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다는 것 헨리 나우웬 영성 모던 클래식 7
헨리 나우웬 지음, 최종훈 옮김 / 포이에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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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나이 든다. 한 명도 예외가 없다. 모두가 나이듦을 경험할텐데 유독히 나이 든 사람들을 낮게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이 들어가는 것을 초라하게 생각한다. 창피하게 생각한다. 어떻게든 나이 들었음을 감추려고 한다. 젊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한다. 나이보다 젊게 보인다고 말해야 상대방이 기분 좋아할 것임을 안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누군가 나이 들어보인다고 하면 살짝 당황한다. 반면 젊게 보인다고 하면 순간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이 든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인가?

 

헨리 나우웬은 늙어간다는 것을 보살핀다는 것으로 정의한다. 늙어 가는 사람은 보살핌을 받아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보살피는 주체가 된다. 보살피는 주체가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노인은 누구나 늙어간다는 사실을 젊은 세대에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172쪽)

 

젊은이들만 모여 있는 대학에서는 자신들이 나이 들어 간다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한 가정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손자, 손녀들이 함께 살아갈 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저절로 배우게 된다. 헨리 나우웬은 인간이 발전하고 성장하려면 세대 간의 창의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직장 안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용한다. 젊은 구성원이 많다고 해서 크게 기뻐할 일이 아니다. 연령대가 골고루 포진되어 있을 때 원활하게 조직이 움직여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나이 들어감이 무엇인지 구성원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도 차차 나이가 들어가면 일의 속도가 느려지고 행동도 굼뜨게 되겠구나를 깨닫게 된다. 나이 들어감을 미리 공부하는 거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143쪽)

 

나이 들어가는 이들을 보살피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얘기다. 우리 사회는 나이 든 이들을 피해야 할 존재로 생각한다. 요양원으로 몰아 넣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힘이 약한 존재, 가난한 존재, 성장이 멈춘 존재로 구분한다. 그러나 헨리 나우웬은 존재 자체를 가치 있게 바라본다. 약하고 병든 나무가 쓸모 없는 목재가 아니라 나중에 새들이 깃들이는 훌륭한 안식처이자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듯이 나이 들어가는 사람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서로 나눠야 할 선물로 생각하는 것과 인생을 단단히 지켜야 할 재물로 생각하는 것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인생의 성공 유무를 존재 자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돈의 많고 적음, 권력의 유무로 보게 된다. 우리 자신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과거에 집착하게 된다. 그럴수록 불안과 죄책감, 절망과 우울 속에 갇히게 된다. 왕년에는 이랬는데라는 말은 지금 나이 들어감을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는 처사다.

 

"가난이란, 삶을 지켜야 할 자산이 아니라 나눠야 할 선물로 여기는 마음을 가리킨다" (127쪽)

 

헨리 나우웬은 나이 든다는 것을 가난과 긍휼, 용납과 직면으로 바라본다. 소망과 유머, 통찰 있는 삶으로 정의한다. 나이 든 이들이 언제든지 자신을 찾아오는 이에게 자신의 시간을 내어 주며 성심껏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곧 가난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나이 들어갈 때 인생을 정직하게 바라보게 된다. 허황된 꿈을 쫓는 삶이 아니라 현실에 자족하는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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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넘어서는 성경 묵상
옥명호 지음 / 비아토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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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넘어서는 성경 묵상이란 무엇일까?

 

책의 목차의 순서를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1부에는 인간적인 성경 읽기다. 인간적인 성경 읽기란 곧 나를 위한 성경 읽기가 아닐까. 성경을 읽는 목적이 '나' 다. 나의 만족을 위해 성경은 단지 도구일 뿐이다. 나를 위한 성경 읽기는 오독에서 비롯된다. 오독은 잘못 읽거나 틀리게 읽는 것을 말한다. 성경을 잘못 읽는 경우는 전후 문맥을 살피지 않았을 때 많이 일어난다. 특정한 단어, 문장의 일부분만 떼어서 읽는 경우 성경의 뜻을 잘못 해석하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따라서 나를 넘어서는 성경 묵상을 위해서는 제일 먼저 '나를 위한' 성경 읽기를 벗어나야 한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저자가 아주 자세하게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설명하고 있으니 책을 살펴 보기를.

