행보를 두고 말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어쩐지 모두가 이해가 간다.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 전 부부, 애인의 관계로 얽힌 그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스스로도 상처를 받지 않는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다만 민정이가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 이별을 '선택'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민정이와 민용이가 마지막으로 포옹하는 장면에서는 음악이 잦아들었고 누군가의 흐느낌이 들렸다. 어쩌면 둘 다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까칠한 남자 민용이도 민정이의 어깨를 적실 정도로 눈물을 쏟으며 아파했지만, 민정이만큼은 아닐 것이다. 민용이의 뒷모습을 애타게 쫓으며 문이 닫힐 때까지 엉엉 울고 서 있던 민정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건 그녀도 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은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같이 울어줄 사람뿐이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그 에피소드가 끝나고도 나는 오래 울었다.


그날, 나는 집까지 200미터를 걷는 것도 힘들었는데. 인천공항에서 수원까지 그녀는 어떻게 하나. 잘 들어갔을까. 다음날 아침까지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젯저녁, 그들이 떠났다.

그들이 살았던 흑석동은 내가 태어나 자란 동네이고, 그들의 촬영지는 지금 내가 사는 동네였다. 내가 이러지 말아요, 무서워요라고 말했을 때도 그들은 우리 집 앞에서 한 장면을 찍고 있었다. 극의 안팎에서 그들은 정말로 내 곁에 있었다.

김병욱 감독이 만들어낸 그들의 세계는 하나의 완성된 행성이었다. 첫 회에서 어른이 된 준이가 우주비행을 하면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 나를 웃기고 울리며 내 곁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젯저녁 떠났다. 언젠가 떠날 것을 알고 맺은 인연이지만 정말로 그들이 떠나고 나니 말할 수 없이 허전하다. 사이좋게 살던 동네 사람들이 이젠 때가 되었다면서, 나만 남겨두고 일제히 자신들의 별로 돌아간 것만 같다.

 




 

당신들을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고마웠어요.

안녕, 거침없이 하이킥.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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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14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가끔 봤지만 정말 재밌었어요. 모든 캐릭터들이 각기 살아 움직이는 느낌.

네꼬 2007-07-15 01:20   좋아요 0 | URL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그들이 뭘 해도 그럴 만하다고 느꼈지요. 때로 갸우뚱하더라도, 어차피 실제 생활 속에서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완벽히 이해하긴 어려우니까요. :)

마노아 2007-07-14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어요. 전 병원 가서 생쇼하느라고 마지막 이틀 치는 못 봤어요. 그밖에도 한 두달 밀려있지만 차차 다 보려구요. 참 좋았던 그들과 이제 이별을 해야겠네요. 모든 새로움의 시작은 다른 것의 끝에서 시작되니까... 그렇게 위안을 가지려구요^^

네꼬 2007-07-15 01:21   좋아요 0 | URL
디비디를 살까도 생각해보았고, 다시보기로 볼까도 했어요. 하지만 그런 건 이미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그들이 저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이미 마무리 되었으니까요. 좋은 이웃을 두었다는 걸 추억으로 남겨야겠죠. 슬퍼요. 흑.

비로그인 2007-07-14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거 매니아였다가 나중엔 안봤어요. 민정이 민용이 스토리 너무 꼬여서 그때부터 보기 싫더라구... 내가 이 두 사람 얼마나 지지했는데. 그리고 신지한테 돌아간다는 설정이야 말로 난 억지인거 같아. 애 때문에 재결합하는 거잖아, 결국. 민정이를 그렇게 사랑했다는 걸 신지가 아는데 둘이 재결합해서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비관주의자 체셔)
한국사회에서 이혼과 가정에 대한 결론은 고작 그렇게 밖에 못내리냐구요 쳇!
어흥-

근데 왜 그리 바쁜거요 교구장님, 노라조~ :)

네꼬 2007-07-15 01:26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아이 때문인가 하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래요. 민용의 마음은 '물리적으로' 신지에게 70%, 민정이에게 30%인 것 같아요. 민정이를 향한 마음이 무게로는 30%이지만 순도로는 100% 이상이었겠지요. 신지를 향한 70%에는 준이도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옛정, 남은 미련, 앞날의 언젠가에 민정에게 줄 상처를 포함한 복잡한 것들도 포함되겠지요. 다들 애썼는데 어차피 정답은 없는 거고, 그들의 선택으로 인정해주는 게 좋겠어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제일 친한 친구의 것이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으니..

나 바빠도 교주님 접견할 시간은 언제나 비어 있다는 거. 알죠?

프레이야 2007-07-14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교구장 네꼬님의 아픈 사연을 떠올렸던 드라마였군요.ㅜㅜ
저도 하이킥, 무지 재미나게 봤어요. 후반에 가서요..
실실 웃으며 탁 건드리는 손끝이 어찌 매운지, 웃다가 울리고 울리다가 웃기고..

