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도슨트 - 청소년을 위한 동양 미술 수업
장인용 지음 / 다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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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동양화가에는 누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김홍도, 신윤복, 정선, 김정희 이 정도다. 서양 화가도 손에 꼽힐 정도다. 빈 센트 반 고흐, 마네, 모네...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많이 외웠던 이름들이다. 기억에 남는 화가들은 아마도 알게 모르게 대표작들을 종종 책을 통해 봐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별히 미술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나에게 동양화는 더더욱 관심을 끌 만한 분야가 아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책장에 놓여진 『동양화 도슨트』 라는 책이 보이길래 하루 왠 종일 책장을 펼치며 한 권을 다 읽고야 말았다. 곳곳에 인쇄된 동양화들을 보며 제법 익숙한 그림도 보였지만 처음보는 그림도 많았다. 친절한 동양화 도슨트 저자의 설명을 따라 그림과 대조하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개념과 상반되는 내용도 있었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이 참 많았다. 

 

1. 동양화의 개념부터 살펴보자. 서양화의 반대가 동양화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양권에 있는 중동, 동남아시아의 작품들을 동양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예술 분야에서 동양화로 분류할 때에는 중국, 한국, 일본 이렇게 세 나라의 그림을 동양화라고 부른다. 저자는 중국미술사를 공부한 전문가다.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문화예술에 있어 독자적인 면을 갖춘 부분도 있지만 지대한 영향을 받은 부분도 없지 않아 많다. 동양화도 마찬가지다. 동양화 안에서도 학자들은 세부적으로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 문인화, 사군자, 풍속화, 민화 등으로 나눈다. 특히 민화는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나간 분야라고 본다. 

 

2. 동양화와 서양화의 차이점을 살펴보자. 서양화는 색감이 다양화다. 물감을 기름과 섞어 사용한 회화가 대부분이다. 반면 동양화의 그림 재료는 물감 대신에 먹을 사용했고 그리는 도구로 붓을 주로 사용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먹과 붓이 가지고 고유한 특성은 동양화를 서양화와 뚜렷하게 구분하는 기준점이 되었고 동양화는 역사적 흐름과 괘를 같이 하면서 동양화 그림 곳곳에 서양화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특징점들이 담겨 있다. 첫째 낙관이 찍혀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한 두개가 아니라 어떤 동양화에는 수십개가 찍혀 있다. 서양화도 화가의 이름이나 이니셜을 그려 넣거나 살짝 숨겨 놓는 기법들이 있는데 동양화는 노골적으로 화가의 이름을 도장으로 찍거나 그림을 소유하거나 소장한 사람들이 낙관을 군데 군데 찍었다. 둘째, 서양화는 그림이 대부분 화폭의 분량을 차지하는 반면에 동양화는 그림과 글이 균형잡게 놓여져 있고 심지어 여백을 강조하여 빈 부분이 화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림도 있다는 점이다. 동양화에 그림과 글이 함께 놓인 이유는 역사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몽골인은 50여 년 동안 전쟁한 끝에 비로소 송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습니다. 몽골인이 세운 원나라가 서로 다른 여러 민족을 통치한 방법은 쉽게 항복한 나라는 우대하고, 끝까지 버티고 싸운 나라는 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송나라 사람들은 몽골의 지배 아래 있는 여러 민족 가운데 가장 천대 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154쪽)

 

즉 무슨 말인고 하니 송나라 사람들은 몽골의 지배하에 관료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며 그림을 전문으로 하는 화가들도 관료 생활에서 쫓겨나야 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대신 관료에서 쫓겨난 이들이 산 속, 고향 곳곳으로 흩어져 글과 그림을 취미삼아 한 평생을 살아가야 했던 시대적 상황이 문인화로 자리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송나라처럼 도화원, 도화서라는 국가에서 인정해 주는 전문적인 화가 관료 집단이 있었지만 그 외에도 순수한 학자 출신이지만 그림에 뛰어난 기량을 가진 이들을 통해 문인화로 발전된 경우가 많았다. 김홍도의 스승이었던 강세황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낙향하여 고향 안산에 내려온 강세황이 어린 김홍도를 발굴해 냈던 시대적 정치적 상황이 있었다. 문인들은 그림도 중요했지만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학풍을 담아내야 했기에 그림 속에 시를 포함시켰고 문인화들의 고고한 자신의 사상을 담아내기 위한 대상인 사군자가 그림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3. 중국의 동양화를 앞선 우리만의 진경 산수화를 살펴 보자. 정치적 박해를 피해 고향으로 내려온 수 많은 문인들이 산천을 배경으로 많은 그림을 그려냈던 것이 중국의 산수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단, 그들이 그려낸 산수화는 머릿 속에 머물려 있던 상상의 산수화가 대부분이었던 반면에 우리나라로 건너온 산수화는 직접 두루 다니면서 관찰하고 느낀 점을 화폭에 담아낸 점이 중국의 동양화와 구별되는 점이다. 

