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 - 기념시선집 창비시선 300
박형준 외 엮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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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시를 잘 읽지 않는다.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가 가끔 책을 보내줄 때도, 미안하지만, 정말 미안하지만은, 시집은 사양한다. 읽어도 잘 이해가 가지 않고 별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창비 시선에 들어있는 시집은 몇 권 갖고 있다. 그리고 가끔 잠들기 전에 한 편씩 읽기도 한다. 그만큼 좋은 시도 많고 다가가기가 쉽기도 한 것이겠다. 이번에 나온 창비 시집은 창비시선 300번을 기념해 201번부터 299번까지의 시집에서 고른 시들이다. 이번 시집을 다 읽고 난 나는 더 아프고 더 속상했다. 인간이기에 겪어야 하는 고통의 걸음걸음…… 그게 온 몸으로 다가와서였다.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산다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갈수록 가족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게, 아니 그저 일하고 월급을 받고 가끔 외식을 하는 정도로 평범하게만 사는 것도 얼마나 큰 기적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세상엔 그만큼 고통도 많고 어려움도 많고 예기치 못한 불행도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너무나 약하디 약한 인간의 육신과 정신을 갖고 천박하고 저속한 운명을 저주하며 살기도 하고 꾀죄죄한 일상을 살기도 한다. 인간적이란 건 동화나 꿈에서처럼 우아하고 환상적인 게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저속하고 비굴하고 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간에게 나타나는, 인간이기에 피할 수 없는 병, 불구, 노쇠, 이별 그리고 둑음까지도 우리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사 고통이며 두려움이며 공포이며 절대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기에 숨길 수 없는 치부까지도 모두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의 일상이며 삶인 것이다.  

‘어머니는/ 뚱뚱한 몸을 뒤뚱거리며/딸의 불안을 감시하러 들락거리시고/ 나는/ 껍데기뿐인 생을 공글려/ 어머니의 불안을 보살피러 들락거린다’ - 강신애, <대칭이 나를 안심시킨다> 

“이형, 요즈음 내가 한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원이야, 삼만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 이시영, <최명희 씨를 생각함> 

‘산다는 것이 통화는 할 수 있으나 
반환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환되지 않는 것조차 남기고 간다는 것을’ - 최영숙의 <비망록2>  

그래도 그 저속과 속됨을 받아들이고 욕심과 탐욕을 버리면 인간은 편안해질 수 있다. 그저 빈손이어도 가족이 있기에, 친구가 있기에 그냥 좋을 수 있는 것이다.  

‘인사동에 가면 오랜 친구가 있더라/ 얼마 만인가/ 성만 불러도/ 이름만 불러도 반갑더라/ 무슨 잔치같이 날마다 차일을 치겠는가/ 무슨 잔치같이/ 팔목에/ 으리으리한 팔찌 끼고 오겠는가/ 빈손이/ 오로지 빈손을 잡고/ 그냥 좋기만 하더라’ - 고은의 <인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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