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기계 vs 생각하지 않는 인간 - 일과 나의 미래, 10년 후 나는 누구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홍성원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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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 도래와 함께 대두되었던 문제 중 하나가 '일자리 감소' 였다. 과연 미래에는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할까? 여러 가지 분석에 의하면 기존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되 전체적인 일자리 수는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반대 의견도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발달하더라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이 더욱 확대되기에 일자리 감소에 따른 두려움과 불안은 가질 필요가 없다라고 한다. 심지어 단순 노동, 사무직, 반복 패턴에 이루어지는 직종들도 살아 남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런 분석은 자신감인가? 아니면 오판인가? 저자는 <생각하는 기계 VS 생각하지 않는 인간>에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는 해법을 제시한다. 제목에서 볼 수 있다시피 해법의 키워드는 '생각'에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두려운 것은 과연 인간 고유의 영역인 '생각'에 까지 미칠 것인가? 라는 점이다. 단순 연산이나 사람이 주입해 주는 데이터에 의해 움직여지는 수준에서 발전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다면 분명 인간에게 위협이 될 것이다. 반대로 주도권이 사람에게 있고, 사람에 의해 움직여지고 협업의 파트너로 사용되어진다면 충분히 활용 가치가 있다고 본다. 결국 주도권 싸움에는 '생각'을 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과연 기계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하다. 반면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번뜻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스마트폰이다.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스마트폰때문에 편리한 점도 있지만 '생각'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생각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뿐인가. 왠만한 사무 작업들이 컴퓨터에 의해 진행되고, 발달된 프로그램 하나면 복잡한 문제도 단시간안에 해결되기에 깊게 생각하기 보다는 쉽게 정보를 얻고 검색하려고만 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면 문제다. 로봇과 인공지능에 맞서 유일하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점 중에 하나가 '생각' 즉 생각하는 능력, 사고력이다. 더 나아가 공감하는 능력. 생각을 갈고 닦지 않으면 발달하지 않는 법이다. 기성세대를 향하여 꼰대라고 부른다. 과거 지향적인 언행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 아닌가 싶다. 새롭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고 기존의 관행에 빠져 변화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불러지게 된 것 같다. 나이를 떠나 젊은 사람들도 새로운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의 생각의 틀 안에 갇혀 고집한다면 이 또한 꼰대가 아닐까? 

 

조직 안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인식이 많이 변화되었다. 예전에는 대인관계 능력을 최고의 항목으로 생각했던 것에 비해 오늘날에는 일을 잘 하느냐, 새로운 시대에 발빠르게 대응하느냐 등 창의성과 관련된 항목을 우선으로 여긴다. 직장 안에서 상사에 비위를 잘 맞추기 위해 술 잘 먹고 회식 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승진하는 옛 모습과는 반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새로운 제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을 직장에서 요구하게 되었다. 결국 '창의성' 에 달려 있다. 창의성은 깊은 사고력에서 나온다. 저자는 사고력 계발을 위해 독서를 권면한다. 혼자 자발적으로 할 수 없다면 독서 모임에라도 가입해서 억지로라도 하라고 말한다. 인문학 고전은 사람의 내면을 통찰하게 하고 시대의 흐름을 분석하며 판단할 수 있는 사고력을 키워주는 으뜸되는 도구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정해졌다! 생각하려고 하는 기계에 맞서 인간도 이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학교 안에 교감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시대다. 창의성과 공감력은 필수 조건이다.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예전의 관행대로 일을 하려는 습관이 자신도 모르게 철벽처럼 쌓여 있을 수 있다. 경청하며 공감하기 보다 지시하고 판단하려는 우월감이 나타날 수 있다. 새로운 변화보다는 기존의 안정을 고수하기 위해 복지부동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는 교감' VS '생각하는 교사' 라는 구도로 진행된다면 교감의 자리는 분명 위태해 질 것이다. 생각하기 위해 끊임 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한다. 독서도 생각을 끌어내지만 글 쓰는 것만큼 생각을 표현하는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교감 일기든 독후감이든 하루의 단상이든 꾸준히 생각한 바를 글로 써야 사고력의 후퇴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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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는 그런 게 아니고 - 밀레니얼도 모르는 모바일 네이티브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53
고승연 지음 / 스리체어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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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젊은 교사들이 유입되고 있다. 강원도 oo시는 한 때 신규 교사를 포함한 20대 젊은 교사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교사의 50%를 넘을 때도 있었다. 3년 간 그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꽤 많이 속앓이를 많이 했던 경험이 있다. Z세대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다. (Z세대를 저자는 1996년 이후 태어난 이들을 말하며 여자 같은 경우에는 교직에 입문해 있다) 

 

나는 X세대다. 기성 세대들이 X세대를 바라보는 시각도 곱지 않았다. 개성이 강한 세대라고 여겨졌으니 말이다. 그런 X세대가 교감이다. 신규 교사들인 Z세대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막상 이 책을 읽어보니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감염병 시대가 도래되었고 학교 근무 문화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도록 순식간에 달라지고 있다. 수업의 형태도 원격 수업이 이젠 자연스러울 정도로 되어버렸다. 언택트 시대에 X세대들이 우왕좌왕할 때 Z세대들은 물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제 Z세대에게 배워야할 정도다. Z세대들이 교사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X세대인 나의 사고 전환과 행동 변화가 불가피할 것 같다.

