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필수 자신 있게 따라 쓰기
좋은친구 편집부 지음, 황명석 그림 / 좋은친구출판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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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의 바른 글씨 예찬론

 

나는 지금 현직 교감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일이다. 강원도 산골 학교에서 5학년과 6학년을 한 교실에서 가르치던 시절이다. 일명 복식학급 담임교사였다. 학교 전교생 수가 30명 남짓했다. 교사는 딱 3명. 5학년과 6학년을 모두 모아 봤자 10명이 안 됐다. 학기 초 의욕적으로 담임교사인 내가 직접 학습지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월부터 12월까지 우리 반 아이들을 위해 나만의 학습지를 손수 제작했다. 그 학습지에는 <초등 필수 자신있게 따라쓰기> 처럼 바른 글씨체를 위해 따라 쓰기란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따라 쓸 글자들은 학교 이름, 학교의 교목, 마을 이름 등 학생들과 친숙한 이름들을 따라 쓰도록 구성했다. 수학적 창의적을 길러 주기 위한 코너, 영어, 재미난 퍼즐 등 다양하게 학습지 한 쪽 지면을 빼곡히 채워 아침 활동거리로 내 주었다.

 

아이들 중에 특별하게 아직도 기억나는 학생이 있다. 당시 6학년 이었던 김*민, 고*현 학생이다.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 이유는 정말 글씨체가 똑발랐다. 격자 정사각형 칸에 글자 한 자 한 자를 또박또박 써 냈다. 1년 내내 말이다. 뭉툭한 연필을 손에 꼭 쥐고 힘껏 눌러 쓴 흔적이 학습지에 고스란히 남았다. 약간 비뚤어진 글씨는 지우개로 지워 다시 고쳐 쓴 흔적까지 남길 정도로 정성껏 글씨를 썼던 학생들이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분명 자신의 주어진 역할들을 성실하게 감당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에 비해 오늘날 학생들은 어떨까? 아이패드, 키보드, 스마트폰 등 IT 도구의 발달로 글씨를 쓸 기회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지금의 아이들을 가리켜 '포노사피엔스'라고도 하지 않나. 정말 직접 손 글씨를 써 보낼 기회가 많지 않다. 가정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학교에서도 글 쓸 기회가 많지 않다. 대부분 교실 안에 있는 커다란 TV화면에 의지하여 학습 활동을 한다. 고작 종이에 쓸 일이 있다면 자신의 생각 몇 자 적는 일 밖에는 기록하는 활동이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상급학교로 진학하더라도 글씨 모양이 나아지지 않는다. 손에 필기도구를 쥐어본 적이 없으니 자신의 이름 석 자 쓰는 것도 지렁이 기어가듯이 흘려 쓸 뿐이다. 학생들만 그럴까? 아니다. 학교에 있어보면 성인이 된 교직원도 매 한가지다. 가끔 서명부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쓴 것을 보면 어른 글씨체라기보다는 초등학생 글씨체처럼 보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연 글씨를 바르게 쓰는 것이 필요할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대신 해 주고, 사물인터넷의 발달로 말로 명령을 내리는데 과연 글씨를 쓸 필요가 있을까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요한 것을 결정하고 서명을 할 때, 직접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들을 종이에 써야 할 일들은 시대가 변하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결정적인 순간에 정갈한 글씨체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면 그것이 결국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 모습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바른 글씨체는 바른 자세에서 시작된다. 힘주어 또박또박 정성껏 시간을 들여 쓰는 행위는 신체적으로 바른 자세를 갖게 만들어준다.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손에 힘을 줄 수 밖에 없다. 손가락 근육을 움직여 주니 뇌의 활동을 활발하게 만들어준다. 어릴수록 글씨 쓰기를 권장해야 하는 이유가 뇌의 발달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바른 글씨체는 자신감을 갖게 해 준다.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은 제법 자신만의 멋드러진 글씨체를 간직하고 있다. 서명을 할 때에도 나만의 글씨체로 종이에 족적을 남긴다. 젊은 교직원들이 서명지에 씌여진 글씨체를 보고 '글씨가 참 멋있다' 라고 한 마디씩 하곤 한다. 나와 비슷한 세대의 선생님들의 글씨체는 하루이틀만에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오랫동안 써 온 나날들의 흔적들이다. 반면 글씨를 많이 써 본 적이 없는 분들은 글씨가 가벼워 보인다. 


글씨 연습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반복적 훈련이라 생각하고 글씨를 써 보면 노력한 것만큼 글씨의 모양이 잡힌다. <초등 필수 자신있게 따라쓰기>와 같은 교정본을 따라 쓰다보면 어느새 글씨가 바르게 잡혀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 쓰도록 견본으로 나온 글들이 우리말 동시, 이솝 우화에 나온 글들이라 글씨체를 만들어가기도 하지만 어휘와 문장의 이해도를 높이는 능력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맞게 재미난 그림을 보고 따라 쓰도록 구성되어 있다. 어른들 글씨 교정할 때도 사용하면 좋을 듯 싶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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