 

2부에는 나쁜 신학, 어긋난 묵상의 제목으로 나쁜 신학이라고 일컫는 '일그저진 설교'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나를 위한' 성경 읽기를 벗어나더라도 올바르지 못한 신학을 교회 안팎에서 접하게 되면 어긋난 묵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몇 해 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땅 밟기' 는 나쁜 신학의 대표적인 사례로 저자가 소개한다. 유명한 사찰을 단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구약 성경에 나와 있는 '땅 밟기'의 사례를 일반화 하는 오류와 함께 샤머니즘적 신앙을 가미한 비성경적인 성경 읽기라고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사회의 근심 덩어리가 되는 이유도 나쁜 신학, 어긋난 묵상이 한 몫을 하고 있다. 

 

3부에는 비로소 '나'를 넘어서는 성경 묵상의 길로 초대한다. 성경은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 긍휼, 용서, 시대의 분별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결국 성경을 묵상하는 이유가 '나'를 넘어서기 위한 실천적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성경 묵상이 아니라 나를 비우고 그 속에 예수의 말씀을 담기 위한 묵상일 때만이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나를 넘어서는 성경 묵상은 저절로 사회적 영성으로 확장되어 간다. 올바른 성경 묵상을 통해 사회의 필요를 깨닫게 되고 부패한 곳을 깨끗케 하는 행동력으로 나타나야 한다. 

 

4부에는 최종적인 성경 묵상의 목표인 '이웃과 세상으로 다가서는 묵상' 이다. 나를 넘어서는 성경 묵상은 이웃을 향하게 되어 있다. 세상으로 시선이 옮겨지게 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서게 한다. 각자 맡겨진 영역에서 성경을 묵상한대로 살아가게 된다. 공공의 정치 영역에서도 어김없이 책임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나를 뛰어 넘어 이웃과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성경 묵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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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조금만 -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쓰인 11인의 이야기
이충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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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해 오던 일을 즐길 줄 안다는 것을 말한다. 즐긴다는 것은 다른 이의 평가에 좌우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성취해 가는 과정 속에 경험하는 모든 것을 기쁨으로 때로는 슬픔을 이겨내며 참아내는 것을 말한다. 

 

저자가 만난 11명의 인터뷰이 중에 대부분이 노년으로 향하고 있는 분들이고 자신의 일을 즐겨하는 분들이다. 물론 피겨 선수 차준환, 프로야구 강백호 선수 등은 한창 자신의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이들이지만 가수 최백호, 전 외교부 장관 강경화, '대추 한 알' 이라는 시로 뒤늦게 시인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장석주 시인, 아흔을 바라보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 연극배우 박정자님은 나이 들어감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나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즐겁게 찾아가며 살아가는 이들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흐르는 시간 앞에 어느 누구도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명하게 이름을 날렸던 이들도 대중의 머리 속에 소리 소문 없이 잊혀진다. 자랑했던 외모도 건강도 세월이 지나가면 변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세월 흘러가는 것을 부정하거나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아쉬워하며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저자가 만난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가수는 목소리가 생명일진대 일흔이면 어떻고 여든이면 어떠냐 나이에 맞게 소리를 내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철학을 노랫말과 목소리에 담아내는 최백호님의 자신의 일에 대한 태도는 나이 들어감의 아름다움관시과 젊음 못지 않은 기백이 서려 있다. 아흔을 바라보고 있는 진태옥 디자이너는 자신만의 색깔을 포기하지 않고 패션의 종가라고 자부하는 유럽 파리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이며 지금껏 여백의 미를 완성해 가고 있다. 

