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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그건 사랑이었네'의 구매자 40자평 중에 '한비야 책을 살 땐 주저하지 않는다'는 글이 있다. 그 글을 읽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라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또한 이 책의 출간소식을 듣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샀다. 평상시라면 알라딘에서 책을 주문하고 다음 날 받아보는 여유(?)를 즐겼겠지만, 이번만은 그 하루조차도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한비야의 책들을 좋아하고, 한비야라는 사람도 정말 사랑한다(!). 한비야에 대한 사랑은 그의 놀라운 경험에 대한 경외와 대리만족, 쉽사리 하기 어려운 생의 결단을 내렸던 그의 용기에 대한 감탄, 긍정적이고 활력 넘치는 삶의 태도에 대한 질투 또는 욕심, 타인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친화력에 대한 부러움의 변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의 따뜻한 마음과 열정 때문일 것이다.
그의 글은 참 사랑스럽다. 일단은 읽기 쉽고 이단은 감정이 살아서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꾸밈과 수사 없이도 솔직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글, 이런 글이야말로 좋은 글 아닌가? 물론 쉽게 읽히는 글이라고 해서 쉽게 써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고생해서 썼겠구나 싶긴 했는데 이번 책에는 그녀의 글 쓰는 고통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도 역시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을 발견해서 흐뭇했다(!). 한비야의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여전히 가슴을 때리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책에 밑줄을 긋지 않는다는 원칙을 또 어기고 말았다.
그의 이 번 책은 예전 책들에서 접할 수 없었던 그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신앙과 같은 내밀한 것들 말이다. 나는 그동안 한비야의 책을 읽으면서도 그가 크리스천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확신을 갖진 못했다. 그녀의 책에는 일부러 그랬겠지만 한 종교에 대한 편파적인 부분이 없었다. 그렇게 감쪽같이 숨겼을 줄이야. 그녀는 천주교 신자였다. 조금은 놀랍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나도 영세를 받은 터라 반갑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이 어린아이의 신앙이라고 표현했지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모나지 않게 잘 융화되는 모습을 보니 그건 분명히 어른의 성숙한 신앙이었다. 또한, 책에서 소개한 낭가파르바트나 짐바브웨에서 겪었던 신앙체험은 부럽기도 하고. 한비야의 글을 통해서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신앙이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태도는 자신에 대해서는 간절함(열정)과 노력, 그리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이해와 관용 인 것 같다.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 하면서의 경험에 대한 꼭지도 눈에 띈다. 그가 월드비전의 구호팀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월드비전 후원자가 33만 명으로 급성장했다고 하니 놀랍다. 그것이 월드비전만의 기쁨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실적이 타인과 나누는 삶을 추구하는 우리 국민들의 의식성장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다 기쁘다. 특히, 오염된 식수를 마셔서 기니아충이 온 몸을 뚫고 나오는 병에 걸린 아프리카의 아이들, 여성할례 때문에 속절없이 고통을 당하는 여자아이들에 대한 부분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라 깜짝 놀랐고 많이 슬펐다. 그들이 정말 우리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긴 하는 건지 사실 현실 같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이 안타까운 마음은 계속 지켜나가야겠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수입의 일부는 꼭 이웃과 함께 나누고, 삶의 원칙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간다는 원칙도 더 확실히 세워야겠다. 아직 몸으로 실천한다는 것, 구호의 세계랄까 봉사의 세계는 여전히 두렵지만 그것에 대해서도 천천히 시간을 갖고 용기를 내야겠다.
사실 한비야는 우리 어머니와 동갑이다. 그런데도 그 나이에 새로운 꿈, 공부를 시작한다는 게 참 대단한 것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는 바람의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각오도 놀랍다. 사실 서른 즈음의 선배가 대학생 후배들을 보고 '너희는 참 젊다'며 한숨을 내쉬고, 정작 이십대 중반인 내 또래는 '내 인생은 실패했다'고 좌절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 나를 포함해서 - 그런데 한비야는 '나는 내가 커서 뭐가 될지 무척 궁금하다'고 능청을 떤다. 정말 그렇다. 죽을 때까지 배워가는 것. 사랑도 그렇지만 인생도 죽는 날까지 배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서평을 쓰는 과정에서 '무릎팍도사 한비야 출연에 대한 불편함'이라는 칼럼을 우연히 접했다. 구호활동과 선의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며, 국민이 조직화해서 불합리한 체제를 바꿔나갈 때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요지였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현실은 보지 못하고 외국으로만 눈을 돌리는 현상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칼럼이었다. (내가 그 칼럼을 잘 요약한 건지 불안하긴 하다.) 물론 이 말도 맞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고 도둑질도 해본 놈이 잘 한다고 나는 '부자' '성공'에 목을 매던 사람들이 점점 ‘이웃과 나누는 것’에 대한 관심을 늘이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싶다. 지구 반대편의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에 대한 고통에 눈물을 흘리고 후원을 할 사람들이 자기 이웃의, 자기 나라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눈감고 있겠는가? 중요한 건 의식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사회 현실에 분노해서 매번 시청 앞으로, 광장으로 달려 나가지 않더라도 의식이, 감정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의식이 바뀐 시민들은 투표로 답할 것이다. 의식이 변한 사회는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 개인의 성공과 부(富)만 보고 달리던 사람들에게 한비야가 던져 준 화두는 그렇게 우리 사회에 이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눈물을 흘릴 때, 그리고 한비야가 이야기하는 성공에 관심을 기울일 때 우리 사회는 후퇴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놓고 가는 것
당신이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2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