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5가지 원리 - 참된 믿음을 추구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외침
제이슨 앨런 외 지음,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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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젊은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당시 로마 카톨릭의 기세는 대단했다. 죽음 이후의 세계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조작된 교리로 민중을 현혹했다. 면죄부의 발행은 성당 건축을 위한 재정 마련을 위한 고육책이기도 했지만, 드려지는 헌금 액수에 따라 지옥에 갈 사람도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천국행 면죄부를 사두라고 곳곳을 다니면서 판매했던 행위는 종교의 민낯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마리아를 위시로 한 성인들의 공로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얼마든지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으로 갈 수 있으니 그 공로를 사두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일반 민중들은 전혀 의심치 않고 자기 주머니를 털어 면죄부를 사 두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면죄부'에 목을 매었을까? 16세기 유럽에는 지독한 전염병 유행으로 사람들 대부분이 죽음을 두려워했다. 가족들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했어야 했다. 막 태어난 어린 아기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안타까운 가족의 죽음 앞에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든 '면죄부'를 사서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로마 카톨릭은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히 파악하여 돈장사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마르틴 루터 또한 로마 카톨릭의 수도사로서 이런 일을 모를리가 없었을 것이다. 잘못된 교리로 우둔한 사람들을 현혹하는 로마 카톨릭의 행태를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었다. 선택은 딱 하나다. 까발리는거다. 면죄부의 거짓됨을 공개하는 것이다. 무명에 불과한 젊은 수도사의 의분에 넘친 성명서(비텐베르크 성당 벽면에 부착한 95개조 반박문)는 나비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루터는 목숨을 건 항명을 한 셈이다.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협박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잘못된 것을 굽히지 않았다. 거대한 성벽에 계란을 던지는 격이었지만 루터는 성서에 입각하여 바로 잡는 일에 소신을 꺽지 않았다.

 

종교개혁가들이 주창한 것은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었다. 사람의 행위와 공로로 하나님께 갈 수있는 것이 아니다. 죄인에 불과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므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깨닫은 사실이다. 이전의 삶에서 돌이켜 새로운 삶으로 시작하기로 결단한 젊은 수도사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유럽은 바뀌기 시작했다. 로마 카톨릭의 억눌림 속에서 해방된 사람들의 삶은 풍요해지기 시작했다. 경제활동도 왕성해 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인 국가(네덜란드)는 신흥 강국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에릭 리델 올림픽 육상 금메달 리스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 대표적인 사람이다. 금메달 수상 후 얼마든지 부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국 선교사로 헌신한다. 일본의 침략으로 중국이 포위되었을 때 그는 산둥 수용소에 갇힌다. 그곳에서 변함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 수용소에 갇힌 이들을 돌보는 이에 앞장 선다. 질서와 윤리가 깨진 수용소 집단 생활 가운데에서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갔다.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살다가 뇌종양으로 숨진다. 어떠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은 채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히 드린 삶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말이다.

 

오늘도 종교개혁가들의 정신인 '오직' 성경, 믿음, 그리스도, 은혜, 하나님의 영광은 변함없는 성경적 진리다. 그리스도인들이 끝까지 간직하고 지켜나가야 할 고귀한 가치다. 세상이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나설 때다. 종교개혁가의 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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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사계절 (미니북)
폴 투르니에 지음, 박명준 옮김 / 아바서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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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관점이 돋보인다. 폴 투르니에는 스위스 의사다.  상처난 부위에 매스를 대듯 날카롭게 사람의 존재성에 대해 의미를 재조명한다. 그렇다고 상처난 부위를 휘벼파는 치료적 언어가 아닌 환자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공감하는 언어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글쓰는 전업 작가가 아닌 날마다 새로운 환자를 만나는 의사이기에 인생에 접근하는 관점이 새롭다. 인생은 일직선이 아니라 굴곡이 반복되는 부침이 있어 다소 복잡한 선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성경은 그런 부침의 역사를 온 몸에 받아들인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실패의 주인공을 전면에 드러낸 책이 있을까? 성경은 살인자, 이중인격자, 위선자 등 차마 현대 사회에서 입에 담아 두기 어려운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소개한다. 우리의 인생이 바로 그렇다는 얘기다. 성공한 사람만 등장하는 책이라면 자기계발서와 무엇이 다를까?

