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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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사랑이었네'의 구매자 40자평 중에 '한비야 책을 살 땐 주저하지 않는다'는 글이 있다. 그 글을 읽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라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또한 이 책의 출간소식을 듣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샀다. 평상시라면 알라딘에서 책을 주문하고 다음 날 받아보는 여유(?)를 즐겼겠지만, 이번만은 그 하루조차도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한비야의 책들을 좋아하고, 한비야라는 사람도 정말 사랑한다(!). 한비야에 대한 사랑은 그의 놀라운 경험에 대한 경외와 대리만족, 쉽사리 하기 어려운 생의 결단을 내렸던 그의 용기에 대한 감탄, 긍정적이고 활력 넘치는 삶의 태도에 대한 질투 또는 욕심, 타인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친화력에 대한 부러움의 변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의 따뜻한 마음과 열정 때문일 것이다.

  그의 글은 참 사랑스럽다. 일단은 읽기 쉽고 이단은 감정이 살아서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꾸밈과 수사 없이도 솔직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글, 이런 글이야말로 좋은 글 아닌가? 물론 쉽게 읽히는 글이라고 해서 쉽게 써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고생해서 썼겠구나 싶긴 했는데 이번 책에는 그녀의 글 쓰는 고통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도 역시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을 발견해서 흐뭇했다(!). 한비야의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여전히 가슴을 때리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책에 밑줄을 긋지 않는다는 원칙을 또 어기고 말았다.

  그의 이 번 책은 예전 책들에서 접할 수 없었던 그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신앙과 같은 내밀한 것들 말이다. 나는 그동안 한비야의 책을 읽으면서도 그가 크리스천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확신을 갖진 못했다. 그녀의 책에는 일부러 그랬겠지만 한 종교에 대한 편파적인 부분이 없었다. 그렇게 감쪽같이 숨겼을 줄이야. 그녀는 천주교 신자였다. 조금은 놀랍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나도 영세를 받은 터라 반갑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이 어린아이의 신앙이라고 표현했지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모나지 않게 잘 융화되는 모습을 보니 그건 분명히 어른의 성숙한 신앙이었다. 또한, 책에서 소개한 낭가파르바트나 짐바브웨에서 겪었던 신앙체험은 부럽기도 하고. 한비야의 글을 통해서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신앙이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태도는 자신에 대해서는 간절함(열정)과 노력, 그리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이해와 관용 인 것 같다.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 하면서의 경험에 대한 꼭지도 눈에 띈다. 그가 월드비전의 구호팀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월드비전 후원자가 33만 명으로 급성장했다고 하니 놀랍다. 그것이 월드비전만의 기쁨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실적이 타인과 나누는 삶을 추구하는 우리 국민들의 의식성장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다 기쁘다. 특히, 오염된 식수를 마셔서 기니아충이 온 몸을 뚫고 나오는 병에 걸린 아프리카의 아이들, 여성할례 때문에 속절없이 고통을 당하는 여자아이들에 대한 부분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라 깜짝 놀랐고 많이 슬펐다. 그들이 정말 우리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긴 하는 건지 사실 현실 같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이 안타까운 마음은 계속 지켜나가야겠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수입의 일부는 꼭 이웃과 함께 나누고, 삶의 원칙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간다는 원칙도 더 확실히 세워야겠다. 아직 몸으로 실천한다는 것, 구호의 세계랄까 봉사의 세계는 여전히 두렵지만 그것에 대해서도 천천히 시간을 갖고 용기를 내야겠다.

  사실 한비야는 우리 어머니와 동갑이다. 그런데도 그 나이에 새로운 꿈, 공부를 시작한다는 게 참 대단한 것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는 바람의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각오도 놀랍다. 사실 서른 즈음의 선배가 대학생 후배들을 보고 '너희는 참 젊다'며 한숨을 내쉬고, 정작 이십대 중반인 내 또래는 '내 인생은 실패했다'고 좌절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 나를 포함해서 - 그런데 한비야는 '나는 내가 커서 뭐가 될지 무척 궁금하다'고 능청을 떤다. 정말 그렇다. 죽을 때까지 배워가는 것. 사랑도 그렇지만 인생도 죽는 날까지 배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서평을 쓰는 과정에서 '무릎팍도사 한비야 출연에 대한 불편함'이라는 칼럼을 우연히 접했다. 구호활동과 선의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며, 국민이 조직화해서 불합리한 체제를 바꿔나갈 때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요지였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현실은 보지 못하고 외국으로만 눈을 돌리는 현상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칼럼이었다. (내가 그 칼럼을 잘 요약한 건지 불안하긴 하다.) 물론 이 말도 맞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고 도둑질도 해본 놈이 잘 한다고 나는 '부자' '성공'에 목을 매던 사람들이 점점 ‘이웃과 나누는 것’에 대한 관심을 늘이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싶다. 지구 반대편의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에 대한 고통에 눈물을 흘리고 후원을 할 사람들이 자기 이웃의, 자기 나라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눈감고 있겠는가? 중요한 건 의식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사회 현실에 분노해서 매번 시청 앞으로, 광장으로 달려 나가지 않더라도 의식이, 감정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의식이 바뀐 시민들은 투표로 답할 것이다. 의식이 변한 사회는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 개인의 성공과 부(富)만 보고 달리던 사람들에게 한비야가 던져 준 화두는 그렇게 우리 사회에 이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눈물을 흘릴 때, 그리고 한비야가 이야기하는 성공에 관심을 기울일 때 우리 사회는 후퇴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놓고 가는 것
당신이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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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7-28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첫 구매자평으로 등록된 저의 구매자평이 인용됐군요.^^
이주의 마이리뷰가 되면 딱 좋을 리뷰입니다. 추천~ 꾹!