 

그렇다면 Z세대의 특징을 보자. 

 

첫째, 그들은 느슨한 연대와 인간적 거리두기를 노멀로 알고 있는 세대다. 직장 안에서 촘촘한 인간 관계를 거부한다. 자신의 취향과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데 가급적 거리두기를 하기를 원한다. 사생활 언급은 특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교감이라고 해서 과도한 친절을 베풀거나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다가서는 것을 부담을 넘어 경계선을 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당연한 모임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Z세대에게는 왜 모여야 하는 지를 이해시키지 않고서는 참여시키는 행위를 강요라고 생각한다. 

 

둘째, 수평적 상호 존중의 문화, 성과와 결과로 말하는 문화, 가치 있는 헌신의 문화를 요구하는 세대다. 조직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 관계와 서열을 강조하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Z세대는 워라밸과 조직 문화를 선호한다. 수평적 조직 문화의 대명사인 '카카오'에서는 창업자를 포함한 임직원 모두 동일하게 영어 이름으로 부르며 평등한 직장 구조를 실천한다고 한다. 심지어 임직원이라고 해서 별도의 근무실이 없다고 한다. MZ세대가 원하는 직장 조직 문화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떠해야 할까? 예전과 달리 회의 문화도 조직 문화도 민주주의화 되었다고 하지만 공무원 조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직위를 파괴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실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조정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며 이렇다. 나이와 위계를 불필요하게 강조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는 것, 강제로 회식 문화를 조성하는 것, 꼰대로 표현되는 기성세대의 논리를 주입하지 않는 것 등은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셋째, Z세대가 따르는 리더의 유형은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교감의 위치는 '듣는 위치' 여야함은 분명하다. Z세대 뿐만 아니라 다른 교직원분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부분이다. 아닌 것에 대해 시정을 요구할 때 교감은 수정할 수 있는 것과 수정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 의견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일 때 Z세대는 참지 못한다. 

 

이제 학교는 Z세대와 함께 일하는 법을 논의해야 할 때다. 태어날 때부터 모바일 네이티브인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그들이 마음껏 자신의 특기를 살려낼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해야 한다. X세대인 교감이 바라보았을 때 Z세대가 다른 것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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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된 각인 - 우리가 교회라고 오인하는 12가지 모습 한국 교회 탐사 보고서
김형국 지음 / 비아토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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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목교회네트워크 지원센터 대표인 김형국 목사는 12개의 키워드로 한국 교회를 진단하고 있다.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난 가짜를 진짜로 오해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교회는 원래 이런 겁니다" 라고 강하게 외치는 그의 목소리를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김형국 목사는 기독교가 본질에서 벗어났을 때 나타나는 3개 현상을 책의 소주제로 삼았다.

 