 

"정선은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일을 즐겼습니다. 금강산, 관동팔경, 영남팔경, 단양팔경 등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곳을 두루 다녔다. 그 열성이 그림으로 나타나 진경산수화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91쪽)

 

4.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동양화의 진짜 화가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교과서나 책들을 통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풍속화 <씨름>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씨름>이 김홍도의 작품인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고개를 젓개 한다. 그 이유를 살펴볼까? 

 

"<씨름>을 자세히 보면 여러 곳에서 한 사람의 화가가 그린 게 맞나 싶은 의심도 듭니다. 단원풍속도첩이란 화첩은 좋은 그림이지만, 김호도가 그린 그림이 아닌 위작일 수 있다는 것이죠. 김홍도의 그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은 후대의 도화서 화가들이 김홍도의 그림을 비롯한 풍속화의 여러 소재를 이용해 다시 그린 그림이라고 봅니다. " (275쪽)

 

5. 마지막으로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민화'에 대한 정의다. 민화하면 주로 백성의 그림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린 사람도 일반 서민이며 그 그림을 즐겨 했던 이들도 서민이었을 것으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과연 일반 서민들이 일월오봉도, 책가도, 모란도, 호도와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냐하면 이것 또한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일월오봉도는 오직 왕을 위한 그림이었고 책가도는 책을 숭상했던 정조대왕이 즐겨 했던 그림이었다. 부귀 영화의 상징인 모란 꽃이 그려진 모란도, 호랑이를 익살스럽게 그린 그림도 살기가 빠뜨하게 힘든 서민들이 그린 또는 즐겼던 그림이 아니라 누가 생각해 보더라도 귀족층, 살만한 계층들 사이에서 거래되었던 그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민화를 정의할 때 이렇게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민화는 도화서의 화가들이 오랫동안 그려왔던 여러 상징적인 그림을 바탕으로 태어난 그림" (304쪽)

 

분량이 제법 되고 청소년을 위한 동양화 안내서라고 하지만 어른들도 읽어야 하는 교양서가 아닐까 싶다. 한 편의 동양화 강의를 진뜩하게 든 기분이다. 어렵지 않게 청소년들도 알아 듣기 쉽게 풀어낸 저자의 필력에는 아마도 미술사를 전공한 내공이 한 몫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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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학의 대화 Q&A - 창조와 진화, 인간의 기원에 관해 가장 궁금한 38가지 질문
바이오로고스.우종학 지음, 과학과 신학의 대화 엮음, 김영웅 옮김 / IVP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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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이 창조주임을 믿고 진화가 생명의 발달 과정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설명임을 받아들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하나님이 식물의 생장과 발달을 가능케 하시는 것을 믿지만, 그와 동시에 광합성 이론이 그 과정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설명임을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106쪽)

 

진화적 창조란 무엇인가? 에 대한 답변으로 2007년 프랜시스 콜린스가 설립한 단체인 바이오로고스가 표방하는 대표적인 창조관이다. 즉 하나님이 어떻게 이 땅에서 생명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셨는지에 대한 가장 훌륭한 설명으로 '진화적 창조'를 말하고 있으며, 이것은 진화주의와는 결을 달리한다. 

 

일반적으로 이론을 이야기할 때 '추측'을 말하지만 과학에서 이론은 분명히 실험적 증거와 자료, 과학적 관찰에 의한 것을 이론으로 말한다. 따라서 진화적 창조는 진화 이론에 근거한다. 현대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의 과학적 증거를 기반으로 하여 성경의 권위와 영감을 지지하며 교화와 세상이 과학과 성경적 신앙 사이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를 중심으로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설립해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고 연구하고 있다. 과학과 기독교의 수많은 갈등은 매우 다른 질문들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잊기 때문에 발생한다. 과학적 질문만으로 세상에 일어나는 현상을 모두 파악할 수 없듯이 종교적 질문만으로 삶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과학과 기독교는 서로를 교정하고 강화하면서 상화 작용하는 역할로 함께 가야 한다. 

