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하얼빈의 11일
원재훈 지음 / 사계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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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영웅적 인간에게 그의 본모습보다는 자기 생각에 맞는 부분만을 확대하여 어울리지도 않는 동상을 만들어 세운다. 어설픈 동상이나 정치적인 외침보다는 안중근의 한마디를 되새기는 정신이 필요하다" (338쪽)

 

『안중근, 하얼빈의 11일』은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살펴 볼 수 있는 책이다. 「안응칠 역사」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생애에 대한 일대기를 살펴보면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지만 그가 이토를 저격한 후 순국하기 전까지남긴 말 한마디, 가족들(어머니, 동생들, 아내)에게 쓴 편지, 뤼순 형무소에서 검사와 간수에게 남긴 대화의 흔적들을 통해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정신과 삶의 목표를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하얼빈에서의 11일 간은 숨막힐 정도로 긴장감이 도는 기간이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거사를 성공적으로 해내야 했던 안중근 의사에게 있어서는 하루 하루가 무척이나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금이 없어 창춘행을 포기하고 다시 하얼빈으로 돌아와야했던 사연, 거사를 위해 지인(김성백)에게 돈을 빌려야 했던 사연, 거사일 당일 이토를 어디에서 저격해야 하는지 등의 모든 결정은 오로지 안중근 의사 본인에 의해 진행되어야만 했다. 거사 후에도 그가 자결하지 않았던 이유도 명백하다. 세계 만방에 대한 독립의 정당성과 동양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내야했기 때문이다. 순국하는 그날까지 안중근 의사는 죽음과도 싸워야했던 나날을 보내야했다.

 

이토가 저지른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내가 이토를 동양 평화의 적으로 삼게 된 결정적 단초였다. _27쪽

 

나는 이제 도마(안중근의 호) 안중근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이라는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 것이다. _28쪽

 

장소에 의해 삶이 결정된다. 안중근에게는 하얼빈이 그러했다. _60쪽

 

만주 벌판에 떨어지니 한 인간의 존재가 신과 연결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_66쪽

 

로맹 롤랑은 영웅이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자" 라고 했다. _92쪽

 

이순신 장군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를 미리 알고 준비를 하는, 즉 이겨 놓고 싸우는 그 정신이다._104쪽

 

역사란 참으로 사소한 일로 위대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_140쪽

 

상하이에서 안중근은 두 개의 큰 벽을 만나게 된다. 안중근의 눈에 비친 중국에 사는 동포들은 조국의 운명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단 먹고살기에 급급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조국은 '먼 나라' 일 뿐이었다. _210쪽

 

문은 걸어 잠그면 벽이 된다. _ 202쪽

민영익과 같은 고관대작이 결코 문이 될 수 없음을 절감하고 길을 떠났다. _203쪽

 

 

뤼순 지방법원으로 결정한 이유는 청일전쟁의 전리품으로 점령한 뤼순이 국제 여론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단독판사 제도를 시행한 탓에 일본 정부의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_210쪽

뤼순은 일본과 멀리 떨어진 곳이고 단독판사가 재판을 진행하기 때문에 안중근 사건을 일본 정부의 뜻대로 끌고 갈 수 있었다. _211쪽

뤼순 감옥은 안중근 의사와 더불어 민족의 선각자 단재 신채호와 우당 이회영이 옥사한 곳이기도 하다._241쪽

 

삼흥학교(안중근 의사가 가산을 팔아 진남포에 세운 학교)는 훗날 오성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_231쪽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독방은 다른 옥사에 비해 매우 특별한 장소였다. 형무소장의 집무실과 거의 같은 규모였다._244쪽

일본에서 특수 제작된 호송용 마차가 바로 일제가 안중근 의거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물이다._260쪽

 

두려움은 욕심에서 오는 거지요. 내가 동양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맥락과 이어집니다. 욕심을 버리면 두려움도 없습니다. _264쪽

위이불맹, 위엄이 있으되 사납지 않다. 정치를 하기 위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 논어. _264쪽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는 친일파와 하루하루 살림 걱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무관심에 안중근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외로웠다. _276쪽

 

