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시티 Rome City - The Illustrated Story of Rome
이상록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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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책을 보면 가슴이 뛴다. 내용이 어떨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친다. 그리고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정말 한 줄 한 줄 꼼꼼하게 읽어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 있고 이번 책은 약간 힘들게 읽어가야겠다, 대충 읽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 있다. 아무리 새 책이더라도 늘 가슴이 뛰는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이라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은 꼭 있다라는 생각을 가진다. 책을 읽고 서평이든 감상글이든 메모 요약이든 정리로 남기는 이유 중에 하나가 여기에 있다. 이번 책과함께 출판사에서 기획하여 야심차게 독자들에게 선보인 책은 다름아닌 여행책이듯 하면서도 역사책으로 분류해도 좋을 듯한 두 가지가 혼합된 책이다.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는 명화를 빰치게 한다. 보통 여행 가이드책이든 역사책이든 그 지역의 생생한 생동감을 살려내기 위해 현실성 있는 사진들을 촬영하여 싣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책은 손수 저자가 그려낸 그림이 주를 이룬다. 

 

<로마 시티> ROME CITY는 우리가 다 잘 아는바처럼 작은 소도시에서 시작된 이름이다. 이탈리아 반도에는 도시국가들이 오밀조밀하게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있게 발달하고 있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작은 도시 '로마'가 훗날 '로마제국'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 저자는 역사적 기록을 간단하면서도 핵심을 간파하여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기록이라도 서술된 용어가 어렵다거나 지나치게 길고 자세하게 나열되어 있으며 거부감부터 드는 것이 사실이다. 독자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당기기 위해 서술하는 방식도 독자들이 친근감 있는 소재들을 던지며 시작한다. 현재 이탈리아 수도 로마를 여행하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도시 자체를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수도 서울을 홍보하고 자랑하는 다양한 글들과 사진 속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유물, 유적들이다. 5천년 역사 속에 수 많은 전쟁과 도굴을 통해 사실상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역사의 흔적들을 보기위해 많은 외국인들이 서울을 방문하고 있다. 이처럼 수 천년의 역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로마는 걸어다니는 보도블럭, 발에 차이는 돌조각, 눈에 보이는 기둥 모두가 최소한 일이천년이 넘는 유적, 유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로마라는 작은 도시국가가 왜 대제국이 되었는가? 라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샛길로 빠진 것 같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면 로마는 권력이 철저하게 분립되어 있었다. 행정 책임자인 집정관, 국회처럼 행정 권력을 견제하는 귀족으로 이루어진 원로원, 시민들이 중심이 된 호민관이 각각 어느 1인이 권력을 독점하지 않도록 정치 시스템이 되어 있었다. 특히 행정 책임자인 집정관은 임기도 고작 1년뿐이었고, 집정관을 역임한 이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반드시 변방으로 나가 있어야했고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야 다시 집정관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졌다. 로마가 추구한 정치 시스템을 '공화정'이라고 한다.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고 주어진 역할에 따라 책임있는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시스템이었다. 로마가 천 년 넘게 제국의 위용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공화정 제도가 뒷받침하고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작은 도시국가 '로마'가 영역이 넓어지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제정'이라는 정치 시스템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황제라 칭하는 '카이사르'가 로마에서 시작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카이사르는 최고 권력자들 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탁월한 정치 지도자가 카이사르가 되었을 경우에는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지만 악명 높은 이가 집권했을 경우에는 나락의 길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제정 시대를 오래동안 끌어갈 수 있었던 것은 카이사르가 될 수 있는 조건이 누구에게나 문을 열려 있었다는 점이다. 로마제국의 카이사르 중에는 심지어 노예 출신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파격적인 신분 상승은 없었다. 