 

우리의 인생을 사계절로 표현한 폴 투르니에는 사람은 전인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환자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육체를 가진 신체적인 존재이기에 자연과 동떨어져 지낼 수 없고 자연의 일부다. 동시에, 여기에서 폴 투르니에는 '동시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육체를 가진 존재이며 동시에 영적인 존재, 초월적인 존재임을 알지 못한다면 결국 사람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다고 말한다. 환자를 상담하며 경험한 사례를 소개하며 육체적인 치료가 환자를 살리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를 가진 환자들이 의외의 결과로 병에서 회복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적인 존재, 초월적인 존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지성으로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전적인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어린 아이를 지나 청년 시기와 장년 시기를 거치면 어김 없이 찾아오는 것이 노년이다. 노년은 어느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년을 부끄러워하거나 어떻게든 부정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폴 투르니에가 보기에는 불쌍한 모습을 비춰진 것 같다. 차라리 노년의 시기를 인정하며 노년의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성숙함으로 인생의 마무리를 지어보는 것이 어떻게냐며 독자들에게 의사로써 권면한다.

 

"노년기의 과제는 과거를 경멸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로부터 교훈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사실, 다양성의 대명사는 '하나님' 이시다. 그분은 다양한 동식물을 서로 다양하게 만드셨다. 사람을 만드실 때도 다양성을 적용하셨다. 모든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더없이 소중한 이유다. 개인의 삶을 봐도 그렇다. 개인이 가진 고유한 성격들이 모두 다양하다. 재능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어쩌려고 하나?

 

일각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자유롭지 못하고 뭔가에 구속당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리스도안에서 자유를 맘껏 누릴 권한이 있음에도 스스로 구속된 삶을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

폴 투르니에는 도덕주의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도덕주의는 자기 자신만을 추구하고 자신이 선과 악을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도덕주의는 실수할 만한 모든 상황을 양심의 가책과 자기 억제의 힘을 동원해 피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도덕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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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세대 -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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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청년 세대들의 구직난이 심각하다. 대학을 졸업한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꿈조차 갖는 것도 사치일 정도다. 왜 이렇게까지 우리나라가 변해버렸을까? 언제부터 취직이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워졌을까? 단지 일을 할 수 있는 자리가 급감했기 때문에 일자리가 없는 것인지, 잘못된 국가 정책 또는 누군가의 자리 독점으로 인해 생긴 피해인지 살펴볼 시기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세계적 추세라고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닌 것은 이러다가 손을 델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불평등의 세대』에서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우리나라 특유의 '동아시아적 위계 구조'를 분석하고 있으며, 현재 정치적으로 경제적 사회 각 층에서 권력을 쥐고 잇는 386세대(60년대생으로 8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세대)가 왜 이 문제를 풀려고 하는 의지가 없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다만 386세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라기 보다 산업화 세대로부터 시작된 부의 대물림, 자산 증식을 통한 가문의 보존, 정보화시대의 특수를 입고 대거 기득권의 자리에 서게 된 386세대의 특징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좀 더 나아가 '세대 간의 갈등', '세대 내의 갈등'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먼저, 청년 세대들의 구직난이 심한 이유를 살펴보자. 1997년 IMF 외환 위기 이후 노동의 유연화를 받아들인 우리나라는 듣도보지도 못한 '비정규직'을 배출(?)하게 된다. 파이는 정해져 있는데 일할 사람은 뽑아야 되고. 그러다보니 임금을 적게 줘도 되는 '비정규직'을 받아 들이게 되었고, 마음에 따라 언제든지 쫓아내도 괜찮을 사람 취급해 버렸다. 지금은 출산율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일할 사람이 적어 일자리가 걱정 없이 풀릴 것 같지만 제4차 산업혁명으로 대부분의 일자리는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청년 세대들이 취직하기가 바늘구멍보다 좁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청년 세대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속사정은 사실 따로 있다고 본다. 386세대 즉 지금의 50대 중반~60대까지 정보화 붐으로 특수를 누린 그들이 기업의 임원이 되거나 회사의 중역이 된 시점에서 결코 그 자리를 내려오지 않기에 신규채용이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386세대가 20대였을 때 정치적으로 , 경제적으로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평등과 분배를 강조했던 그 구호는 도대체 무엇이었는가가 궁금하다.

