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은 19세기의 사물들의 세계를 물화된 백일몽의 세계로 보았다. 그가 그려낸 유년 시절은 온갖 새로운 사물들-전화, 파노라마, 마네킹, 파사주, 진열장, 철도역, 세계 박람회, 유리로 된 집, 백화점, 광고, 거리조명, 자판기-이 삶 속으로 침투하는 장면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모든 것들이야말로 벤야민에게는 자본주의의 인상학적 폐허, 즉 그 속에서 실체가 사물의 껍데기와 분리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정신을 보여주는 징표로 여겨졌다./9
표제작이 좋아서 기대하며 읽었는데 대체로 실망스러웠다. 더 솔직히 말하면 게이남성이 주인공이자 화자인 작품을 제외하면 다 별로였다. 대부분이 여성이 주요인물이거나 화자인 작품들이었는데, 그가 묘사한 여성들은 굉장히 전형적으로 멍청하거나 폭력적인 인물들이었고,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이기호 작가가 읽고 반했다는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에서 애정 없이 만나는 여자친구가 당할 온갖 끔찍한 일들을 상상하면서 실소하는 장면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판단을 보류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무언가에 실망을 느낄 것 같은데 그러고 싶지 않으면, 아니야 아닐 거야 내가 오해한 걸 거야 실수한 걸 거야 생각하며 그 실망을 최대한 지연시키는데, 지나보면 대부분 그 최초의 감이 맞아떨어진다는 걸 새삼 느낀다.
같은 말을 요렇게 조렇게 바꿔가며 반복하는 책이라 어쩔 수 없지만 약간은 동어반복의 인상을 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완벽한 이념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방식과 이유와 과정을 통해 고통의 총량을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포인트는 충분히 새겨들을 수 있었다. 한 70퍼센트쯤 비건인 나도, 스스로에게 실망하여 그만두거나 포기하기보다는 계속 조금씩 비건촌에 다다르기 위한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완벽하진 못하지만 대신 꾸준히, 잊지 않고 가야 할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