 

<로마시티>에는 이렇게 길고도 긴 로마제국의 역사가 정말 쉽게 쉽게 기술되어 있다. 로마사에 입문하는 독자가 있다면 여행하듯 역사와 함께 로마 도시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에도 로마에는 2천년 전에 설치된 수로가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상하수도 체계를 설계한 이도 바로 로마제국이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고 이야기하듯 군 보급품과 신속한 병력 이동을 위해 만들어 놓은 도로 포장길은 현재에도 사용할 정도로 과학적이고 기술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코로나-19 나 종식된다면 로마 시티에만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보면 어떨까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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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포트만의 새로 쓴 우화
나탈리 포트만 지음, 재나 마티아 그림, 노지양 옮김 / 개암나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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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많이 읽을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동화에는 사람들의 내면 심리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재미로만 읽어도 좋지만 재미를 넘어 인간의 존재의 본질을 탐구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바로 동화이기 때문이다. <나탈리 포트만의 새로 쓴 우화>에는 3편의 동화 그 중에 우화가 담겨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우화들이다. '거북이와 토끼', '아기 돼지 삼 남매', '시골 쥐와 도시 쥐'. 이 이야기들을 모른다고 하면 정말 간첩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이 다 아는 우화 중에 대표적 작품들이다. 언제 읽어도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우화 속에는 캐도 캐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시대를 초월하는 의미들을 발견하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머리만 커지는 지식만 먹어서는 안 된다. 마음도 커져야 한고 생각도 깊어져야 균형있게 자랄 수 있다. 우화는 마음 속 광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좋은 재료다. <나탈리 포트만의 새로 쓴 우화: 거북이와 토끼>를 통해 세월이 지나고 과학문명이 발달하더라도 꾀보다는 성실함이 정답임을 깨닫게 해 준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할 것이며 성실한 모습을 살아가는 가족들의 존재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도 거북이와 토끼라는 주인공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아픔을 알아주는 친구로 거북이와 토끼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화는 아이들에게 있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마음 속 치유의 심리학이 될 것이다!

 

 

<나탈리 포트만의 새로 쓴 우화: 아기 돼지 삼 남매>는 꾀 부리다가는 한 방에 푹 갈 수 있다라는 충격적인 교훈을 넌지시 던져준다. 대충 대충 살다가는 정말 중요할 때 쥐도새도 모르게 파멸에 이를 수 있음을 귀여운 아기 돼지들의 모습을 통해 보게 될 것이다. 어른들이 백마디 잔소리 하는 것보다 우화 속 장면 이야기를 직접 읽거나 들려주는 것이 효과 만점이다. 우화 속 아기 돼지 삼 남매 나름대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를 통해 아이들은 그들과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나눌 수 있을테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충고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는 반사이익도 얻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우화의 이야기는 아이의 마음 속 우주를 출렁이게 한다. 정갈한 우화 한 편이 아이 마음 속 우주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아이들이 읽어낼 힘이 없다면 주위 어른들이 시간을 내서라도 직접 들려 주어야 한다.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면 나중에 들려주면 되겠지라고 생각할때면 이른 늦었다! 골든 타임이 기억하라! 어릴수록 귀에 들려주라!

 

<나탈리 포트만의 새로 쓴 우화: 시골 쥐와 도시 쥐>는 도시에 간 시골 쥐가 무서운 경험을 한 뒤로는 자신이 나고 자란 한적한 동네가 최고임을 깨닫는 우화다. 고양이가 끔찍하게 덤벼드는 장면도 우화를 통해 듣게 되니 그렇게 잔혹하게 들려지지 않는다. 우화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시골 쥐와 도시 쥐의 이야기는 실제 아이들의 삶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는 이야기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삶의 부익부 빈익빈이 갈수록 태산이 되는 세상 속에 물질문명의 대명사 도시와 쇠락해 가는 지역인 시골을 대비하는 이야기는 결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듯 싶다. 우화를 통해 현실을 넘어 아이들이 꿈꾸는 세계도 그려보면 좋을 것 같다

 

우화는 사실의 이야기가 아닌 진실을 말하는 이야기다! 진실은 사실의 뒷편에 숨겨져 있다. 우화를 통해 아이들이 진실을 바라보는 안목이 깊어지리라!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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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필수 자신 있게 따라 쓰기
좋은친구 편집부 지음, 황명석 그림 / 좋은친구출판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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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의 바른 글씨 예찬론

 