단지 동맹을 정천 동맹이라고 명명하고. 1909년 3월 5일이었다. 당시 엔치야 하리 마을에서 결성된 '바른 하늘 아래 맹세'인 '정천 동맹'은 대부분 의병 출신 동지들이었다. _279~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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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과 걷다 - 크라스키노에서 상하이까지
박영희.최종수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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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자세히 보면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하얼빈도 한반도에 아주 멀리 떨어진 지역이고 더구나 의거후 하얼빈에서 남쪽 뤼순으로 호송되어 간 거리도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안중근 의사는 의병 활동 중 국내 진공 작전에서 승리를 한 적도 있었지만 패전을 한 뒤에는 천신만고 끝에 연해주 크라스키노라는 곳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크라스키노, 포시에트, 블리디보스토크는 안중근에게 있어 독립 운동을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이미 그곳에는 한인 사회에서 명망이 두터운 최재형과 이범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안중근의 독립 운동에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 주었다. 

 

크라스키노에는 단지동맹비가 세워져 있다. 안중근의 손도장 기념비다. 단지동맹은 1909년 2월 7일 안중근을 포함한 12명의 동지들이 대한독립을 위해 뜻을 모은 날이다. 안중근,김기룡, 백남규, 황길병, 조순응, 강기순, 정원주, 박봉석, 유치홍, 김백춘, 김천화. 

 

"오늘 우리가 손가락을 끊어 맹세함으로써 한마음으로 단체를 이루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어떻소?" (16쪽)

 

"고향에서 사서(논어,맹자, 중용, 대학) 삼경(시경,서경,주역)을 공부한 안중근은 세 가지를 먼저 생각했다. 이천만 동포, 이토 히로부미, 그리고 신앙이었다" (70쪽)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신문사 <대동공보> 편집장 이강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가 특급열차로 하얼빈역으로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신문사 <대동공보>는 하얼빈 의거 당시 안중근이 소지하고 있었던 총기, 그리고 경비를 제공해 주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안중근은 블라리보스토크에서 기차를 타고 우수리스크, 포그라니치니, 쑤이펀허, 하얼빈으로 이동한다. 함께 동행한 이는 우덕순이며 하얼빈에서 조덕순과 우동하를 만난다. 우동하는 러시아 통역을 위해 함께 한다.  참고로 안중근의 세례명은 도마(토마스)이며 한자로 다묵이라 표기한다. 

 

'무링'이른 곳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 후 안중근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안창호 선생이 앞장 서 그들의 가족들을 '무링'으로 피신시킨다. 무링에서 일본의 밀정에 의해 안중근의 장남 분도가 의문사를 당한다. 낚시터에 놀러갔다가 그곳에서 낯선 이로부터 받은 과자를 먹고 죽음을 당한다. 아마도 안중근의 가족을 놀린 일본 밀정에 의한 행동인 것 같다. 

 

'창춘'은 안중근이 호송되면서 하루 저녁 정차한 곳이다. 관동 헌병대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뤼순'은 청일전쟁의 전리품으로 일본이 지배하고 있던 항구 도시로 일전에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뤼순'에다가 청,일,한국 3개국이 공동 경제구역을 만들자고 제안한 바가 있다. 뤼순 형무소, 뤼순 법정에서 안중근은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후 안중근의 남은 가족 김아려 여사와 두 아이는 상하이로 이주하며 독립 운동을 하러 온 많은 청년들이 잠시 머물다가 가는 안식처로 사용되었다. 

 

안중근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면 한국 근대 독립운동의 발자취와 일맥상통함을 느낀다. 기회가 닿는다면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연해주 일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통해 고려인들의 독립 운동 흔적지, 하얼빈과 뤼순 지역을 탐방하고 픈 마음이 든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까지는 780킬로미터. 국경이 가까워오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안중근은 우덕순과 미리 의견을 나눴다. 첫째, 이토 히로부미를 반드시 쏠 것. 둘째, 달아나지 말고 총을 내던진 다음 코레야 우라(대한 독립 만세)를 크게 외칠 것. 셋째, 산 채로 잡혀 우리의 억울함과 정당성을 세계에 알릴 것." (84쪽)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거사를 행한 뒤 권총으로 자살을 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법정에서 대한국민의 억울함과 정당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인만큼이나 러시아 정부도 내심 고려인 추방을 반겼다는 점이다.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내쫓을 수만 있다면 두 가지 계획은 분명해 보였다. 황무지 개발과 군량미였다. 실제로 스탈린 정부는 고려인들이 수확한 고식을 러시아 혁명군 군량미로 사용했다." (88쪽)

