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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대학시절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보려고 시도했지만, 매번 좌절 끝에 실패했었다. 직장에 다닌 이후로 출간된 책들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내 기억에 하루키 소설들은 ‘허공에 성을 쌓는 차도남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알 수 없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렇게 호기심과 찝찌름한 잔상이 뒤섞인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확실히 흡입력은 있는 소설이었다. 두꺼운 책을 삽시간에 읽었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예의 공산품과 음반에 대한 상세한 묘사, 굳이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정사신도 여전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 것 같은 환상 속의 세계, 여전히 나와 맞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 그가 그리는 이 환상적인 세계가 찬탄을 받을 만한 것인지, 어떤 부분이 문학적 성취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이 이색적인 세계를 이해해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 다소 엉뚱한 상상이 통하는 출판시장이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하루키는 동일본 대지진을 경험하면서 이 책을 구상했다고 들었다. 책은 고통과 고난의 시기를 넘어가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시기에 겪는 불가사의한 일들 속에서, 사람은 어떤 또 다른 세계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주인공은 현실이 다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보이더라도 간절히 원하면 이뤄지는 가능성의 세계와 깊이 교감한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용기와 의지를 가다듬는다. 바로 이 점이 이야기가 생을 다채롭고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발견이며, 소설가로서 하루키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리라.
여러 판단과 평가가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이야기의 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생의 의지를 가다듬을 수 있는 환상의 세계. 그것은 책의 힘이기도 할 것이고, 상상의 역할이기도 할 것이다. 부디 시간이 지나도 이 세계로 가는 문이 닫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이 세계를 경험해서 지금 불가능해 보이는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을 다시 집어들게 될지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혐오는 벗어던지게 된 것 같다. 좋은 여행이었다.
중요한 건 무無에서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일이 아닐세. 제군이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지금 여기 있는 것들 가운데 마땅한 것을 찾아내는 일이지. _ 1권 401쪽
그렇게 생생한 사건이 그저 꿈으로 끝날 리 없다-그것이 내가 품은 실감이었다. 그 꿈은 분명 무언가에 연결되어 있을 터였다. 현실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을 터였다. _ 2권 213쪽
사람은 무언가를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나는 생각했다. 어떤 특수한 채널을 통해 현실이 비현실이 될 수 있다. 혹시 비현실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만약 간절히 염원한다면.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증명하는 건 오히려 그 반대의 사실인지도 모른다. _ 2권 217~218쪽
"완성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모든 사람은 언제까지나 미완성이야." _ 2권 568쪽
그 지역을 돌아다니던 시기에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지극히 고독하고, 서글프고, 답답한 심경을 안고 있었다. 여러 의미에서 스스로를 상실해버렸다. 그런데도 나는 여행을 이어가며 수많은 낯선 이들의 틈에 섞여, 그들의 일상 속 여러 장면을 통과했다. 그것은 그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과정에서-대부분 무의식적으로-몇 가지를 버리고, 몇 가지를 건졌다. 그 장소들을 지나온 나는 그전과 조금이나마 다른 인간이 되었다. _ 2권 586쪽
그래도 나는 멘시키처럼 되지 않는다. 그는 아키가와 마리에가 자기 아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밸런스 위에 자신의 인생을 구축하고 있다. 두 가지 가능성을 저울에 달고, 끝나지 않는 미묘한 진동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귀찮은(적어도 자연스럽다고는 하기 힘든) 작업에 도전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는 믿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좁고 어두운 장소에 갇힌다 해도, 황량한 황야에 버려진다 해도, 어딘가에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순순히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오다와라 근교의 산머리 집에 살면서 몇 가지 예사롭지 않은 체험을 통해 배운 점이었다. _ 2권 5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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