송도둘리 2009-07-28 08:46   좋아요 0 | URL
멋진 구매자평이었습니다. ㅋ 추천 감사합니다. ^^

순오기 2009-08-04 18:53   좋아요 0 | URL
이주의 마이리뷰가 되면 좋겠다고 했더니
블로그 베스트 특종을 먹었네요. 축하합니다~~ 제가 점을 좀 칩니다.ㅋㅋ

송도둘리 2009-08-04 22:05   좋아요 0 | URL
예언 덕분인 것 같습니다. 용하십니다! ㅋㅋ 감사하구요~ 다음에 또 좋은 점괘 나오면 알려주세요. ^^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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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굳게 믿는다. 한 명 한 명 갓 태어난 아기처럼 존재 자체만으로 빛나는 사람들이다. 그런 귀한 존재가 공부 좀 못한다고, 취직을 빨리 못한다고, 남들이 돈이 좀 없다고, 승진이 좀 늦다고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생각하는 건 너무나 슬픈 일이다. 갓난아기는 가진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학력도 제로지만 사랑받아 마땅하지 않은가?-6쪽

과거는 이미 수정 불가능하고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현재는 우리가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아닌가.-18쪽

물론 세상에는 계획과 열정과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일도 많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루는 24시간뿐이고 에너지와 돈도 한정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가장 하고 싶은 일에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을 총동원하여 집중한다면 적어도 그 일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36쪽

마지막 순간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는 바람의 할머니가 되고 싶다.-40쪽

사랑은 무엇인가를 이루어서가 아니라 사랑하였음으로 행복하다는 말, 그런 성숙한 어른들의 사랑을 이제서야 알 것 같다.-60쪽

나는 링 위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무조건 일으켜 세워 다시 싸우게 하는 것만이 응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누워 있겠는가. 더 이상 싸울 힘도 의사도 없을지 모르는데 거기에 대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일어나라. 힘내라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잘하고 있는 사람을 응원할 때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된다. 그러나 인생이란 링 위에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응원할 때는 세심한 마음씀이 필요하다. 누워 있는 사람의 상태를 이해하고 그의 선택을 존중하며 조용히 위로해주어야 한다.-78쪽

결국에는, 종국에는, 끝에 가서는 하느님이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리라는 믿음이다.-87쪽

지금 이 순간 망설이고 흔들린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그 방향으로 첫걸음을 떼었느냐가 더 중요하다.-92쪽

방향이 정해졌다면 가는 길은 아무리 흔들려도 상관없다. 아니, 흔들릴수록 좋다.-93쪽

무엇을 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하는가? 내 경험상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늦게라도 시작하는 편이 백배, 천배 낫다.-95쪽

일단 벽이 아니라 문이라는 것만 확인되면 끝까지 두드려야 뭐가 되어도 되는 거다. 문이라면 열리게 되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열린 문이 왜 당신에게만 열리지 않겠는가?-105쪽

어떻게 하든 참고 견디자. 이 고비는 반드시 넘어갈 것이고 나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106쪽

안간힘을 쓰며 붙들고 있던 끈을 '나, 이제 그만 할래' 하고 놓아버리면 그 순간은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 같지만 곧이어 찾아오는 '포기의 고통'은 더욱 깊고 오래갔다.-109쪽

주여,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124쪽

자기가 낙타로 태어났으면 사막에, 호랑이로 태어났다면 숲속에 있어야만 자기 능력의 최대치를 쓰면서 살 수 있다.-147쪽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러야 할 수업료가 있고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150쪽