 

장석주 시인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기나긴 무명의 시절을 어떻게 버티며 살아왔을까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문단의 주류에 편입하지 않고 자신만의 시의 세계를 만들기까지 그 얼마나 자신과의 싸움이 있었을까 싶다. 과연 밥이라도 먹고 살았을까? 한때  신춘문예 당선이 마치 훈장이라도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열기도 사그라져서 시인으로 살아가는 삶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누가 알아주든 말든 줄기차게 성실함으로 글을 써 왔던 것이 '대추 한 알' 이라는 시가 사랑받게 된 이유였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3만 권 이상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장서가이자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있는 독서가였기에 시인이라는 삶을 버티며 살아왔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인터뷰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개인이나 집단을 만나 정보를 수집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이충걸 저자의 인터뷰집 <질문은 조금만>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목적이기보다 인터뷰이와 삶을 나누는 일에 가까운 책이다. 인터뷰이의 삶의 결이 드러나도록 적절하게 질문을 던지고 이해하는 능력은 저자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인 것 같다. 인터뷰이가 편안하게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주어진 시간 안에 인터뷰를 완성해 가는 것이 저자의 전문성인 것 같다. 결이 다른 11명의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그들에게 맞는 질문을 만들고 사전에 그들이 살아온 삶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이 정도의 정제된 인터뷰집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평소에는 만날 수 없었던 이들을 책 한 권으로 만날 수 있어 감사했다. 나에게 생소한 이들도 있었지만 또 다른 공부라 생각하고 읽었다.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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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침묵으로 말한다 - 봉쇄 수도원에서 온 편지
오귀스탱 길르랑 지음, 이상현 옮김 / 생활성서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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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수도회, 카르투시오 수도승의 단상을 모아 놓은 글이다! 

 

오귀스탱 길르랑(1877~1945)이라는 수도자의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참 대단하다고 느낀 점은 '절제'하는 모습이다. 절제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하나님의 관계를 위해서 수도승들은 평생 봉쇄 구역을 떠나지 않고 엄격한 침묵과 고독 속에 스스로 가난과 수행의 삶을 살아간다. 공동 산책, 공동 식사, 공동 기도회도 있지만 대부분 혼자서 침묵으로 수도한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한 삶이다. 과연 이런 삶이 가능할까 싶다. 

 

성경의 말씀 한 귀절 한 귀절도 참 깊게 묵상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라는 이 말의 의미를 깊게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묵상한다. 바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어려움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동문서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침묵 속에 오랫동안 하나님을 깊게 묵상하는 수도자들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한다고 한다. 사랑의 근원인 하나님께. 

 

가끔 산 길을 혼자 걸으며 복잡한 머리를 식힐 때가 있다. 잠깐 혼자 산 길을 걸었는데도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한 뜻을 이해할 때도 있다. 조용히 침묵하는 순간 생각이 하나로 모아지는 느낌이 든다. 바깥 세상과 일절 접촉을 금하면서 침묵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가 남긴 글을 통해 묵상의 힘을 느낀다. 

 

고통, 우리를 위한 당신의 특별한 사랑의 표지이며 다른 어떤 것보다도 확실하게 그 분을 뵙는 길이다. _81쪽

승리, 영적인 교만이나 거짓 덕성을 불러 일으킨다. _89쪽

갈등, 무력과 공허의 자리로 머물게 하고 우리의 영혼을 무너지지 않는 토대 위에 세워 준다. _89쪽

이 세상은 잠시 천막을 쳤다가 곧 다시 걷어 계속해서 여행하며 건너야 하는 사막이다. _141쪽

 

'믿게 되었습니다' 라는 말은 우리가 하느님을 신뢰하면서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리게되었다는 뜻이다. _159쪽

믿음의 삶,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삶이다. _167쪽

평화, 사랑의 하느님께, 전능하신 하느님께 의탁하기 때문이다. _177쪽

믿는다는 것, 하느님의 활동에 우리를 일치시키는 신앙 행위이다. _183쪽

 