 

안중근과 동시대를 살았던 연해주 지역에 있었던 우리 한인들은 러일전쟁 후  6000킬로미터 떨어진 중앙아시아 벌판에 버려지게 되었다. 일본이 스탈린 정부에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연해주에 있었던 우리 동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우리 한인들이 까레이스끼가 되어 집단 이주하게 되었으니 지금의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우리의 후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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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안쏠로지 - 다시 안중근을 읽는 시간
(사)안중근의사숭모회/기념관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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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모든 것, 안쏠로지

 

이 책에는 안중근 의사의 옥중 집필서이자 안중근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가 번역되어 있다. 한문으로 된 안중근 자서전이 한글로 읽기 쉽게 번역되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구분없이 한 번 쯤은 읽어봐야하지 않을까. 최근 영화관에서 상영된 정성화 주연 「영웅」의 스토리가 안중근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옥중에서 안중근 의사가 자신의 자서전을 쓰지 못했다면 안중근 의사의 32년 개인사를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에 『안응칠 역사』는 소중한 사료로 취급되어야 할 것 같다. 

 

『안응칠 역사』에는 안중근 의사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노력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 한을 풀기 위해 고향을 떠나 의병에 가담하고 목숨을 잃을  뻔 한 여러 번의 고생 끝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둥지를 트는 과정이 담겨 있다. 어렸을 때에는 죽을 고비도 넘긴 사연, 아버지와 도와 동학당과 전투를 벌인 일, 부패한 관료들의 민초들을 향한 몹쓸 짓들을 방관하지 않고 불의를 꼬집다 변고를 치룬 일, 아버지 안태훈 진사가 성당에서 서너달 숨어 지내면서 신앙을 받아들이고 그의 가족들 모두 천주교로 입교한 이야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의병으로 국내 진공 작전을 펼친 일, 그리고 영화 「영웅」의 주 스토리인 하얼빈 의거의 드라마틱한 사건의 전말, 뤼순 형무소에서 사형 직전까지 만났던 간수들, 일본인 법관들, 동생들과의 회후 등의 일화가 『안응칠 역사』에 일일히 담겨 있다. 

 

특히 『안응칠 역사』 즉 안중근이 자서전을 쓴 시점이 무척 중요한 것 같다. 사형 선고를 받은 후라는 점이 보통 사람과는 다른 면이다. 짧은 32년의 자신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기술하였으며 자신의 이토를 저격한 이유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영화 「영웅」에서도 미조부치 검찰관 앞에서 이토를 가해한 이유 15가지를 분명하게 말했다. 이 내용도 자서전에 실려 있다. 

 

안중근은 국내외 정세를 정확히 판단하는 전문가임을 자서전에서도 살펴 볼 수 있다. 

 

"더구나 일본은 불과 오 년안에 반드시 러시아와 청나라, 미국 등 세 나라와 전쟁을 하게 될 것이므로, 그것이 한국의 큰 기회가 될 것입니다" (212쪽)

 

먼 훗날의 일본의 패망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안중근 의사는 한국 사람이 일본 법정에서 일본 사람들에 의해 자신의 죄목이 판결되는 점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만국공법으로 처리되어야 하는 이유를 자선전에서 밝히고 있다. 

 

"그때 김두성과 이범윤 등이 함께 의병을 일으켰는데 그 사람들은 전에 이미 총독과 대장으로 임명된 이들이다. 나는 참모중장으로 임명되었다." (214쪽)

"현재 만국 공법에 사로잡는 적병을 죽이는 법은 없소. 어딘가에 가두어 두었다가 뒷날 배상을 받고 송환하는 것이 법이오."(217쪽)

 

의병 활동을 하면서 풍찬노숙한 사연도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더구나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어 인가도 전혀 없는데, 사오 일을 헤매면서 한 끼니도 먹지 못해 배가 고프고 발에는 신발조차 신지 못했다. 굶주림과 추위의 고통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풀뿌리를 캐어 먹고 담요를 찍어 발을 싸매고서 서로 위로하고 보호하며 무작정 걷노라니" (221쪽)

 

독립운동가의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희생을 통해 이 나라가 지금껏 지켜 올 수 있었음에 숙연해질 수 밖에 없다. 