자기 계발서도 그렇다. 예전에는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 궁금해서 보기도 했는데, 이제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누가 들어도 맞는 말로 가득하지만 결국 자기를 계발한다는 건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니까.-169쪽

나는 인생은 상대평가에 의한 선발고사가 아니라 절대평가에 따른 자격고사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208쪽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놓고 가는 것
당신이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다.-210쪽

도대체 그 전통과 관습이 무엇이기에 아이의 목숨까지 걸고 지켜야 한단 말인가?-256쪽

우리나라가 진정한 글로벌 리더가 되고 싶다면 경제력이나 국방력 등의 하드파워와 함께 세계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과 국제사회의 약자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소프트파워 또한 반드시 함께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274쪽

나라는 지도, 나의 한계라는 지도, 사회의 통념과 편견이라는 지도 밖으로 나가라는 뜻이다. 그리고 지도 밖, 우리의 관심 밖에 있는 사람들도 살피고 돌보라는 뜻이다.-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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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와 나눈 3일간 심층 대화
오연호 지음 / 오마이뉴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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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시간 정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사실 일종의 취직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시험도 얼마 남지 않은데다 설상가상으로 공부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터라 원래는 책을 사두기만 하고 시험이 끝나고 읽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받고 나니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 챕터만 보고 나머지는 다음에 읽기로 타협을 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마지막 장까지 보고야 말았다.

  읽고나니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식견이 있는 지도자였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그가 생전에 했던 말처럼, 수십 년 후의 역사에서는 그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꽤 많은 시간 나는 이 정권이나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온 것은 노무현 개인과 참여정부의 잘못 탓이 크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사사건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물론 참여정부의 실패에는 노무현 자신의 실수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도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노무현 그 자신이 이 책 속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권력과 태생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시장권력. 그리고 민주화된 사회에서 통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자리매김한 언론권력. 대한민국의 권력지도를 구성하는 세 권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시장과 언론의 두 권력이 마음먹고 공격을 가한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책임이 없는가? 아니다. 국민은 그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얻는다는 말이 있다던가. 너도나도 ‘부자 되세요’, ‘7% 경제성장’ 등등의 말들에 들썩거리며 우리 스스로 불러온 것이다. 이 정권이 말했던 ‘부자’와 ‘경제’가 나를 부자로 만들고, 나를 위한 경제발전을 이루겠다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몸으로 분명히 느끼고 있지 않은가. 모두 민주주의의 주체가 되지 못한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그것을 이루고 있던 막연했던 구조가 노무현의 분석으로 좀 더 명확해졌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 책을 읽고나서 ‘그의 사고의 폭과 깊이가 굉장히 넓고 깊었구나’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시간이 좀 더 주어져서 그가 하고 싶어 했던 것들이, 그것들이 현실이 되었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더더욱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그가 만들고 싶어 했던 것이 의식 있는 시민들에 의한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면, 끊임없이 학습하는 깨어있는 시민권력에 의한 민주주의라면. 그의 죽음으로 시민들에게 각성을, 깨달음을 줄 수 있다면 그는 죽음으로 이미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은 것이 아닌가. 역설적이게도 그의 죽음으로 그의 꿈의 반 정도는 이미 이룬 것이 아닌가. 아쉬움을 억지로 위로해본다.  

 

  물론 한계는 있다. 나는 아직 나 자신조차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다. 한 인간에 대한, 나 자신에 대한 사랑도 부족한데 시민에 대한 믿음은 사치다. 시민이 뛰어나면 얼마나 뛰어나단 말인가. 쉽게 흔들리고 기억력도 낮고 때로는 우둔하기까지 한 시민이 어떻게 권력을 가지고, 어떻게 사회를 변혁해나간단 말인가. 백년하청이지. 말이야 바른말이지 서로 진보를 이야기하는 사람마저도 화합하지 못하고 삿대질하는 게 현실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 너무 짧은 생각 끝에 얻은 전환이고 급박한 끝맺음인지 모르겠지만 - 인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한 능력, 영웅, 이상을 기대할 때 꿈은 현실과 괴리되고 분열과 좌절을 가져온다. 막연한 기대는 현실을 왜곡한다. 현실에 발붙이고 있을 때 이상은 현실이 된다. 부족한 시민, 불안전한 인간에 대한 인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신뢰하게 될 때, 연대와 타협 그리고 발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족한 그대로 동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라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담긴 노무현의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더욱 공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노무현 개인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진보와 가치,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그리고 시민 개개인이 연구자가 되고 각자 자신의 생활 속에서 삶을 개혁해나가고 연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힘을 믿어야겠다. 5년, 10년의 반동은 역사의 흐름에서 정말 짧은 시간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반동은 이보다 더 길었지만, 결국 그 때 추구했던 가치들은 계승되고 현재까지도 발전되고 있지 않는가. 노무현 그가 추구했던 가치,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가치를 결합해서 패배주의와 회의주의를 극복하고 계속 전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부터, 기본에 충실할 필요가 있겠지만.  

