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삭.. 커피를 갈고, 머그컵 가득 커피를 양손으로 감싸 안고 보니 밤이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 밤이 지나 곧 새날이 밝아오면 분주한 일상이 시작될 터. 아쉬운 마음이 커피 한 잔의 시간을 만들었다. 외풍 센 단독 주택, 전기 장판의 온기 속에서 빠져나오기까지 고민도 많이 했다.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책을 읽겠다며 이 책 저 책 집적대기를 한참하였고, 그렇게 선별을 한 몇 권 책을 (부분)정독하고 휘뚜루 읽기도 하고는 사방에 팽개쳤다.

정신을 차리고자 독송한 <근원수필>의 짧은 글 하나. 정신이 맑아져서 '이 밤의 시간을 완상할거야^^' 하며 시간에 취했다. 그리고 또 손에 잡은 책은 김훈의 에세이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젠장... 근원수필 다음에 김훈 수필이라니. 커피 한 잔 안 마실 수가 없는 글 조합인 거다. 자연을 완상하고 시간을 느끼려는 찰나였는데......
이 끄적임은, 그렇게 해서 마시고 있는 커피의 영향이다. 제목을 나비효과라고 할까? 항상 글을 대강 써 놓고는 제목으로 고민을 하곤 하는데, 좋다! 오늘의 글 제목은 -나비 효과-라고 할 테다. 덧글이라도 하나 달려 화제의 글에라도 오른다면 제목에 낚이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ㅎㅎ
참. 커피는 벌써 반 컵을 넘게 마셨다. 커피를 다 마시면 모파상의 단편 -오를라-를 읽고 전기 장판 속으로 들어갈 참인데(계획) 알라딘에 이야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커피를 다시 갈아 마시기는 영 피곤한 일이다. (커피를 다 마시면... 다음 계획대로) 커피를 다 마셔가고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며 노는 건 즐겁고 할 수 없다. 남아 있는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야지.... (부었다)
커피가 다시 머그 가득 찼다. 시간을 거스른 것이다.
지금쯤이면 커피를 다 마시고 오를라를 읽고 있었어야 할 운명을 내 의지로 늦추고 있다. 커피 맛은 여전히 좋다.
나는 내일도 지각할 운명일지도 모른다. 역시... 세상은 인간의 의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커피맛도 사실은 별로다. 쬐끔 남아 있는 커피에 뜨거운 물 추가는 보리차맛이다.. 보리차맛 커피는 그냥 그것대로 좋을 뿐 좋은 커피 맛이 될 수는 없다. 다시 커피를 한 잔 내려야겠다. (처음부터 그럴 것을... 물배만 찼다.)
전기 주전자 물이 끓는 동안에 커피를 갈고 물이 마저 끓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는 중배전된 커피12g과 약배전된 커피 8g을 블랜딩한다. 품종은 예가체프, 로스팅 엄향편, 바리스타 차좋아.
아~~ 시간을 거스르는 거북 카시오페아가 생각난다. 카시오페아를 따라 모모는 시간을 거슬러 공간의 이그러짐 속으로 들어갔더랬지... 커피향 가득한 이 공간, 나는 온전한 자유를 느낀다. 물론 모모가 회색 신사와 싸우기 위해 현실로 돌아갔던 것처럼 나도 내일이면 맘몬(돈의 신)과 싸우러 힘겨운 아침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커피 빛깔 다크 써클을 담보로 이 시간을 누리는 것이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의 시간이 참 좋다.
정성 가득 나만을 위해 내린 커피는 이 시간, 최고일 수밖에 없다. 약배전된 원두를 섞어서 내린 커피는 시큼하면서도 군고구마 껍질의 고소함이 난다. 이 맛을 계획했던 건 아니지만, 이 맛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 조합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온밤과 함께 있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에스프레소 다크 서클을 만나게 되겠지..)
오를라를 읽고 싶었다니... 별일이다. 오를라를 또 읽느니 그냥 밤을 새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오를라는 실재할까? 나는 그(오를라)가 있을 거라 믿는다. (아~ 생각한다, 가 아니라 믿는다, 라니... 미쳐가고 있는 거냐?)
모파상은 오를라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했다. 모파상은 스스로 죽으려했고 사람들은 모파상이 정신분열이라 진단하곤 그를 안전한 장소에 두고 감시했지만 그는 곧 죽었다. 오를라 때문은 아니었을까?
맞아. 그러고 보니 지난주 중에는 루쉰의 -광인일기-를 읽었더랬지... 광인들의 정서에 공감을 하는 것은 광인의 전조인 건 아닐까? (혹 걱정은 마시길, 새삼스러운 정서는 아니니 말이다.)
-오를라-, -광인일기- 두 이야기는 정신병자의 회고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난 그 이야기들을 좋아하고 어쩌면 그 광인들의 이야기가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고있다.
김훈을 읽었었지! 아, 김훈은 미친 것들의 이야기에 취한 정신빠진 한 아비의 정신을 붙잡게 하는 각성제였나보다. 잠 잘 자고 돈 벌러 가야 하는 두 아이의 아비가 김용훈의 <근원수필>에 빠져 밤에 취하려 할 때 김훈은 밥벌이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라는 충고를 한 것이었다.
조금 전에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라는 짧은 글을 읽고 나는 '젠장'이라 했었다.
'자연의 완상 따위 나에게 사치인가?' 자문할 수밖에 없는 뼈 아픈 충고였기 때문이다. 삭막한 김훈(아저씨) 같으니라고... '밥벌이의 중요성 나도 잘 안다고요. 아저씨가 누누이 말해서 더 잘 알기도 하고, 하루하루 살아보니 뼈저리게 느끼고도 있거든요!'ㅜㅜ
독서를 하면 5분이 못 되어 눈이 피로해지던 김용준이 안과를 찾아 치료를 받고는 동공이 올빼미 처럼 커지는 바람에 4,5일간 글 한 자도 못 보았다는 -안경- 이 생각난다.
김용준의 따짐에 의사는 약 기운에 그럴 수도 있다, 했고(그럴 수도 있다, 라니!! 젠장할 의사들 같으니라고) 이 후 김용준은 안경을 써야 했다.
그리하여 안경을 쓰게 된 김용준, 이후 본래의 시력은 찾았지만 안경을 벗으면 예의 시력이 아니었고... 그것이 과연 치료인가 무엇이 좋은 것인가를 다룬 수필 -안경-인데, 지금의 내 마음도 꼭 그렇다.
지금 치료하고 있는 이과 치료는 과연 치료인 것인지(실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요즘 상복하는 약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노릇인 거다.
지금 내게 필요한 이야기는 김용준의 <근원수필>인지, 김훈의 에세이들인지... 아무래도 둘 다인 것 같다. 김용준에게 위로받고 김훈에게 혼나고. 그리고 나는 또 다른 광인들을 이해하고 위로해 준다.
방금 방귀를 부웅하고 뀌었다.
'방구로 나는 나의 실재를 분명히 느꼈다. 그래... 나는, 지금, 실재,하고 있는 거구나!'
' 오를라 따위 그런 것이 이 세상 어딘가, 어쩌면 내 옆에(혹은 내 안에)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다,' 라는 것을 내 몸이 내 정신에게 알려주었다. (고맙게도 냄새 안 나는) 자각의 방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