 

영화 「영웅」 시작과 동시에 안중근 역할을 맡은 정성화 배우가 하얗게 눈 덮힌 들판에서 동지 열 두사람과 함께 손가락을 끊어 함께 맹세하는 장면이 나온다. 안중근 자서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마침내 열 두 사람이 각각 왼손 약지를 끊어 그 피로 태극기 앞면에 글자 넉 자를 쓰니 대한독립이었다." (227쪽)

 

영화 「영웅」 의 감동이 아직도 뇌리에 새겨 있다. 덕분에 안중근 관련 책을 찾게 되고 구제적으로 관련 내용들을 읽으니 마음 가짐이 새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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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 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될 거야! - 2020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job? Special 시리즈 6
주성윤 지음 / 국일아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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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초등학교 졸업식에 가면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유치원 졸업식까지 누구나 할 것 없이 장래희망에 관한 설문 조사에서 압도적으로 차지했던 직업이 있었다. '크리에이터'.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에 1인 창작자로 활동하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에 동심마저 움직였던 같다.

중고등학교 졸업식도 그렇지만 초등학교 졸업식에는 특히 선생님이 정성껏 만든 장래희망 프리젠테이션으로 식장을 찾은 학부모 및 내외빈들을 흥미롭게 한다.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내 자녀가 장래에 어떤 직업을 희망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이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장래에 꿈을 꾸는 진로희망으로 과학자, 대통령, 교사, 검사, 판사, 기술자 등 부모들이 꿈꾸는 것과 거의 다를 바 없을 정도의 진로를 희망하였다. 반면 2020년대를 넘어서면서 압도적으로 등장한 진로 희망이 있다면 바로 '크리에이터'다.

직업의 종류가 달라지고 있고 새로운 디지털 환경 속에서 빈부의 격차가 양극화되고 있다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에 꼭 맞아 떨어지는 말이 아닌가 싶다. 과거에는 물질적 자본 뿐만 아니라 중간 거래터가 있어야 자신의 사업을 차릴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는 공간이자 일터이다.

디지털 시민권자이기를 포기한다면 결국 영원히 실업자로 살아가겠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일 정도로 앞으로의 시장은 대부분 디지털 플랫폼에서 이루어지기에 누구나 모두 늦었다고 생각할 때 반드시 포기하지 말고 덤벼 들라고 이야기한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 ‘2021 초ㆍ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결과를 보면 초등학생의 희망 직업 1위는 운동선수(8.5%)였다.

운동선수는 2019년부터 계속 초등학생 희망 직업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위는 의사(6.7%)로, 전년 교사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선 이후 2년 연속 순위를 지켰다. 3위는 교사(6.7%), 4위는 크리에이터(6.1%), 5위는 경찰관ㆍ수사관(4.2%)이었다. 6~10위는 조리사, 프로게이머, 배우ㆍ모델, 가수ㆍ성악가, 법률전문가로 조사됐다.

 

초등학생 희망직업을 남학생과 여학생으로 나워서 비교해보자면

운동선수, 의사,크리에이터,교사가 가장 선호하는 희망직업으로 나타났으며 남학생은 운동선수,크리에이터를 가장 선호하고 여학생은 교사,의사를 선호하는 희망직업으로 1위와2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될 거야! 』에서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콘텐츠 기획 전문가, 제작 크리에이터, SNS 마케팅 전문가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직접 학생들이 워크북을 통해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하였다.

 

