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수들
데이비드 로지 지음, 공진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학생이었을 때 딱 한번 세계학술회의에 가본 적이 있었다. 책으로만 읽던 유명한 교수들이 나와 강연을 하고 또한 질의, 대답 등의 토론이 이어지는 게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그런 학회를 다니는 저명한 교수들의 공적이며 사적인 얘기이다. 그들의 학교와 학생 그리고 캠퍼스, 야망, 욕망 그리고 사랑과 섹스에 관한 6백여 쪽이 되는 이 책이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읽힐 줄은 미처 몰랐다. 정말 읽기가 재밌고 냉소적이고 유쾌하고 즐겁다.
게다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가 복잡하게 얽히고, 인물들이 이렇게 저렇게 얽히면서 스토리 라인이 더 복잡해지는 듯 보이다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반전에 또 반전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결말은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끝까지 농락당했지만 그 지적 유희 앞에 기꺼이 내 머리를 맡겼다.
교수들이라고 하면 보통 지적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또한 그 지적 이미지 아래 숨겨져 있는 은밀하고 변태적인 면도 함께 떠오르는 건 참 미안한 말이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외설인지 이는 제 삼자가 판단할 때 생기는 기준이다. 그들의 두뇌와 몸을 가지고 어떤 탐색을 하고 어떻게 분석을 하며, 무슨 짓을 하든 본인들이 서로 합의하에 할 때는 그 가치 기준이 달라진다. 이런 모든 면이 적절하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얘기는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영문학자이며 교수 그리고 대학원생들, 출판업자 그리고 번역가 등등 학계와 연관을 맺고 있는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영문학회가 열리는 영국의 한 작은 도시에 초자 교수인 젊은이 퍼스가 등장한다. 처음 참여하는 학회의 이모저모로부터 만나게 되는 저명한 교수들과의 대화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연애와 섹스 등도 빼놓을 수 없고 이들의 고집, 특이한 성격, 집착 등이 함께 보여진다. 수많은 교수와 그들의 배우자, 작가, 비평가, 출판업자 그리고 심지어 그들이 자주 이용하는 장소의 어떤 특정인물 등등이 등장하는데 간혹은 애정이 가는 인물도 있고, 자연스레 동감하며 따라가는 인물도 있고, 적대적으로 느껴지는 인물도 있고, 진짜 학교 다닐 때 우리 교수님 같은 인물도 있다. 글과 책 그리고 출판에 관한 많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은 덤이다.
‘결국 서로의 침대에 함께하게 되는 일이 꽤 빈번히 일어나는데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은 학문에 희생했다고 생각했던 젊음을 되찾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결국은 가뭄의 먼지 같은 공부벌레가 아니라 살아 있고 쉼 쉬고 심장이 고동치는 인간임을, 또 연인의 손길에 꿈틀거리고 분비물을 생산하고 박동하는 따뜻한 혈과 육을 가진 인간임을 스스로에게 입증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집에 돌아갔을 때 학회가 좋았냐는 친구나 가족의 물음에, 아, 그럼, 하고 그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지루했던 논문 발표 때문이라기보다 그러한 기회에 엮을 수 있는 비공식적인 관계의 맺음 때문에 하는 대답이다.’
하나 안타까운 것은 1984년에 발표된 소설인데다 배경이 70년대여서 시대와는 동떨어진 부분도 좀 있다는 것이다. 하긴 그때나 지금이나 그 세계는 여전히 존재하며 그 안의 속성도 여전한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또한 엘리엇이나 예이츠 등등 유명한 영문학 작품에 대한 언급과 지적 정보는 크나큰 보너스다.
덧붙임: 마음산책에서 유명한 작가의 에세이만 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보니 <개를 위한 스테이크>,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가면의 생>등 의외로 흥미로워 보이는 작품이 많다. 차근차근 읽어봐야겠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책들을 놓칠 순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