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동거녀와 함께 하루 여행을 다녀왔다. 권정생 선생님 사시던 댁에 아직 분향소가 있다 하여 생전에 한번 못 드린 인사를 드린다는 핑계로 주말 날씨를 만끽하기로 한 것이다. 주초부터의 계획이기도 했다.
선생님이 계시던 시골 마을은 아주 한적한 곳이어서 차를 가지고 들어가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그곳엔 유명한 조탑동 오층전탑이 있지만 신통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조탑동 오층전답. 통일 신라 때 것이라고 하는데 뭘 모르는 내가 봐도 조형미가 좋다.
선생님 댁은 소문대로 정말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이었다. (나는 이런 말이 수사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다.) 갔더니 동화작가 박기범 씨가 몇몇 분들과 함께 선생님 유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박기범 씨는 사진으로만 봤었는데 실물이 더 좋다. 생각보다 키가 크다. (이 와중에 이런 게 보이는 나.) 선생님 영정에 인사를 드리고, 선생님 뼛가루가 뿌려진 뒷산에 잠시 올랐다 내려왔다. 선생님 댁과 동네는 카메라를 들이대기 무안한 조용한 촌이었다. 영결식 때 왔던 동거녀 말에 의하면 이 조용한 동네에 선생님 문상객들의 자동차가 몇 백 미터 씩 줄을 서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놀라셨다고 한다. 나는 차마 어디를 찍지 못하고 동네에 피어 있는 작약만 찍었다.
음. 그런데.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권정생 선생님이 사시던 동네는
안동이다.
안동.
이번 여행의 쾌거는 왕복 600여 Km에 이르는 길을 경부-영동-중앙 고속도로를 갈아타가며 무사히 완주해낸 나의 체력과 집중력을 확인했다는 것. (그중엔 무려 12Km에 이르는 비포장 도로도 포함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자 하나가 내 얼굴만한 "안동 간고등어" 간판이 즐비한 고등어의 고장 안동에서 살아돌아왔다는 것.
이동삼 옹께는 죄송하지만, 차마 가까이 가진 못하고 멀리서 노려보기만 했다, 제일 작은 고등어 간판.
(경직되어 어색한 네꼬의 뒷모습)
나는 고등어의 고장에서 살아돌아온 네꼬.
나는 예전의 고양이가 아니다! 음화화화화화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