"하느님, 저에게 불의를 행하고 있는 이 사람 안에서, 그리고 제게 불쾌감을 주는 저 성미 안에서, 저는 당신의 손길과 당신의 사랑을 흠모합니다" _187쪽

우리의 모든 괴로움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마음의 광대함에 비해 너무나 편협하고 덧없는 쾌락과 소유물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_205쪽

은총이 어려움을 없애 주지는 않지만, 우리로 하여금 어려움을 우리에게 유익한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게 해 줍니다. _210쪽

 

염려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_219쪽

우리가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하는 곳은 바로 우리 마음속이며, 우리가 승리를 거두어야 할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_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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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2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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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재일동포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나 조차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부끄러운 얘기지만 재일동포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재일동포를 단지 국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만 생각했지 그들이 어떻게 일본 땅에 거주하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아 왔는지 관심 밖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재일동포들의 실제 생활했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작가 이민진님은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분명히 전해주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다. 작가조차도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2세이기에 재일동포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넘어 사명감으로 그들의 삶을 조명해 보고자 포기하지 않고 글로 써 내려갔던 것 같다. 이 책을 나오기까지 3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고 하니 오랜 세월동안 쓰고 수정하고 쓰는 일을 반복하면서 실제에 가장 부합하게 쓰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의 무능력한 통치로 인해 또는 정치인들의 무관심 등으로 인해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한반도를 떠나야했다. 만주로, 연해주로 또는 이 소설처럼 일본 땅으로 말이다. 일본 땅으로 끌려가거나 속임을 당해 가거나 삶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 일본 땅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은 해방 이후에도, 한국 전쟁 이후에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고 한다. 오랜 기간 동안 한국에서도 잊혀진 존재로 살아와야 했던 재일동포들은 일본 땅 안에서도 북한을 중심으로 조총련 집단과 그 외 민단 집단으로 갈라져 이념 및 사상으로 갈라져 있어야했다. 일본인들에게도 외국인으로 비춰졌고 소설에서도 그려졌듯이 천한 집단으로 여겨져 사회적 차별 속에 살아야했다.

 

소설을 읽어내려가면서 선자네를 중심으로 밑바닥 생활을 해 나가는 이삭과 요셉의 세대 그리고 그 자손인 노아와 모자수, 또 그 자손인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한 가족의 일대사가 슬픔과 아픔, 인내로 점철되어진 모습을 보게 된다. 떳떳한 직업 조차도 가질 수 없기에 행상이며 노점상, 급기야 야쿠자와 연결될 수 밖에 없는 파친코 사업에 손을 댈 수 밖에 없었던 처지를 처량하게 그려내고 있다. 

 

왜 재일동포들의 후손들은 일본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적법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사회적 차별을 지속적으로 받아야했는가가 끊임없이 질문으로 남겨진다. 선자네의 손자였던 솔로몬 조차도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실력을 검증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했을까는 많은 의문점을 남게 한다. 재일동포들의 선택지는 일본으로 귀화하거나 다른 나라로 떠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일까?  아니면 당당하게 태어난 곳에서 시민으로써의 권리를 누릴 수는 없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지금은 일본 내 분위기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반세기 이상 일본으로 쫓겨와 살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재일동포들의 삶을 잊기에는 너무 가슴 아픈 사연들이기에 이 역사를 거울삼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여러가지 이유로 고국을 떠나오는 이들이 많다. 이들을 가리켜 디아스포라라고 명명한다. 자발적으로 떠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도피 형식으로 떠나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도 이제 국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감당해 내는 위치에 있기에 과거 우리 해외동포들의 아픈 역사를 성찰해보며 이와 비슷한 사례에 직면했을 경우 좀 더 책임감 있는 역할을 감당해 내야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30년 동안 포기 하지 않고 쓴 장편소설 덕분에 잊혀진 역사를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되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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