 

  사족이지만, 이라크 파병에 대한 노무현의 인터뷰 내용 중에 타협할 수 없는 ‘원칙’, 원칙을 위해서 타협할 수 있는 ‘전략’에 대한 부분이 있다. 내가 4시간의 시험공부를 포기한 것은 타협할 수도 있는 전략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시간을 통해 내 생의 원칙을 더욱 확고히 했다. 그리고 내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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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7-28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노무현 읽기로 어머니독서회 토론도서로 정해도 괜찮을까요?
10월 토론도서를 선정하지 않았거든요.

송도둘리 2009-07-28 08:46   좋아요 0 | URL
저는 강추입니다. 우선 인터뷰형식이라 딱딱하지 않고, 노무현 자신의 육성이라 더 와닿는 면도 있구요. 노무현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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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년을 앞둔 교수님들의 고별 강의는 가끔 접할 기회가 있지만, 죽음을 앞둔 교수님의 ‘마지막 강의’는 처음이다. 이 책의 저자 랜디 포시는 미국의 촉망받는 컴퓨터 공학 교수다. 하지만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모교에서 마지막 강의를 결심한다.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말 그대로 진짜 마지막이기에 강의는 더욱 절절하고 감동적이다. 랜디는 자신이 어렸을 때 꾸었던 꿈을 이뤄가는 과정, 사람들과 함께 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등을 마지막 열정을 담아 강의한다. 이 강의는 교수로서의 마지막 강의이기도 하지만,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남기는 마지막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한 장 한 장마다 허투로 대할 수 없게 한다.

  나는 그를 모른다. 하지만 그의 글로 판단하건데, 그는 매우 자신만만하고 이성적이지만 한편으로 유머러스하고 당당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이러한 특징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한 영웅의 이미지 보다는 죽음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괴짜의 모습이 강하다. 사실 그도 눈물도 흘리고 실의에 빠지기도 했을 테지만, 공학 교수로서의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 이면에는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해 실의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그를 더 재촉했을 것이다. 심지어 그는 암 선고를 받음으로써 가족의 미래를 준비하고 정리할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에 감사해한다. 심장마비와 교통사고로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비극적인 감사며, 얼마나 소박한 행복인가.

  부끄럽다. 나는 감기에도 골골대고 작은 실패에도 좌절하고 포기하고 마는데, 그는 시한부 선고 앞에서도 이토록 건강하다. 정신적으로는 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병자 같다. 그간 식상했던 ‘당신의 오늘은 어제 누군가가 그토록 살고자 했던 내일이다.’라는 격언이 떠오른다. 랜디가 놓아야만 했던 삶의 소중함을 모르고 허투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진정 부끄럽다. 자신이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삶을 흥청망청 낭비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가 남겨준 강의에 감사한다. ‘너 그따위로 살 거라면 그 생명 나한테 줘!’라며 욕심내지 않고 우리에게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지 가르쳐줘서 고맙다.

  또 내 앞에 벽이 보인다. 랜디는 나에게 이렇게 일러준다.

   
  장벽이 거기 서 있는 것은 가로막기 위해서가 아니며, 그것을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보여줄 기회를 주기 위해 거기에 서 있는 것이었다. – 80쪽  
   

 

  진정 고맙다. 랜디. 당신이 사랑했던 '재이와 로건, 딜런, 클로이' 그 가족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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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ttle Prince (Paperback, 미국판) - 어린 왕자 영문판 원서
생 텍쥐페리 지음, 리차드 하워드 옮김 / Harcourt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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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소설을 많이 읽자는 목표를 세웠는데, 그 첫 번째 시도가 바로 이 책이다. 어린 왕자는 이미 친숙한 작품인데다 어린이들이 많이 보는 책이라 읽기 쉬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단어도 어렵고 문장이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렸을 때 읽었던 어린왕자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다시 음미해보고자 했던 목표가 어느새 ‘읽어내는 것’으로 바뀌고 말았다. 영어 사전을 갖다놓고 한 문장 한 문장 속도전으로 읽다보니 며칠 만에 결국 끝을 보고야 말았지만 뭔가 허전함이 남았다. 나도 숫자에 집착하고, ‘읽었다’는 외적인 목표에 얽매였던 것은 아닌지. 나도 모르는 새에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지 씁쓸해졌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어린 왕자의 말이 떠올랐다. 책을 덮었지만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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