앞으로 교육은 지식 암기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지식을 활용하고 분석하여 융합하는 역량이 필요한 시대다. 있던 일자리도 없어지는 추세에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미래 사회에 활용성이 있는 교육과정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은 시골학교인 충북 진천 초평초등학교에서 체계적 미래 교육을 잘 시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가 주민들의 노력으로 미래 교육인 코딩 교육을 통해 미래 사회에 강한 사람으로 키우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앞으로의 직업 판도도 기존의 상식을 뛰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는 익숙한 단어가 된 '크리에이터'가 미래의 각광받는 직업군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에스토니아의 학교에서의 수업을 보면 그들의 저력을 짐작할 수 있다. 유치원부터 코딩 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한다. 프로그램을 짜고 실행하며 저절로 논리를 배우고 수학적 사고력을 키운다. 에스토니아는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전자시민을 모집하고 있다. 우리나라 돈으로 12만원이면 에스토니아 디지털국가를 취득할 수 있다고 한다. 디지털 시민증만 있으면 어느 누구나 사이버상에서 사업을 열 수 있다고 한다. 최대한 문턱을 낮춘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에스토니아를 손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이버 세상이 곧 경쟁력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신의 직업에서 새로운 안목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면 크리에이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진로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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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 나는 청와대에서 일할 거야! job? 시리즈 35
박용찬 지음, 정종석 그림, 김은경 감수 / 국일아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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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회의 특징을 불확실성이라고 한다. 다양한 품종이 서식하는 숲이 자정 능력이 강하듯 미래 사회는 다양성에 기초한 통일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가 말한다. 복잡한 미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기초 능력 함양이 미래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이다. 북유럽의 핀란드가 진로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교육과정 속에 학생들이 미래에 직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각종 능력을 실질적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변화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들 가정교육과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기반의 융합교육)의 모범사례로 이스라엘 교육과, 인문학교육과 다중언어교육의 모범사례로 미국 교육을, '착한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주도적 학습을 실천해 가는 일본식 교육 사례를 여러 채널을 통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체계적인 영국의 미디어교육과 소프트웨어교육, 마이스터 과정과 진로교육을 강조하는 독일 교육 등 세계 각국은 저마다 미래 사회를 주도하기 위해 유초등 교육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자유학기제는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심어 주는 기간이다. 점수만 높여 좋은 대학에 가면 좋다는 생각은 옛날 방식이다. 우리 자녀들이 미래에 살아갈 사회는 협업이 강조된다. 참 배움은 지식만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다양한 체험을 통해 현장에서 실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학기제를 잘 활용하여 어린 시기에 학생들이 일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경험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진로 선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자기의 재능과 소질과 관심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재능보다는 '관심'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로록 자꾸 권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진로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국일아이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발견하고 있는 Job? 은 이런 의미에서 다양한 관심을 가져볼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손쉽게 책장을 펼쳐 볼 수 있는 내용 구성과 부담없이 읽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작은 백과사전이 아닐까 싶다.

 

'ESBZ' 베를린 학교의 미래학교를 향한 과감한 도전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독일도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도 우리만큼 경쟁을 강조하는 시스템을 갖춘 나라다. 초등학교 4학년 쯤되면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 학교 또는 가정에서 학생들이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시간적으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에는 간접 체험 형식을 빌려 접근해도 좋을 듯 싶다. 국일아이 출판사의 Job? 시리즈는 매 권마다 마지막 부분에 '워크북' 형식으로 읽은 내용을 정리함과 동시에 흥미를 가지고 스스로 평가해 보는 코너다. 책을 다 읽고 해 봐도 좋겠지만, 호기심이 많은 학생들은 책을 읽기 전에 거꾸로 학습해 봐도 좋을 듯 싶다.

 

중학교부터 자유학기제, 자유학년제가 도입되어 학생들이 자신을 성찰하고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일랜드는 전환학년제를 통해 공교육이 다시 살려냈다.

교육과정 안에서 수업 시간을 통해 실제적으로 역할을 정해 직업이 하는 일과 책임, 권한과 의무 등을 토의와 토론을 통해 공부해 보는 것도 참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꼭지마다 우리 역사 속에서 관련 개념들을 정리해 놓은 부분이 있다. 어른들이 읽어봐도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있는 내용이 학생들의 눈높이 수준에 맞게 정리 되어 있다.

 

대통령을 돕는 여러 사람들이 하는 일과 조직표를 보며 대통령이 근무하는 곳이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짜여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옛날과 달리 오늘날 대통령과 같은 최고의 리더들에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가 커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진정성 있는 리더를 원한다. 리더는 언제나 자신감이 있고 강해야 한다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느끼는 것을 투명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리더가 리더십의 본질과 정체성으로 돌아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진실되게 소통하고 진실한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투명성과 정직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조직의 리더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리더인 대통령에게도 시민들이 원하는 바가 '진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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