네꼬 2007-07-15 01:27   좋아요 0 | URL
'우리의 교구장' 이라니, 혜경님 역시 교도이셨군요!!! (^^)

저는 끈기가 없어서 뭘 진득하게 보지 못하는데, 하이킥은 좀 남달랐어요. 그런 한 세계를 엿본 걸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언제나, 이웃 복이 많아요. 정말 그래요. : )

프레이야 2007-07-15 21:37   좋아요 0 | URL
네꼬님, 모르셨어요? ^^
혜경은 무한체셔교 지정 경전이라구요. 호호호~~~

네꼬 2007-07-16 16:23   좋아요 0 | URL
하핫. 모를 리가요. "경전은 혜경"이 유난히 좋다고 댓들도 달았는걸요!!

Mephistopheles 2007-07-15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내 시트콤의 한 획을 그었다고 밖에는..걸출한 스타들도 많이 탄생했지만..
틀을 벗어난 매회 에피소드가 가장 매력적이였습니다..^^

네꼬 2007-07-15 09:15   좋아요 0 | URL
속으로만 생각해봄직한 일들을 눈앞에 보이게 그려준 것도 미덕이었죠. 그런데 틀을 벗어난 매회의 에피소드라는 건, 마당쇠백서의 미덕이기도... ^^

다락방 2007-07-15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할수 있는 드라마라는 것에 점수를 높이 주고 싶어요.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완벽하질 못하죠. 어딘가 부족하고, 어딘가 서투른 인물들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나와 비슷한 상황이 아니어도 어쩐지 충분히 이해된달까요. 그런면에서 민정이의 선택에도, 민용이의 돌아섬도 충분히 납득할수 있었달까요. 주인공들이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저는 아마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네꼬님 말씀처럼 누구도 상처를 받지 않을수는 없었을거예요.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가 시트콤으로 찾아오다니, 참 반갑기만 합니다. 그러나 이 방송사의 시트콤은 사실 언제나 저를 유혹하곤 했어요. 논스톱 때도 저는 무척 열혈팬이었거든요. 좋은 시트콤이라면, 얼마든지 만날 준비가 되어있어요.

좋은친구는 물론이고!
:)

네꼬 2007-07-16 16:29   좋아요 0 | URL
시트콤의 캐릭터라는 점을 떠나서도 전 어쩐지 개인적으로 자꾸 감정이입이 되었어요. 이상한 일이죠. 그들이 떠난 다음날, 그 다음날, 아니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마음이 그렇게 헛헛할 수가 없었답니다. 이상해요.

좋은 친구, 다락님.
이웃을 통째로 떠나보낸 외로운 친구를,
위로해주실 거죠?

에디 2007-07-16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왠지 모르게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전 한국 드라마나 시트콤에서 흔히 말하는 '사람들과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 이 싫은게 아닐까...하는데;

근데 네꼬님 페이퍼를 보니 한번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자기 집 앞에서 자주 촬영하던 시트콤을 보는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요 : )


네꼬 2007-07-16 16:34   좋아요 0 | URL
저도 '세대의 공감'이란 말은 부담스러워요. (그게 가능한 일이냐 이거죠!) 하지만 인물에 공감을 하는 건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시트콤이 바로 그걸 보여주었지요.

그들이 버스와 사람을 기다리던 버스 정류장, 그들이 약수를 뜨던 공원, 그들이 손 잡고 걷던 길이, 제가..... 어떤 기분인지..... 말로 다 못하지요. 다만 출근하면서도 그 길을 지나며 생각에 잠기곤 한다는..
:)


비로그인 2007-07-16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끝났군요.
저는 마지막회는 보려했는데,결국 님의 글로 대신하네요.
더 행복한 뭔가가 기다리고 있을테니 기대하세요.

네꼬 2007-07-16 18:02   좋아요 0 | URL
언젠가 새로운 이웃을 만나게 되겠지요. 당분간은 그들의 여운을 느낄까 합니다. 흙. 너무너무 허전해요. (하지만 제겐 진정한 이웃 민서님이 계시니....♡)

nada 2007-07-16 21:33   좋아요 0 | URL
이런 대량생산 하트! (화르르르)
헤어져, 우리!

마늘빵 2007-07-16 21:55   좋아요 0 | URL
두 분 사귀셨습니까? ㅋㅋㅋ

네꼬 2007-07-16 23:46   좋아요 0 | URL
꽃대인님, 흐흐 이미 제 마수에 걸리셨으니 마음대로 벗어날 수 없어요. 구속해버릴 거야!! (폭력적인 목소리로 으르렁~)

아프님, 제가 원래 지조는 없는 대신 순도는 100%인 거 아시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