첫째, 숨이 막히다는 거다. 교회가 사회를 걱정해야 되는데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왜 그럴까? 교회하면 숨이 헉헉 막히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시대와 동떨어졌다는 거다. 기독교가 조선 땅에 들어왔을 때 그야말로 혁신 그 자체였다. 시대를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여성의 교육을 위해 여학교를 세워갔고 의료와 복지의 사각지대를 메워 나갔다셋째, 비상식적이라는 거다. 최소한의 사회적 상식마저 지키지 않는 곳이 교회라는 점이다. 교회 안의 목회 세습, 재정 불투명, 권력화 등은 많은 사람들의 눈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이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이렇게 생각한다면 교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뭔가 개혁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심정으로 김형국 목사는 12개의 키워드로 현실을 진단하고 기독교의 본질을 찾기 위한 조언을 서슴치 않고 제시하고 있다. 비판만 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는다면 욕 먹기 쉽상이다. 나들목교회네트워크에서부터 시작한 실천이 한국 교회 전체로 파급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위조된 각인>에서 제시한 12개의 키워드는 이렇다. 속박, 위선, 광신, 헌신, 제사 거부, 배제와 혐오, 정교분리, 남성 우위, 전도, 헌금, 이익집단, 교회 운영. 교회에 각인된 위조된 모습이 다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본질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께서 가르쳤던 가르침에 있다. 그 가르침은 희생과 섬김이다. 기독교가 사회에서 희생하고 섬길 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익 집단으로 변질되거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될 때 예수는 없고 오직 사람이 중심이 된 종교가 될 수 밖에 없다. 기독교가 강조하는 믿음은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반대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 위해 믿음이 필요한 거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 감사해야 한다. 가난할 때, 고통 당할 때, 병들 때 조차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하는 것이 기독교다. 부패된 곳을 정화시키는 일을 기독교가 해야 한다. 노예해방을 위해 전 생애를 바쳤던 영국의 상원의원 윌리엄 윌버포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으로 비상식적인 제도를 다시 제자리로 찾아오는데 사용했다. 윌리엄 윌버포스 혼자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의 뒤에서 기도해 주는 든든한 공동체가 있었다고 한다. '클래팜 공동체'다. 그리스도인에게 건강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배타적인 종교로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독교가 강조하는 '진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종교는 배타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배타성은 아마도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꽉 막힌 사고,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답답함, 자신의 종교만 강조하는 이기주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제사 거부, 베제와 혐오로 각인된 기독교는 명예를 회복해야 할 것 같다. 기독교의 본질대로 살아간다면 기독교만큼 효를 강조하는 종교가 없다. 기독교만큼 다양성과 포용성을 갖춘 종교가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변질된 모습이 각인되어 버렸다. 김형국 목사가 제시하는 상황 속 대응 방법을 한 번 읽어보시라. 진리를 고수하되 지혜롭게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전도의 핵심은 내용이지 형식이 아니다. 다른 이들을 배려하지 않는 다양한 형식의 전도는 가장 중요한 내용인 예수를 전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헌금은 우리의 모든 소유가 내 것이 아님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기독교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불의한 상황 속에서 분리되어 외딴 섬처럼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 변화하는 과정에 있고 성장 중에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삶 속에서 부족한 모습 그대로 살아가되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을 끝까지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독교의 위조된 각인을 벗겨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 싶다. 좁은길, 희생과 섬김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위조된 각인이 바윗돌에 새겨진 것처럼 영원히 굳어 질 수도 있다. 기독교는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 말보다 삶이 우선 되어야 한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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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박! 춤추는 변기 저학년 씨알문고 2
박현숙 지음, 박규빈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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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사람이나 동물이 먹은 음식물을 소화하고 난 뒤 항문을 통해 몸밖으로 내보내는 찌꺼기라고 한국어사전(다음)에 나와 있습니다. 한자로 '변'이라고 하죠. 똥 보다는 어감 상 부드럽게 들립니다. 아뭏든 '똥'이든 '변'이든 우리의 입으로 들어간 음식물이 우리의 신체 기관을 통해 나오는 것 뿐인데 썩 기분좋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냄새 또는 생김새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을 애정을 담아 귀엽게 부를 때 '똥강아지'라는 말을 씁니다. 할머니가 손주를 부를 때 흔히 쓰이지요. 그래도 좋은 느낌보다는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단어들이 많습니다. 똥장군, 똥지게, 똥바가지, 개똥처럼. 새 중에서 텃새는 아니지만 아주 친숙한 새인 개똥지빠귀도 있습니다. 정확한 명명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종류라서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가장 터부시하는 낱말인 똥을 이야기 소재로 많이 활용합니다. 박현숙 작가도 똥을 소재로 <오대박! 춤추는 변기>를 쓸 구상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책 속 주인공은 지독한 변비 때문에 고생하며 천덕꾸러기 취급 당했지만 똥 때문에 일약 스타가 됩니다. 똥을 소재로 기가막힌 발명품을 만들었거든요. 변비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생활 밀착형 발명품을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희 가정에서도 똥에 관련된 사연이 참 많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의 얘기부터 해 보겠습니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1학년 때 입니다. 반 친구들이 다 보는 교실에서 의자에 앉은 체로 그만 똥을 싸 버린 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때 수업 시간이었나 봅니다. 손 들고 화장실에 다녀오면 되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나봅니다. 순식간에 똥을 팬티에 넣어 버렸습니다. 제 딴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들키지 않겠지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똥이라는게 냄새가 보통이 아니지 않잖습니까? 냄새 때문에 그만 들통 나 버립니다. 당장 교실 밖으로 쫒겨 났습니다. 그리고 뒤처리를 하지도 않은 체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바지 사이로 똥이 다 새어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때 그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40년도 넘은 세월인데 말이죠. 