나는 지금 현직 교감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일이다. 강원도 산골 학교에서 5학년과 6학년을 한 교실에서 가르치던 시절이다. 일명 복식학급 담임교사였다. 학교 전교생 수가 30명 남짓했다. 교사는 딱 3명. 5학년과 6학년을 모두 모아 봤자 10명이 안 됐다. 학기 초 의욕적으로 담임교사인 내가 직접 학습지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월부터 12월까지 우리 반 아이들을 위해 나만의 학습지를 손수 제작했다. 그 학습지에는 <초등 필수 자신있게 따라쓰기> 처럼 바른 글씨체를 위해 따라 쓰기란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따라 쓸 글자들은 학교 이름, 학교의 교목, 마을 이름 등 학생들과 친숙한 이름들을 따라 쓰도록 구성했다. 수학적 창의적을 길러 주기 위한 코너, 영어, 재미난 퍼즐 등 다양하게 학습지 한 쪽 지면을 빼곡히 채워 아침 활동거리로 내 주었다.

 

아이들 중에 특별하게 아직도 기억나는 학생이 있다. 당시 6학년 이었던 김*민, 고*현 학생이다.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 이유는 정말 글씨체가 똑발랐다. 격자 정사각형 칸에 글자 한 자 한 자를 또박또박 써 냈다. 1년 내내 말이다. 뭉툭한 연필을 손에 꼭 쥐고 힘껏 눌러 쓴 흔적이 학습지에 고스란히 남았다. 약간 비뚤어진 글씨는 지우개로 지워 다시 고쳐 쓴 흔적까지 남길 정도로 정성껏 글씨를 썼던 학생들이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분명 자신의 주어진 역할들을 성실하게 감당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에 비해 오늘날 학생들은 어떨까? 아이패드, 키보드, 스마트폰 등 IT 도구의 발달로 글씨를 쓸 기회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지금의 아이들을 가리켜 '포노사피엔스'라고도 하지 않나. 정말 직접 손 글씨를 써 보낼 기회가 많지 않다. 가정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학교에서도 글 쓸 기회가 많지 않다. 대부분 교실 안에 있는 커다란 TV화면에 의지하여 학습 활동을 한다. 고작 종이에 쓸 일이 있다면 자신의 생각 몇 자 적는 일 밖에는 기록하는 활동이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상급학교로 진학하더라도 글씨 모양이 나아지지 않는다. 손에 필기도구를 쥐어본 적이 없으니 자신의 이름 석 자 쓰는 것도 지렁이 기어가듯이 흘려 쓸 뿐이다. 학생들만 그럴까? 아니다. 학교에 있어보면 성인이 된 교직원도 매 한가지다. 가끔 서명부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쓴 것을 보면 어른 글씨체라기보다는 초등학생 글씨체처럼 보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연 글씨를 바르게 쓰는 것이 필요할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대신 해 주고, 사물인터넷의 발달로 말로 명령을 내리는데 과연 글씨를 쓸 필요가 있을까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요한 것을 결정하고 서명을 할 때, 직접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들을 종이에 써야 할 일들은 시대가 변하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결정적인 순간에 정갈한 글씨체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면 그것이 결국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 모습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바른 글씨체는 바른 자세에서 시작된다. 힘주어 또박또박 정성껏 시간을 들여 쓰는 행위는 신체적으로 바른 자세를 갖게 만들어준다.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손에 힘을 줄 수 밖에 없다. 손가락 근육을 움직여 주니 뇌의 활동을 활발하게 만들어준다. 어릴수록 글씨 쓰기를 권장해야 하는 이유가 뇌의 발달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바른 글씨체는 자신감을 갖게 해 준다.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은 제법 자신만의 멋드러진 글씨체를 간직하고 있다. 서명을 할 때에도 나만의 글씨체로 종이에 족적을 남긴다. 젊은 교직원들이 서명지에 씌여진 글씨체를 보고 '글씨가 참 멋있다' 라고 한 마디씩 하곤 한다. 나와 비슷한 세대의 선생님들의 글씨체는 하루이틀만에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오랫동안 써 온 나날들의 흔적들이다. 반면 글씨를 많이 써 본 적이 없는 분들은 글씨가 가벼워 보인다. 


