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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선생과 열네 아이들 -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읽는 교실 동화
탁동철 지음 / 양철북 / 2021년 6월
평점 :
"교실 일기를 적는 것은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민주주의 교실을 만드는 일이다" 157쪽
근무하던 오후 갑자기 문자 한 통이 왔다. 모르는 핸드폰 번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교실 이야기로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아온 탁동철 선생님의 새책이 나와 보내드렸습니다. 교사와 아이가 함께 읽으며, 이야기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교실동화 <배추 선생과 열네 아이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_양철북 드림"
놀랬다. 양철북 출판사에서 신간 책을 보내주셔서. 그래서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와우. 탁동철 선생님 책을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퇴근 길 자동차 안에서 양철북 출판사 담당자가 보내온 문자를 보면서 더 놀랬다.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에게 반가운 책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창수 샘께 탁동철 샘이 드리는 선물입니다^^"
이제서야 책의 정확한 출처를 알게 된 것이다. 집에 와 보니 택배로 책 한 권이 와 있었다. 포장을 뜯어보고 책 표지 다음 쪽을 펴보니 '이창수 선생님께 2021.6.4. 탁동철' 싸인이 적혀 있었다. 투박한 글씨다. 글씨를 보니 <배추 선생> 탁동철 선생님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탁동철 선생님과의 관계는 2019년이다. 당시 강릉에서 작은학교 연구회를 운영하던 중 작은학교 사례를 들려줄 선생님 한 분을 초빙할 관계이었다. 물어 물어서 만나게 된 분이 <배추 선생>이다. 작은학교연구회라고 해서 기대감 설렘반으로 흥쾌히 찾아오셨다고 한다. 백팩을 메고 동네 아저씨처럼 나타난 <배추 선생>을 본 것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작은학교연구회에서도 작은학교 교사 이야기를 소책자로 만들 계획이라고 하니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기억도 난다. 두 번째 만남은 2020년 1월이다. 연수원에서 학급살이 강사로 오셨을 때다. 역시 옷차림이나 강의 내용은 일맥상통하다. 시골 아저씨가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들이 그려졌다. 그리고 2021년 6월. <배추 선생과 열네 아이들>이라는 책으로 세 번째 만남을 가진다.
<배추 선생>은 교실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긴다. 아이들과 함께. 그 기록들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놀이가 되며 '뮤직헐' 이 된다. <배추 선생>은 아이들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잘못했을 때는 잘못했다고 겸손하게 아이들 앞에 머리를 숙인다. 아이들과 함께 동등하게 의견을 내고 의견을 듣는다.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한다.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자발적을 끌어내고 실수를 거울삼아 책임있는 어른으로 자라도록 하자는 <배추 선생>의 교육철학이다.
"누군가 지켜보는 눈, 응원. 그것으로 아이는 일어선다" 45쪽
<배추 선생>과 함께 하는 아이들은 저마다 모두 상처와 아픔을 지니고 있다. 강원도 산자락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아이들 중에 상처 가득 무거운 짐에 짓눌려 살아가는 애 늙은이들이 참 많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아이들도 제법 있다. 교과 지식을 많이 주입시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의 삶을 들어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 급하다. <배추 선생>은 분노가 가득한 아이들을 제어하지 않는다. 그 아이가 왜 분노하는지 알기 때문에 분노를 온 몸으로 맞는다. 교실 안에서 분노가 용해되도록 친구들끼리 학급 규칙을 세우고 학급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장치를 설정한다. 최첨단화된 기기를 사용해서 유창하게 수업하는 것만이 훌륭한 수업이 아니다. 기기 사용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얘기가 한 번도 책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가장 많이 나오는 내용은 아이들의 생각과 삶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글로 쓰게 하고 쓰게 한 글을 가사 삼아 노래를 짓는다. 중얼 중얼 입노래로 표현한다. 규칙을 어긴 <배추 선생>도 벌을 받는다. 엄살도 부린다. 그러나 선생이라고 해서 예외되는 것은 일도 없다. 50이 넘은 <배추 선생>이 꼬꼬마 아이들과 교실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배추 선생>의 눈망울이 기억이 난다. 참 선하다. 말하는 것은 투박스럽지만 아이들을 향한 마음만큼은 젊은이 못지 않게 열정 가득하다.
"교실은 이야기가 생겨나고 자라고 꽃이 피는 곳이다. 학교의 모든 곳이 이야기 자리다. 학교생활의 모든 것이 이야기 씨앗이다" 56쪽
교실은 아이들이 맘 놓고 이야기하고 기쁨과 아픔과 상처와 분노를 마음껏 표출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움찔거리고 시키는대로 일률적으로 착착 진행되는 로봇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다. 살아 있는 생명들이 꿈틀대는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번 싸움이 일어나고 언쟁이 일어나며 감정 갈등이 생겨나느 곳이 교실이다. 이런 삶을 다 받아내는 사람이 '선생'이다. '선생'만큼 고귀한 직업이 있을까 싶다. 상처 받은 아이들의 행동을 지켜봐야 되고, 속상한 마음을 토닥거려주어야 한다.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은 아이들의 질문에 귀기울여야 한다. 저녁에 밤은 먹고 다니는지, 집에 가면 돌봐줄 어른은 있는지, 다음 날 학교에 잘 와 줄 것인지 걱정되는 아이들도 조심조심 달래며 귀가시킨다. 겉으로 보기에는 '선생'은 참 한가롭게 보여질지 모르겠다. 천만에 말씀. 교실 안으로 들어와 보시라. 백인백색. 아이들 마다 성격이 다르고 경험치가 다르고 성향과 감정 분출 정도가 엄청 크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곳이 교실 안이다. 1년 내내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과 생활해 내야 하는 직업이 '선생'이다. <배추 선생>처럼 아이들의 아비요, 친구로 든든히 지켜 가는 '선생'들이 참 많다. 그래서 대한민국 교육은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