 

우리나라는 독특한 위계구조를 가지고 있다. 벼농사를 기반으로 조성된 마을 문화에서 연장자의 지혜와 지식이 존경받던 시대에 모두가 연공서열을 당연하게 여겼었다. 산업화 세대가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다만 그들이 활동했던 장소가 변화되었을 뿐이다. 농촌에서 도시로 상경한 그들은 '동아시아적 위계구조'를 발휘하여 국가의 지속적 성장 정책에 이바지하였으며 그 부산물로 적당한 지위와 부를 보상받게 되었다. 산업화 세대의 자녀인 386세대는 아버지 세대보다는 진보적인 사고 방식으로 정치적인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였지만 막상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자본'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문재인 정부까지 386세대의 승승장구는 끝없어 보인다. 급기야 모든 영역에서 한 자리씩 자리 잡게 되었고, 이제는 정책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 세대들을 위한 일자리 정책에 변화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의지는 없는 것일까? 세대 내에서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태다. 노동 소득보다 자본 소득이 높은 있는 집 청년들은 금수저의 반열에 올라 취업 걱정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정도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반면 흙수저로 불리우는 청년들은 88만원 세대를 넘어 살 희망조차 잃어버리고 있다.

 

왜 386세대는 산업화 세대에 이어 그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할까? 앞으로 청년 세대의 고민을 풀기 위한 방법은 기득권 세대의 통큰 양보와 결단만이 가능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연금 고갈로 다음 세대들은 앞선 세대의 노후 보장을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이 세금 부담을 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연금 세대들이 자녀 세대들을 위해 연금 보장율을 스스로 낮추거나, 있는 집 세대에서는 자산에 대한 세금을 자발적으로 납부하는 의식 개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하며 책을 마무리 짓는다.

 

노조가 거대한 이익 집단이 되었고, 취약 계층인 청년과 여성에 대한 임금 차별이 커지고 있으며, 저항 세대였던 이들이 갑자기 '이익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 현실을 구체적인 증거를 들며 까발리고 있다. 청년들에게 인내하면 좋은 시절이 온다고 구슬리는 시대는 한물 갔다. 기업은 점점 등치가 커져 가고 있지만 인건비를 유지하기 위해 청년 세대의 신규 채용을 줄여가고 있다. 그것을 결정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이 '386세대'라는 점이 아이러니컬하다.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장악한 리더들이다. 청년들에게 자신들은 겪어보지도 감당하지도 않았던 노동 유연화의 기제들을 강요하고 있다. 386세대가 리더가 되면 조금 달라지겠지 하고 기대했던 많은 이들이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 현실을 '세대'의 앵글로 바라보고 분석한 『불평등 세대 』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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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축사회 - 성장 신화를 버려야 미래가 보인다
홍성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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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리더 그룹들에게 수축사회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서"


저자가 이 책을 쓴 동기다. 최근(2020.8.) 국가의 부동산 정책으로 서울시민들의 민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한 방법으로 아파트 공급을 늘리겠다는 이야기다. 집이 부족하니 필요한 이들을 위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정부 정책에 사람들이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돈' 과 관련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비싼 아파트를 소유한 이들은 집 값 떨어지는 것을 반길 사람이 없을 것이다. 비싼 아파트를 몇 채씩 가지고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집 장만 위해 대출(빚)을 내어 어렵게 집을 장만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대출로 인한 이자 발생 비용보다 아파트 가격 상승이라는 이점이 있어 선택한 결과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하니 민심이 움직일 수 밖에.


만약 우리나라가 과거처럼 수출로 성장 가도를 달리고 부동산 외에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타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면 사람들의 반발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팽창사회'와 '수축사회'의 차이점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위기 때마다 간신히 극복했던 사례가 있다. 제1차 오일쇼크, IMF 국가부도사태 등 국가의 존재 자체가 흔들릴 때 운(?)좋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름아니라 세계적 수요가 공급을 앞질렀고 국가의 성장동력인 생산인구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일명 '팽창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 저성장이 일어나는 수축사회에서는 위와 같이 일이 발생할 경우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2020년부터 정치, 경제, 교육, 부동산 등 모든 영역에서 수축사회의 특징이 나타날 것으로 분석한다. 