글씨 연습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반복적 훈련이라 생각하고 글씨를 써 보면 노력한 것만큼 글씨의 모양이 잡힌다. <초등 필수 자신있게 따라쓰기>와 같은 교정본을 따라 쓰다보면 어느새 글씨가 바르게 잡혀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 쓰도록 견본으로 나온 글들이 우리말 동시, 이솝 우화에 나온 글들이라 글씨체를 만들어가기도 하지만 어휘와 문장의 이해도를 높이는 능력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맞게 재미난 그림을 보고 따라 쓰도록 구성되어 있다. 어른들 글씨 교정할 때도 사용하면 좋을 듯 싶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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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래 -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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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미래가 있다라고 유현준 건축가는 말한다. 인류의 역사는 공간을 활용한 역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신석기 혁명의 유적지로 발굴된 터키의 차탈회윅에서도 움집 형태의 공간이기는 하지만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간은 권력으로도 활용되었다. 북아메리카의 고대 유적지 카오키아에는 높은 둔덕이 있었다. 종교적 의미이든 어떻든 최고 지배자는 높은 곳에서 아래로 지켜보며 통제의 장소로 활용했을 것이며 그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신성한 곳으로 보이지 않는 바리케이트를 설치해 놓고 계층 간 차별을 확실하게 했다. 공간을 힘이 작용하는 부분으로 활용한 흔적들은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유현준 건축가가 시종일관 책에서 강조한 부분은 책의 부제이기도 한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다. 코로나 이전에는 누구나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집단 감염을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국가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세우면서 공간은 정말 특별한 사람만이 활용할 수 있는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최대한 사람들이 밀집된 곳은 피해야했기에 한적한 곳, 소수의 몇 명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천정부지로 가격이 올라갔다. 앞으로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감염병의 발생 횟수는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은 공간마저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없는 지경에 놓이게 된다. 공유 공간을 확보하든지 특단의 대처가 마련되지 않으면 가상 공간에서만 대리만족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건축 전문가답게 대한민국 도시들의 건축물들을 새롭게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닭장처럼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형 도시들에서는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규제가 완화를 해서라도 좀 더 다양한 모양의 건물들이 도시를 채워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필로티 구조의 건물들이 문어발식으로 세워질수록 도시의 실제 활용 면적은 점점 줄어들게 되니 정부가 나서고 민간 업자들을 끌어모아 건물주들이 합의하에 주차공간은 지하화하며 1층의 매력적인 공간은 특색있는 상가로 돌려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현준 건축가다운 구상이다. 

 

LH투기로 국가 주도의 주택공급 정책이 빛을 바래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부족한 주택 시장을 공급을 해서라도 주택의 가격을 다운시켜야 한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 다만 젊은층들을 위한 최소형 주택이나 청년층도 자기 소유의 주택을 보유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할 것을 요구한다. 가령 임대주택이 보기에는 좋으나 결국 영원히 주택을 보유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빠뜨릴 수 있음을 우려한다. 실질적인 주택 소유가 잘못된 것은 아닌데 마치 주택 소유를 위한 노력들을 투기나 잘못된 윤리의식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이야기한다. 

 

공간의 변화는 교육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제적 효율을 따진다면 학생이 줄어드는 작은 학교는 과감히 폐교하는 것이 정답일 수 있겠지만 앞으로 다가올 기후변화와 전염병 발병을 예상한다면 밀집도가 어느 정도 완화된 작은 학교를 살려두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지금 당장이야 학생 수가 줄어드니 통폐합을 유도하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학생 수가 줄어든만큼 여유분의 학교 공간을 다른 방향으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며 작지만 강한 학교로 학생들이 멀리서도 찾아올 수 있는 학교로 변모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관련 법규가 완비되어야겠지만 말이다. 건축법이라든지 시설에 관한 규칙 같은 것들도 유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안전과 크게 밀접한 것이 아니라면 기존이 학교 공간을 파격적으로 디자인을 한다면 학생 뿐만 아니라 인근 주변 시민들의 공유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지금의 교실 규모(약 20평)는 학생 수 20명이 6~8시간 함께 지내기에는 부족한 공간임에 틀림이 없다. 20평 규모의 아파트에 20명을 집어 넣고 6~8시간 함께 있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욕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유현준 건축가도 강조했듯이 이제 공간은 필수적인 영역이 되었다. 없어서는 안 될 영역이 되었다는 말이다. 정치적 권력자들도 공간 활용을 어떻게 정책적으로 끌어내느냐에 따라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주거 문제, 교통 문제, 환경 문제 등 모두 공간과 관련성이 높다. COVID-19 이후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계층 간의 양극화가 심화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도 공간 활용에서 드러난다. 공간에 미래가 달려 있고 미래에는 누구나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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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배움의 주인이 되는가 - 학습자 주도성과 생성 교육
정기효 지음 / 비비투(VIVI2)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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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을 자극하는 것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신체와 온전히 동일하거나 익숙한 것들이어서는 곤란하다. 지금의 나와 이질적인 무엇과의 만남으로 자신의 사고와 신체의 배치가 흔들리는 경험이 배움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이자 시작이다. 이질적인 감응으로 욕망의 배치와 신체의 강도가 달라져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함으로써 세계를 변혁하는데 기여하는 일이 배움에 대한 나의 정의이다" (86~87)