 

책에서는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간결하면서도 과학적으로 실려있다. 무작정 덮어 놓고 믿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창세기는 실제 역사인가? 진화란 무엇인가? 지구와 우주의 나이는 어떻게 계산되는가? 기독교의 하나님이 창조주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등과 같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궁금증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단, 과학을 조금 어려워하는 독자가 있다면 한 번에 다 읽을 생각보다는 긴 호흡을 가지고 읽어 내려갈 것을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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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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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부터 생소했다. 이미지가 낯설었다. 덩그러니 석류가 등장하고 메뚜기처럼 보이고 뭔가 했더니 소설 속 단편소설 <릴리의 손>이었다. 그러고보니 석류도 단편소설 <고기와 석류>에 등장하는 식인종에 가까운 '그 녀석'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먹거리 석류였다. 첫 번째 좋아하는 것은.... 놀라지 마시라. 썩은 시체.

 

트로피컬이 무슨 뜻인지 몰라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자신있게 '열대의..' 라고 한다. 열대지방의 열대? 네이버 사전 뜻을 찾아봤더니 역시나 열대 지방에서 입는 천, 옷감 이런 뜻이었다. 표지 전체의 이미지 느낌이 역시나 열대 느낌이 나는 것 같다. 책 속 단편소설인 <새해엔 쿠스쿠스>도 모로코 사막 지방에서 먹는 요리였다. 작중 주인공은 헬리코터맘의 등살에 못이겨 어찌어찌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엄마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엄마의 바람대로 살아가지만 결국은 현실에서 오는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렸을 적 이불 속에서 즐겨 보았던 모로코 밤 하늘을 쫓아 훌쩍 바람처럼 사라진다. 쿠스쿠스를 입에 담고 현실을 도피하여 새로운 인생을 향하여 말이다. 

 

조예은 작가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순간 4차원의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참 난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등장인물은 사람인데 배경은 죄다 현실 세계가 아닌 보다 한 차원 높은 이상 세계를 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릴리의 손>은 서기 2200년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갑자기 땅에 빈 틈이 생기고 커다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 주인공은 또 다른 지구 세계로, 아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지구로 다시 빨려 들어가고 주인공의 영혼이 바뀌고. 그러면서 손수건을 통해 머나먼 과거의 자신의 흔적을 더듬는 장면을 통해 기계와 인간이 함께 공생해 가야 하는 미래의 지구의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도 기후위기라는 말이 피부로 와 닿을 정도로 지구 곳곳에서 100년 만에 가문이 생기고 폭우가 생기면서 많은 피해가 속출하고 있듯이 <가장 작은 신>에서도 초특급 울트라 미세먼지가 공습해 오는 미래의 지구의 모습을 맞딱뜨리게 된다. 메세먼지 경보음이 울리고 사람들은 미세먼지 방독면을 필수품을 챙기며 일상의 외출이 화생방 훈련을 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 와중에도 공기 정청기를 판매하는 다단계 업체들은 사람들을 속이고 속이는 영업 전략을 펼치며 '먼지의 신'이라는 가짜 상품을 팔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작품 속 등장인물을 주변으로 펼쳐진 세상은 암울하기 그지 없다. 고독사를 걱정해야 하고, 각종 기후 위기로 늘 질병을 걱정해야 하며 늘 익숙했던 세상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지만 그 와중에도 변함이 없는 것은 인간이라는 속성 그 자체다. 세상과 등지며 살아가며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상태 속에서도 결국에는 위기 속에 인간이라는 본성은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고 인간을 구출해 내는 것은 곧 인간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코로나 펜데믹을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도 소설 속 주인공들이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앞으로 영원히 생각지도 못하는 질병과 더불어 함께 지내야 하는 암울한 현실, 기후 위기가 이제는 최우선 해결 과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땜방식으로 대충대충 임시처방으로 넘겨야 하는 현실,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고립과 고독, 치열한 경쟁과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누가 과연 나의 이웃이 되어 줄련지... 그럼에도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사람의 본성' 이다!