저자가 '수축사회'라고 말하는 이유는 먼저,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 인구가 줄어들 경우 그 현상은 사회의 전반적인 영역에 나타난다. 출생률이 떨어지니 교육 서비스 분야는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서비스가 한층 강화될 것이고 학원들의 통폐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로 인해 소비가 위축될 것이다. 식당, 도소매업 등은 줄도산이 예고된다. 젊은층이 감당해야 하는 복지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 비상 사태로 번질 수 있다. 복지비는 늘어나야할텐데 저성장의 늪에 빠진 국가는 그것을 감당해낼 능력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둘째, '수축사회'를 들어서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일을 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나야 자리가 늘어나는 법인데 세계적으로 일자리는 기하급수록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4차산업혁명으로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가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며 임금 인상으로 인해 기업에서 가능한 한 고용을 줄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셋째, '수축사회' 전환되고 있다는 증거로 '파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파이'가 줄어든다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다. 개인 간 경쟁이 불가피하다. 개인주의가 강화된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파이가 줄어드는 수축 사회에서는 다양한 영역으로 역량을 분산시키면 전력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삼성 → IT, 바이오 산업에 올인하는 이유다. LG → IT, 화학에 집중, 개인도 한 가지 재능에 집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작사, 작곡, 편곡, 노래를 겸비한 싱어송라이터가 사라지고 있는 이유다.


저자가 제시하는 수축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해법을 살펴보자.


파이가 정해진 이상 파이를 차지 하기 위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파이를 차지하고 난 뒤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파이를 차지한 기업은 반드시 사회 공헌을 늘려 기업의 이미지를 쇄신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투명하게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미 어학 시장인 영어, 중국어, 일본어 능통자는 공급과잉이다. 반면 베트남어 능통자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미래를 전망해야 한다는 말이다. 재벌 반열에 올라섰다가 하차한 기업(STX, 웅진)은 공급 과잉인 산업에 진출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더 이상 점포를 내지 않는다. 독점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덮어질 경우 반대 급부가 심하기에 절제(?)하는 경우다.


팽창사회에서는 리더의 모습과 수축사회에서의 리더는 다르다.

"부하직원들이 리더를 볼 때 인품, 태도, 능력 등 모든 면에서 격이 다르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더의 말 한마디가 순식간에 공개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조직원들은 리더에게 한두 단계 높은 품격을 요구한다. 격이 다른 리더가 수축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다.


따라서, 수축사회에서는 특정 계층이 부를 독식하면 나머지 계층이 빈곤해 지는 제로섬 사회가 이어진다. 국가적 차원에서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다. 미래에 집중해야 한다. 사회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비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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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당연함을 버리다 - 고지마치중학교의 학교개혁 프로젝트
구도 유이치 지음, 정문주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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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을 가로막는 것은 법률이나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부조리, 비효율적인 상황이 있는데도 아무 의심 없이 전례를 답습하는 교육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학교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을 의심부터 해야 한다. 구도 유이치 교장(고지마치 중학교)은 학교 부임 후 '학교의 당연함' 부터 찾아내기 시작했다. 학교가 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진학을 위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와 같은 시험, 경쟁을 유발하는 체육대회, 교복 규정, 학생 규정, 학부모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들어오면 안된다라는 규정 등 변화된 현실과는 동떨어진 당연함을 교직원들과의 회의를 통해 차근차근 개혁해 나갔다.


핀란드에서는 교사와 아이들 모두 입버릇처럼 '왜?' 라는 말을 한다. 유독 동아시아에서는 유교권 문화 탓인지 '왜?'라는 말을 반항이나 버릇 없음 취급한다. 학생이나 교사나 불합리한 상황이 학교에 존재한다면 개선할 수 있도록 학교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왜?' 라는 질문을 던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복종에 길들어진 학교 문화에서 쉽게 왜? 라는 말문이 쉽게 터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교장은 의도적으로 왜? 라는 질문을 할 수 있도록 권장해야 한다. 모두가 꺼려한다면  X맨을 정해 놓더라도 시도해 보자. 왜? 이것을 해야 되죠?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서 적절한가?