 

두 번째 똥과 관련된 충격적인 사건이 제게 일어납니다. 똥을 누다가 그만 똥통에 빠져 버렸씁니다. 옛날 화장실은 지금과 전혀 다른 푸세식 화장실이었습니다. 땅 속에서 큰 고무 함지박 같은 것을 묻고 그 위에 널판지 두개를 올려 놓은 것이 옛날 저희 집 화장실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널판지에 잘못 발을 올려 놓았다가 똥통에 빠진 것입니다. 비명 소리에 어른들이 달려와 구출해 줬기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이미 저 세상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세 번째도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저는 방구를 자주 뀝니다. 어떨 땐 방구를 뀌다보면 약간의 똥이 튀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찝찝한 느낌이 오래 갑니다. 똥과 관련된 경험으로 글을 쓰다보니 저도 금새 작가가 된 기분입니다. 저희 집 자녀 중에 한 명은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똥의 굵기가 어른인 저의 두 배만합니다. 늘 화장실 물을 내릴 때면 변기가 막히는 일이 생깁니다. 변기를 뚥는 기구를 활용해서 몇 번 뚫어 보았지만 정말 힘든 일입니다. 얼굴에 땀이 범벅이고 뚫는 과정 속에 똥물이 튀기도 합니다. 아내가 참다 못해 팔 걷어부치고 나섰습니다. 나무젓가락을 이용해서 굵은 똥을 토막 토막 냅니다. 그리고 물을 내렸더니 귀신같이 쏙 내려갑니다. 그래서 매번 우리 집에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처음에는 비위가 상했는데 자꾸 하다보니 익숙합니다. 아마도 자녀 똥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남의 똥이라면 감히 엄두도 못 내겠죠? ^^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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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개념 잡는 기후변화 - 9가지 핵심 질문으로 빠르게 마스터하는 중학 과학의 기초 단번에 개념 잡는 시리즈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 외 지음 / 다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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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현정의 뉴스 쇼에 출연한 진화생물학자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가장 큰 폐해로 '생물 다양성'의 감소로 언급했다. 2021년 여름은 유난히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폭우로 도시가 물에 잠기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이제 기후변화로 생기는 자연재해는 지구촌 곳곳에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사람도 많은 피해를 입지만 생물들의 피해도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생물의 피해는 전체 생태계를 흔들며 고스란히 피해가 사람에게 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기후변화로 생기는 생물 다양성의 감소는 심각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북극곰 개체 수의 감소다. 빙하 위에서 체력을 비축한 뒤 사냥을 통해 먹이를 구하는 북극곰은 빙하가 곧 생명과 직결된다. 기온의 상승으로 빙하 마저 사라지고 있으며 북극곰은 쉴 만한 공간이 사라지자 사냥도 감소하고 먹이를 먹지 못하니 번식력도 떨어져 결국 개체 수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기후 변화에 가장 민감한 양서류도 마찬가지다. 개구리 개체 수의 감소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곤충의 천적인 개구리의 감소는 사람들의 쾌적한 환경과도 직결된다. 개구리를 잡아먹는 동물들은 먹이가 사라지니 계속해서 개체 수가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가다보면 생태계 환경이 파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서늘한 기후에 자라는 감자는 서식지의 감소로 앞으로 감자 튀김 자체를 먹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급격한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우리들이 취해야 할 행동은 명확하다. 서둘러서라도 기온 상승의 주요 원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키는 일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최근 플로깅이 사람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고무적이다. 산책과 달리기 운동을 하면서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줍는 일은 환경적인 차원을 넘어 인류 생존을 위한 작은 움직이라고 본다. 실천할 수 있는 일이 그 뿐이겠는가. 식탁에 변화를 주는 일도 시도해 볼 수 있겠다. 채식 위주의 건강한 식단을 습관화하면서 생태계 환경을 좀 더 보존하는 일이다.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가축을 기르면서 발생되는 생태계 파괴가 상상을 초월할만큼 크다가 한다. 가축 분뇨를 비롯하여 가축 먹이를 위한 목초지 구축을 위한 산림 파괴는 결국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단초가 되고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식단에 주기적으로 채소 위주로 구성해본다면 기후 보존을 위한 작은 실천 운동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날씨와 기후는 같은 개념처럼 생각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후라는 용어를 쓰지만 시시각각 변화는 부분에서는 날씨라는 용어를 쓴다. <단번에 개념잡는 기후변화>에서는 날씨와 기후의 용어 차이처럼 자주 쓰이지만 오개념으로 쓰일 수 있는 기후 관련 용어들을 정리해 주고 있으며 특히 기후 변화를 주제로 원인과 결과,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정확한 개념 숙지는 세부적인 실천을 끌어낼 수 있다. 원인에 따른 해결 방안들을 제시할 수 있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이어갈 수 있다. 기후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성을 넘어 생명과 직결되기에 현재의 상태를 진단하고 해결 방법을 도출하여 필요성을 반본적으로 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바쁘게 살다보면 코 앞에 닥쳐진 현상에만 매몰될 수 있다. 기후 변화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문제의 시급성을 깨달아 국가적으로도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후는 결국 먹고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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