 

『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 회복' 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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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 스트레스 없이, 생산성 있게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매뉴얼
졸리 젠슨 지음, 임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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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학교 내의 교수들의 학술적 글쓰기에 대한 조언이지만 글쓰기에 거부감을 갖고 있거나 주저하고 있는 분들에게도 작은 용기와 도전을 시도할 수 있는 좋은 지침들이 담겨져 있어 가볍게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저자가 말하는 (학술적) 글쓰기는 아주 단순하다. 

 

첫째, 매일 15분씩 꾸준히 글을 쓰라는 얘기다. 왜 15분이라고 했을까? 아마도 대학 교수이기에 오랜 시간 여유 있는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15분이라는 짧다고 생각하면 짧은 시간을 할애하여 매일 꾸준히 쓰는 시간을 갖는다면 전문적인 영역에서 꾸준히 일취월장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에 그렇게 시간을 잡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매일 일기를 쓴다. 얘들 키울 때 육아일기를 썼다. 아참, 군 복무를 할 때 병영일기도 썼다. 초임 교사 때에는 교단 일기를 썼다. 그러다가 잠깐 중단했다가 작년부터 다시 일기를 쓰고 있다. 매일 중간 크기의 업무 수첩 한 쪽 분량을 쓴다. 피곤해서 눈이 잠기더라도 기어코 일기를 쓰고 만다. 때로는 일기를 빼 먹었을 때는 다음 날 기억을 되살려 몰아 쓰기도 한다. 일기를 쓰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말을 내 스스로에게 한다!

 

둘째, 겁내지 말고 무작정 쓰라! 

 

처음부터 잘 써야지라고 생각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글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 말은 전적으로 동의가 간다.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먼저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을 위한 글이라면 굳히 잘 쓸라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냥 내키는 대로 쓰고 싶은 대로 막 쓰면 된다. 일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일기를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 쓰는 사람은 없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쓰다보면 막힘없이 글을 쓰게 된다. 이렇게 겁내지 말고 글을 쓰다보면 글쓰는 습관이 생기고 힘이 생겨 조금씩 길게 호흡을 가지고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겁내지 말고 무작정 쓴' 결과 책 한 권을 낸 적이 있다. 2021년 12월에. 말그대로 겁 대가리 없이 책 쓴다고 선포하고 도전했다. 출판계 진입이 어렵건 말건 기획서를 제출하고 기적과 같이 뽑혀 글을 쓰게 되었다. 만약 잘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책 쓰기 도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겁없이 매일 매일 쓴 글들, 책 읽고 정리한 글들을 블로그에 업로드하고 만인이 볼 수 있도록 페이스북에도 공유하고 누가 비평하건 말건 무작정 글을 썼다. 그리고 내 이름으로 된 책이 나왔다. 겁내지 말고 무작정 쓴 결과다. 『교사여서 다행이다』

 

셋째, 글을 정말 쓰고 싶다면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맞추어 효율적으로 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글 쓰기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일까? 가장 여유 있는 시간은 언제일까?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평생 그 시간을 확보할 수 없다. 정말 글 쓰고 싶다면 그냥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 속에서 꾸역꾸역 글을 써 내려가는 방법 밖에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조용하고 정돈된 환경이 조성된 곳에서 글을 쓰고 싶지만 아마 나에게 그런 황금 조건은 앞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 가운데 짬짬히 글을 쓰는 방법 밖에 없다. 인터넷 들어가는 것 적게 하고 딴 짓하고 싶은 시간 그 시간에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글을 쓰는거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도 마찬가지다. 애들 어렸을 때에는 육아도 가사도 함께 해야 되고, 애들 컸더라도 손이 가는 일이 많다. 한가한 저녁 시간은 좀처럼 누리기 어렵다. 최대한 현실을 인정하고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집중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노트북을 펼쳐 놓고 꾸역꾸역 키보드를 쳐 내려가는 방법 밖에 없다. 멋진 문장을 쓸 수 없지만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단어들을 겨우겨우 조합해서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다. 어차피 잘 쓰려고 쓰는 것이 아니다. 단지 글 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는 직장인들의 위한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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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 - 귀농하고픈 아들과 말리는 농부 엄마의 사계절 서간 에세이
조금숙.선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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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지망생이 귀농을 하겠다고 선언하다!