구도 유이치 교장은 어떤 문제 상황 앞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서 적절합니까? ' 고지마치 중학교의 학교 목표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사회에 나가서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 하는 것이다. 학생의 자율성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자율성을 바탕으로 이질적인 집단 내에서 교류하기, 도구의 상호 이용을 지향한다. 만약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고 학교 밖에서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찾고 싶다고 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권장한다. 학교가 학생이 학교 오지 않는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오해할 수 있는 대목이지만, 학생의 자율성을 존중한 결과 학교 밖 학생들이 결국 학교로 돌아오더라는 것이다. 고지마치 중학교는 인권을 존중하고 생명을 중시한다. 서로 다른 다양한 학생들이 모인 집단에서 갈등 생성은 당연한 귀결이다.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갈등을 없애거나 못 본척 하는 것은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말한다. 어떤 학교 행사든 학교의 목적에 위배된다면 그 수단은 다시 재고하도록 요청한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루는 목적이 진학을 위한 것이라면 학교의 최종 목적인 자율적인 사회인 육성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다른 방법으로 학력을 점검하도록 요청한다.


"개인에게 자기 희생을 강요한 나머지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 조직은 본질적으로 강해질 수 없다"


교사들에게도 자발성을 요구해야 한다. 교장이라는 이름 하에 지시는 결국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서로의 합의 하에 학교 목적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 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권한 위임은 신뢰의 표시다. 동질성을 중시한 나머지 이질적인 사람을 따돌리거나 교육 또는 지도를 통해 상대를 바꾸어 놓으려는 리더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교사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창조해 갈 수 있도록 여유를 드려야 한다. 온전히 수업과 생활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근무 조건을 개선시켜야 한다. 교사가 학교 내에서 움직이는 데 시간을 불필요하게 소모한다면 공간 혁신을 통해서라도 최대한 피로를 덜 느끼게 조정해 주어야 한다. 교장의 몫이다. 교사마다 개성이 다양하다. 획일적으로 통일시키려 든다면 낭패를 당하기 쉽다. 시대가 변했다. 교사마다 다양한 개성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변화를 가로막는 것은 법률이나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교사가 움직이지 않는들 어떻게 학교가 변화될 수 있겠는가?

서로가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서로 달라야 좋은 시대다. 의견 차이도 당연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지 갈등도 필요도 없는 문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역이 운영하는 학교 = 학교, 학부모, 지역 주민이 책임과 리스크를 동시에 짊어지는 학교"


학교 운영위원회 회의는 청문회가 아니다. 간혹 학교 운영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시는 학부모 위원들이 '소비자'의 입장에서 따지고 들거나 학교에 이런저런 주문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학교와 학부모 간 관계를 보면 학부모가 '소비자', 학교가 '서비스 사업자' 로 변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학부모의 불만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대응하다보면 학생의 자율, 학교의 자율을 뺏기는 결과가 나타난다. 학부모가 '손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의 주체가 되지 못한 결과다. 학부모들에게도 오너십을 부여하고, 같은 목적을 공유하며, 합의를 이뤄내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말보다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고지마치 중학교는 불가능한 현실을 변화시켰다. 학교, 학부모, 지역 주민이 오너십을 가지고 책임과 리스크를 동시에 짊어지고 학교를 변화시키고 있다.


"학교 문화가 세상의 상식을 벗어나 있으면 안 된다"


예전에는 학교가 사회의 최상 문화를 선도했다. 교사가 지역 주민들보다 앞선 시대 감각을 가지고 선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반대가 됐다. 세상의 상식 수준에 못치는 경우가 종종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 구도 유이치 교장은 고지마치 중학교 교직원 규칙을 개정하는 가운데 직원들의 반발을 샀다고 한다. 학교에 걸려오는 전화 조차 친절하게 받지 못하는 학교가 어떻게 세상을 선도할 수 있냐면 전화받는 태도부터 변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교 내에서 통상 직원들 간에 부르는 '선생님' 이라는 호칭도 과연 옳은가를 생각해 보도록 했다. 고지마치 중학교에서는 그냥 '씨'라고 부른다고 한다. 학생들 앞에서 스스로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물론 이 예는 특수한 예다. 학교 사회에서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제한적 조건 속에서 창조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임무가 교사에게 있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학생의 성장과 변화를 위해 제한적 조건 속에서도 창조적으로 문제점들을 해결해야 한다.



교사의 가치는 외부적으로 주어진 직업적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사로써 가진 생각과 마인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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