 

저자는 초등학교 현직 교감이다. 교사 시절때부터 학생들의 '배움'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고 고민해왔다. 교육과정 안에서 학생들의 '배움'이 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어 직접 학생 개별 학점제, 학생 학점제, 학생 자율 학점제, 학생 자율 과정, 학생 자율 시수, 학생 생성 교육과정을 시도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앞두고 그의 노력들이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경상북도교육청에서는 시범적으로 학생 생성 교육과정을 도입하고 실험적으로 진행중에 있다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학생 생성 교육과정이란 무엇인가? 학생 생성 교육과정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저자가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은 학생이고, 학생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을 통해 진정한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의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은 주어진 교육과정일 뿐이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성취기준마저도 국가에서 일괄적으로 획일적으로 각 학교급에 따라 뿌린 주어진 교육과정의 한 부분이었다. 현장에서 남다른 시각으로 고민하고 애쓰는 교사들에게는 성취기준마저도 걸림돌이 되었고, 특히 COVID-19 로 인해 시행된 원격수업에서는 기존에 뿌려진 성취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원격수업과 대면수업이 혼합된 블렌디드 수업을 위한 성취기준의 수정이 있다고 하지만 이것조차도 국가에서 획일적으로 정한 성취목표일 뿐이다. 저자가 생각하기에는 겉만 번지르한 교육과정으로 다변화한 시대 속에서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강조하는 학생 생성 교육과정이란 무엇인가? 경상북도 일부의 초등학교에서 현재 실험적으로 진행 중에 있다. 관련 자료를 보면 국가에서 제시한 성취기준은 참고하되 학생이 직접 만든 성취기준을 가지고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과제를 수행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국가에서 제시한 수업 시수 중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교육과정 시수를 과감히 할애하여 학생들의 주도성과 창의성을 키워보자는 의미이다. 교사는 당연히 조력자로 피드백을 상시 염두해 두고 학생들이 만든 교육과정에서 앎이 제대로 생성되고 있는지 눈여겨 보는 역할을 한다. 학생 생성 교육과정이 지금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이것이 활성화되면 전 교과에서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배움은 누군가가 떠먹여주는 것이 아니다. 배움은 말그대로 학습자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가 느끼는 것이다. 교사가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배움 조차도 학습자가 아닌 누군가가 판단해 주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배움을 빙자한 학력 또한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강조한다. 학력의 잣대는 무엇이며 학력이 과연 변화되는 시대 속에 고정불변한 것인지도 의문을 제기한다. <어떻게 배움의 주인이 되는가>는 학교 현장에서 실천한 배움의 에세이기도 하지만 저자가 그동안 탐구한 교육 철학서이기도 하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얼마나 깊이 있게 책을 탐독해 왔으며 어려운 철학서를 붙들고 고민했는지 그려진다. 그렇기에 결코 가볍지 않는 책이자 이론에만 천착되어 현실을 터부시한 책이 아님을 대번 독자들이 알게 될 것이다. 앞부분에는 저자가 고민하는 교육, 학력, 배움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교육과정의 실제부분이 나오니 인내하며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다. 

 

현직 교감으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의 최선두에 서서 교사들과 고민하고 연구하는 저자의 모습이 존경스럽고 부러울따름이다. 하루아침에 쌓여진 깊이가 아니라서 과연 범접할 대상은 아니지만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교육과정에 대해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교육의 새로운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해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간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깊이 있는 내용은 아직 쉽게 이해하기 어려워 두고 두고 생각해 보며 문맥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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