 

귀하디 귀한 아들 놈이. 그렇게 공부시키고 이제 세상이 알아주는 벼슬을 목 전에 두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귀농을 하겠다는 아들이 있다면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영혼을 갈아 변호사 되겠다며 노력은 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막상 오래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그래도 한 번 변호사 시험에 도전해 봐야겠다며 토할 때까지 책을 펼치고 노력했었는데 결국은 낙방하고 이제서야 가슴 한 켠에 숨겨 놓았던 귀농의 꿈을 살며시 풀어 놓는 아들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 보면 엄마나 아들이나 모두 착찹하고 고요 속에 뭔가 불안함이 맴돌지 않을까 싶다. 

 

하던 공부 때려치우고 이제 부모가 계시는 시골에 가서 농사 지으면 살겠다고 자신의 생각을 편지지에 꾹꾹 눌려 보낸 아들과 처음에는 놀라는 가슴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아들과 속 마음을 터 놓고 편지를 왕래하면서 그간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안쓰러움과 함께 힘든 길인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당차게 설계하며 포부를 말하는 아들이 믿음직스러워지고 이제는 귀농한 선배의 마음으로 궁금한 점을 물어오는 아들에게 누구보다도 더 차근하게 좋은 팁들을 알려주는 엄마의 서신 왕래가 읽는 내내 마음을 뜨겁게 하고 정겨운 모자간의 관계를 느낄 수 있어 시골에 혼자 계신 어머니를 더욱 생각나게 한다. 

 

귀농이 인생의 실패의 흔적이 아님을 청년 아들은 일치감치 깨닫는다. 겉으로 보이는 외양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혹독한 로스쿨 공부와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느꼈다.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삶도 깊숙히 드려다보면 불행이며 자신의 주체적인 삶이 아닌 쫓기는 삶임을 누구보다도 청년 아들은 더 잘 안다. 자신을 숨기기보다 남들에게 있어 보이려고 하기보다 늦은 감은 있지만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농부의 길을 걸어가고자 엄마와 아빠를 설득한다. 아니 호소하며 먼저 귀농의 길에 접어둔 부모를 이제는 자신이 팔을 걷어 도와드리겠다고 요청한다. 

 

즉흥적인 결단이 아닌 것은 신혼 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와도 오랫동안 귀농에 대해, 앞으로 미래에 펼쳐질 자신의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결국 찾아던 종착지는 시골임을 서로가 재차 확인하며 시골에 있는 부모에게, 시부모에게 정중히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모습 속에 일찍 철이 든 청년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잠시 잠깐 머무는 농촌의 풍경과 오랫동안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야 할 농촌은 분명 다르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에 고생이라는 단어를 마음팎에 새기고 청춘이라는 무기로 한 번 도전해 보겠다는 의기양양한 모습에 일흔에 가까운 노부모도 고생길 훤한 귀농의 길이지만 힘차게 응원하며 편지를 갈음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이들이 살아갈 시골 농촌의 풍경이 아름답게 보여진다. 내 손에 흙 묻힐 상황이 아니니 그저 바라보는 입장에서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청년이지만 고생과 위험 부담을 안고 그렇지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과 도전 의식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농촌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노력이 더욱 눈부시게 아름답게 보여진다. 앞으로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 차원에서도 농촌은 6차 산업이라고 하지 않았나! 세상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 되고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일에 황무한 농토가 있는 시골에 뜻있는 젊은 청년 부부가 맨 몸으로 뛰어 들어간다고 하니 편지의 내용이 마냥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이왕 새로운 삶을 살기를 각오한 청년의 마음 속 다짐이 담긴 글에는 뭔가 투박하지만 당찬 느낌이 담겨져 있고 오랜 세월 어미로 지금은 10년 넘게 귀농하여 농부로 살아가는 엄마의 편지 글에는 노련함과 인생의 묵직한 의미가 담겨져 있어 고개를 저절로 끄덕여짐을 느낀다. 청년의 엄마는 젊었을 때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환경에 대한 필요성을 알고 소박하게 환경 운동을 해왔던 실천가이기도 하다. 환경에 관해 다양한 부분에서 고민한 흔적들이 편지글에 보여진다. 틈틈히 깊은 독서의 흔적도 보인다. 유배지에서 마련한 초라한 방을 사유재로 이름지으며 언행과 삶을 정돈했던 다산 정약용의 예를 빗대어 비록 귀농의 삶이라할지라도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 삶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아들에게 우회적으로 조언해 주고 있다.

 

그 엄마의 그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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